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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마음 하얀 마음. 1

너무 달랐던 부모

by 함문평

아버지, 어머니는 결혼해서는 안 될 두 분이 만났다. 화성에서 온 남자 목성에서 온 여자 그 이상으로 다른 분이었다.

아버지는 자유당 시절 보건사회부 별정직 공무원을 하다 4.19 혁명에 법적 근거 없는 촉탁 근무자들 정리되어 횡성으로 낙향했다.

서울서 화장 예쁘게 한 여자와 결혼을 약속했으나 보사부 공무원으로 여자에게 소개했는데, 정식 공무원이 아니고 촉탁으로 있다가 정리되어 촌에서 농사짓는 사람이라고 차였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군대 가기 전까지 개간도 하고 농사지어 판 돈으로 조금씩 땅을 사서 강림에서는 부자 소리를 들었다.

강릉 함 씨 시조를 모신 사당과 선산이 강릉에 있어서 할아버지, 아버지, 작은 아버지 3 부자가 강릉 가는 버스를 타고 갔다.


지금은 영동고속도로가 제1. 2가 있고 KTX도 강릉을 가지만 당시는 6번 도로 한노선 버스고 정류장이 있지만 시골은 타려는 사람이 손들면 거기가 정류장이었다.


안흥을 지나는데 웬 어른이 입이 돌아가는 구안와사 환자와 환자 보호자 아주머니가 탔다.

아버지가 물었다.


"입 돌아간 거 얼마나 되었나요?"

"30분 됩니다."

"어디로 가시나요?"

"강릉 안흥의원이 친정 동생이 하는 병원입니다."

"에이, 구안와사 병원 의원급 가봐야 별 효과 없습니다. 차라리 이 버스 도착하면 아무 다방에나 들어가 찬 공기 없는 곳에서 제가 고쳐드리죠?"


아저씨는 입이 돌아간 상태라 말을 못 하고 아주머니가 미리 감사하다를 연발했다. 덜컹거리며 달린 시골 버스가 가릉에 도착했다. 할아버지 작은 아버지는 <강릉 함 씨> 선산으로 먼저 가고 아버지는 다방에서 두 테이블을 점령하고 한 테이블에 사람 수만큼 커피, 쌍화차를 주문했고, 옆 테이블 소파에 구안와사 환자에게 침을 놓았다. 거의 드라마 <허준> 수준이었다.


다방 주인. 서비스 종업원 손님들이 모두 침 꼽힌 환자만 바라봤다. 침을 놓고 한 30분 정도 지나자 마술 부리듯 입이 조금씩 조금씩 돌아왔고 90% 정도 되었을 때 침을 빼고는 다방 아가씨에게 백지 한 장 볼펜 하나 달라고 해서 악필 일필휘지 한자로 ㅇㅇ탕 가미 ㅁㅁ, ㅇ ㅇ, AA를 써주고 그 약을 한의원에 가서 지어 드시고 다 나으면 오지 말고 혹시라도 미진하연 찾아오라고 강림집 주소를 적어드리고 강릉 함 씨 선산으로 떠났다.


시제를 마치고 가을에서 겨울 될 때 구안와사를 고쳐준 아저씨가 닭 한 마리를 다리를 묶어 강림으로 아버지를 찾아왔다.

사연인 즉, 이번에는 아주머니가 풍을 맞아 오른손 오른 다리를 못쓴다고 했다.


아버지는 침통을 양복 속주머니에 테러리스트 권총 휴대하듯이 넣고 중풍 여자 환자 그동안 치료한 경험으로 약을 2 첨 말 들어 강림에서 월현을 넘어 영월군 주천면 운학리에 갔다. 거기도 촌이라 소문이 빨라 중풍환자 고치러 횡성군 강림에서 영월군 주천면까지 명의가 왔다니 구경꾼이 마당에 가득했다.


역시 아버지는 약 두 첩 드시고 상태를 잘 관찰하고 남자 어르신이 강림으로 오라고 했다. 저녁 준비를 2남 4녀 집에 셋째. 넷째 딸이 준비했다. 하룻밤 자고 익일 아버지는 강림으로 왔다. 그다음 날 상당한 돈을 봉투에 담아 아버지에게 주면서 다시는 아내가 풍에 재발되지 않을 약을 지어달라고 했고, 뉴스는 아직 혼인을 정한 여자가 없으면 우리 집 셋째 딸, 넷째 딸 함 의원이 맘에 드는 딸과 결혼하는 것이 어떠냐? 했다.


그 소식을 즉시 할아버지 할머니가 들으시고 무조건 순서대로 셋째 딸과 혼인시키자고 했는데, 나중에 취중에 파악한 바로는 아버지는 두 살 아래 막내 이모에게 더 마음에 끌렸다고 한다. 엄마는 남자가 너무 날씬하게 생겨 결혼해도 맘이 편하지못 할 거라고 외할아버지께는 말도 못 하고 외할머니에게는 했다고 한다. 아버지가 맘에 없는 결혼을 해서인지 나의 부모님은 일 년 365일에서 200 일은 싸우신 것이다.


