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4년 2월 중학교를 졸업하고 추첨으로 흑석동 84번 종점이 있던 중대부고에 배정받았다.
대방동 S중학교에서 흑석동고등학교를 다니기에 교통이 불편했다.지금이야 교통카드를 대기만 하면 환승으로 큰 금액 아니고 버스를 갈아타지만 당시는 학생 회수권이라고 버스운송조합에서 만든 종이로 10 매 한 묶음을 100원에 구입해 10장으로 오려 사용했다.
어떤 친구는 그걸 11장으로 써먹었다. 10장을 상하 여백이 포함되게 잘 오려서 사용했다. 등교 하교시간은 바빠서 그걸 세밀하게 확인할 수 없고 버스 회사는 잘못 오린 회수권도 10원으로 쳐주기 때문에 손해볼일 없었다.
3월 4일 입학하고 집에서 대방역까지는 걸어서 가고 대방역에서 111번 버스를 타고 흑석동입구에 내려 학교로 걸어갔다. 중간고사 일정표가 나오자 마음이 급해졌다. 전날 공부 좀 했다고 아침에 늦게 일어나 무거운 책가방을 들고 장거리 달리기 선수처럼 뛰었다. 막 정류장 도착하는데 111 버스가 떠나는 것을 버스 옆면을 두드리니 기사분이 세워주고 안내양이 내려서 빨리 타라고 하면서 나를 짐짝처럼 밀어 넣었다. 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 한 것도 잠시 유한양행을 지났다. 노량진 수돗물정수장에서 흑석동 효사정 방향으로 가야 할 버스가 한강다리를 달렸다. 가슴이 철렁했다. 버스에서 내려다보이는 한강은 아름답고 동쪽에서 비추는 했빛이 물에 반사되어 황홀햇으나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걱정되는 목소리로 안내양에게 말했다.
" 이거 111번 아닌가요?"
"211번입니다."
"내려주세요?"
"한강에는 정류장 없어요. 건너가면 첫 정류장에 내려줄게요?"
"예."
한강다리에 지금은 카페도 있고, 버스 정류장도 중간에 생겼지만 당시는 한강 건네 데이콤자리가 강북 첫 정류장이었다.내리자마자 택시를 타려고 두리번거리는데 호떡모자 여학생이 다가오더니
"버스 잘못 타셨죠? 우리 같이 가요?" 했다.사당동 서문여고나 노량진 영등포여고는 교복만 있었는데 중대부여고는 특이한 호떡모자를 썼다.
한강 건너서 흑석동으로 달리는 택시에 그녀도 식은땀이 흐르고 나도 땀만 흘렸다. 곁눈질을 하니 그녀 볼이 발갛고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혔다.가슴이 차멀미하듯 울렁거렸다. 손에 이마에 여름도 아닌데 땀이 났다.
택시 기본요금이 650원인가 했는데 한강 다리 넘으니 기본요금 돌파 650 돌파750에 84번 종점에 왔다.250원을 거슬러 받을까 고민하다가 종이돈 1,000원을 그녀 책가방 위에 살짝 올료 놀고 잘 올라가라고 하고 내렸다. 부여고는 우리 학교 담장 옆으로 돌아 더 올라간 곳에 있었다.
헐레벌떡 교실로 가니 이미 첫시간 수학 선생님이 출석을 부르고 수업 중이라 살짝 뒷문으로 들어가 내 자리에 앉자 선생님이 "함 군 앞으로 나와!" 하신다.
"왜 늦었어?"
"저희 집이 대방동인데 대방역에서 111타야 할 것을 211 타서 한강 건너에서 택시 탔는데도 늦었습니다."
"혼자 탔어?"
"아니요? 부여고 학생도 용산서 만나 같이 타고 왔어요."
"여학생 몇 학년이야?"
"몰라요?"
"이름은?"
"몰라요."
" 너 바보 아냐?" 하셨다.
한강 건너 택시를 흑석동까지 타고 올 인연이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인데 최소한 몇 학년인지 이름은 무엇인지 충분히 알 수 있을 시간 아니야? 전투기로 치면 평양 폭격하고 20 전투비행단 돌아올 시간이다 하셨다.선생님은 ROTC 예비역 중위라서 수업시간에 우리가 졸면 군대 이야기로 웃겨 우리들의 잠을 깨웠다.
나이 60이 넘어도 그일 만 생각하면 후회되고 화가 난다. 아~내 인생 왜 이런 것일까?
그 후로 중대부여고 교문에서 84번 종점까지 몇 번을 어슬렁거렸지만 그때 택시를 같이 탔던 여학생을 만날 수 없었다.
낚시를 하면 낚시에 걸렸다가 놓친 물고기가 더 크게 느껴지는 것처럼 세월이 흐를수록 그녀가 점점 미인으로 상상이 된다.
세월이 흘러 중앙대학교가 재단이 어려워져 두산 대기업이 재단을 인수했다. 대기업답게 학교 보다는 영리에 밝았다. 중대부속고등학교 부지에 중앙대학교 대과대학 부속 병원을 짓고 학교를 이전했다. 강남교육지원청에서 중대부고만 이사 오면 승인할 수 없고 남녀공학으로 이전하면 승인한다고 했다. 그렇게 후배들이 남녀공학이 되었다. 남과 여 졸업 횟수가 문제가 되었다. 중대부고와 중대부여고 도곡동 이사한 기수는 졸업 연도 표기로 기수를 대신했다. 그 후 졸업 선배도 소급해서 같은 졸업연도끼리 동창이 되었다. 우리는 중대부고 80이라고 불린다. 여학생 총무에게 위 이야기를 하고 그 여학생 좀 찾아달라고 했는데 아직 연락이 없다. 아 정말 관뚜껑 닫을 때 내 인생 최대의 실수고 후회할 일이다. 이선희 가수가 부른 <아~옛날이여>가 나의 주제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