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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구 Apr 12. 2024

좋았던 축구가 싫어졌어요

수술 그 이후

코로나가 한창 유행했을 시즌이어서 보호자는 한 명씩 들어올 수 있었다. 수술을 하면 지금처럼 바로 못 걸을 수 있기 때문에 보호자인 누나가 왔다. 누나는 회사를 다니지만 나 때문에 있는 휴가를 다 반납하고 온 것이다. 수술을 하기 전에 지금 상태도 멀쩡했고 수술 경험이 많았기 때문에 크게 떨리지는 않았다. 웬만한 고통은 잘 참아서 얼른 수술을 끝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전신마취 수술이 끝나고 눈을 떴는데 다리가 움직여지질 않았다. 우선 내 병실로 옮겨졌는데 다리를 고정시키는 기구를 사야 한다고 하였다. 가격은 13만 원 정도였다. 무슨 이 작은 기구가 이렇게 비싸냐며 속으로 생각을 했지만 기구가 재활치료를 할 때 필요한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샀다. 


우선 내 상태는 수술한 쪽 허벅지가 엄청 얄팍해졌다. 반대쪽과 비교하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그리고 무릎이 펴지지 않고 굽어져 있었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재활치료를 열심히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리고 다리의 통증도 있었다. 무릎을 피면 엄청 아프고 피지 않아도 아팠다.


내 하루 중 대부분은 재활치료였다. 재활센터에 가는 날엔 선생님과 함께 하지만 평소에도 병원 침대에서 무릎을 피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평생 무릎을 피지 못하게 되거나 재수술을 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래서 틈틈이 피는 연습을 했다. 재활센터에서는 선생님과 다양한 기구들을 가지고 다리를 피는 연습을 하였다. 쉽게 설명을 하자면 엄청 뻣뻣한 사람이 다리 찢기를 계속 연습하는 기분이었다. 때마다 멀미가 정도로 속이 안 좋았다.


화장실을 갈 때나 돌아다니고 싶을 때는 휠체어를 타야 했는데 병원 침대에서 바로 옆 휠체어까지 불과 30cm도 안 되는 거리를 나는 30분이나 걸렸다. 다리가 너무 아팠기 때문에 그 자리에서 계속 가만히 있어야 했다. 이때가 가장 자괴감이 가장 많이 들었다. 내 힘으로 할 수 있는 것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말이다. 화장실조차도 혼자 가기 힘들었다. 


축구 때문에 이게 무슨 일인지 그렇게 좋았던 축구가 이제는 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출처 : https://unsplash.com/ko/%EC%82%AC%EC%A7%84/%ED%8C%8C%EB%9E%80%EC%83%89-%EB%B0%94%EB%8B%A5%EC%97%90-%EA%B2%80%EC%9D%80-%EC%83%89%EA%B3%BC-%ED%9A%8C%EC%83%89-%ED%9C%A0%EC%B2%B4%EC%96%B4-7NoYTT9Omi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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