하루는 아버지가 부산에서 환자가 있어 가봐야 한다고 돌아오려면 5일 걸린다고 했다. 모처럼 부부싸움 없는 5일이라 아버지 없는 날 3남 2녀는 작정하고 어머니 청문회를 했다. 형제들 용돈 다 털어서 사이다, 콜라, 라면땅, 뻥과자를 돈 되는 대로 차려 약식 다과회를 하면서 엄마 청문회를 했다.


내가 먼저 물었다.

"엄마 아버지와 그렇게 싸우려면 결혼 왜 했어?"

"야. 지금은 니들 원하는 결혼 하지 외할아버지 외할머니가 자신들 병 고쳐준 은인이라고 이모와 나 둘 중 한 명이 결혼하라고 해서 나는 싫다고 했는데 이모는 좋다고 해도 외할아버지, 외할머니. 할아버지 세 분이

장유유서라고 마음에도 없는 엄마와 아버지를 결혼시켰다."

"그렇게 맘에 없는 결혼이면 진작 이혼하고 혼자 살지 뭐 하러 이렇게 3남 2녀씩이나 만들었어?"

"신혼 초에는 도망갈 생각도 못하고, 아들이 돌 지나서 아버지와 살기 싫어 강림에서 횡성을 벗어나 원주 엄마의 사촌집에 숨었는데, 계모 밑에서 먹을 거 입을 거 부실하게 크고 매만 많이 맞을 아들을 생각하니 잠도 못 자고 눈물이 나서 다시 강림으로 들어왔다."

셋째 여동생이 물었다. 그렇게 억지로 결혼한 사이라면서 3남 2녀가 너무 많다고 생각 안 했어요?

엄마는 2남 4녀 집안에서 남자들만 공부시키고 여자 4명은 막내 이모만 제대로 여고까지 공부했지 위 딸 3명은 무학이거나 초등학교가 공부의 다라고 했다. 엄마는 옛날이야기 책 딱지본 한글 소설이 재미있어 읽고 싶은데 한글을 모르는 것을 막내 이모가 방학 때 글 모르는 언니 문해교실 수준의 한글을 가르쳤다고 한다. 그래서 엄마와 큰 이모들은 한글 받침을 정확히 쓰는 사람이 없다.

그런 엄마가 시집살이의 고달픔과 아버지와 잘못된 결혼 이야기를 우리 5남매가 사용하다 버린 공책 안 쓴 면을 뜯어서 노끈으로 묶어 혜경궁 홍 씨의 <한중록> 수준의 가정사를 몰래 기록했다.

그것을 S 중 2학년 여름 방학에 고향에 갔다가 엄마만 아는 아지트에 엄마는 가족 모르게 숨기고 엄마만 혼자 생각날 때마다 조금씩 기록한 엄마의 자서전같은 일기장을 된장을 떠 오라는 심부름을 하다가 발견했다.

중학 1학년 방학은 방학에도 오지 말고 학원을 다니든 과외를 하든 공부하라고 오지 마라. 중3은 고교 가서 1학년 때 인접 강남중 중대부중에서 공부 잘했던 애들에게 안 질려면 중3겨울 방학에 난도 높게 가르치는 곳에 가서 영어 수학을 배워야 한다고 강림에서 아버지가 수학은 최경조 선생님께 문의해서 만리동 서울여고 교문 옆 무슨 빌딩 3층에 ST학원이라고 정말 스파르타식으로 국영수를 가르쳤다.

골 때리는 건 거기 시험문제 주관식이 흑석동고교 가서 첫 중간고사에 25문제 중 24번 까진 선다형이고 25번은 주관식인데 600명 중 풀이과정과 정답이 감점 없이 푼 사람이 나 혼자였다.


더 기막힌 건 공군사관학교 생도가 멋있어서 거기 시험 봤는데 역시 주관식 한 문제가 고1 첫 시험 주관식과 똑같은 문제가 우변 수가 2에서 4로 변경했을 뿐 똑같은 문제라 가장 먼저 풀고 제출하러 나오면서 보니 통로 좌우 전원이 만주벌판이었다. 당연히 수학에서 워낙 압도적으로 잘 보고 국어도 만점 받고 영어가 좀 저조했으나 수학이 보통 수험생 보다 앞도적 차이라 합격했다. 다 합격하고 마지막 신원조회에 큰아버지가 6.25 때 의용군에 잡혀간 것 때문에 떨어젔다. 이 내용이 내 소설 <군복> 모티브가 되었다.


아버지는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치매라 문평을 알아볼 때는 눈물을 흘리시고 모를 때는 누구세요? 하신다. 인생 100세 시대라고 하는데 치매로 100세 가면 어떻게 하나 걱정이 된다.

어머니 나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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