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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 마음 하얀 마음. 1

최고의 할아버지와 장손

by 함문평 Jul 19. 2023

 할아버지는 내 동생들에게 미안한 말이지만 오직 장손밖에 안중에  없었다. 경로당에 할아버지 수신자로 건영 정기화물로 한산도 1,000갑들이 대형 박스를 보내 동네 최고의 손자를 둔 할아버지였다. 1987년 중위로 진급해서 ㅇㅇ사단 신병교육대 교관 겸 인사장교가 되었다. 요즘은 훈련병들도 급여가 높아지고 병사들 봉급도 높아지고 물품 구입에 제한이 사라졌지만 그 시절은 통제가 많았다. 직책이 훈련병에게 담배를 지급하는 규정이 한산도와 은하수를 반반 팔아야 했다.

일직사령 하는 일요일 일직하사에게 오늘 담배 판매는 은하수, 한산도 반반 없이 신청을 받으라고 했다.

 훈련병들이 한산도는 신청 안 하고 은하수만 신청했다. 방위병에게 일직사령 지시라고 은하수만 구입해 나누어주었다. 훈련병은 환호성을 질렀다. 월요일 출근한 충성마트 관리관은 한산도 은하수 반반 팔아야지 은하수는 100% 나가고 한산도는 100% 재고면 재고 누가 책임지냐? 고 했다. 걱정 마라 하고 내가 1,000갑 들이 큰 박스를 구입해 할아버지 경로당에 보냈다. 할아버지는 20여 명의 노인들에게 자랑을 했다. 한산도 천 갑을 우리 장손이 보내왔다. 여러갑 가져가지 말고 한갑식 가져가고 떨어지면 얼마든지 가져가시오. 100 갑 이하로 줄면 우리 장손이 또 천 갑을 채워줄 것이라고 자랑했다. 그 일로 경로당에서는 할아버지와 나를 <최고의 할아버지- 손자>로 불렸다. 그렇게 분기마다 천 갑을 정기화물로 보냈다.


87년 연말 관보가 왔다.


<조부 위급래요망> 그 당시는 전보의 일종인데 동네 이장이나 면장이 확인해서 공증

내용이라고 관보를 보내면 부대서 휴가 보내주는 제도가 있었다. 관보를 근거로

다녀오겠습니다 신고하고 휴가를 갔다.


원주까지 고속버스 또 우산동서 강림 가는 동신운수 타고 내리니 정류장에 위독하다는 할아버지가

계셨다.


  "아니 관보 받고 왔는데  위독 아니세요?"

  "위독이지. 내가 죽기 전에 손주 며느리 보고 죽어야 하는데  네가 장가갈  맘이 있는 거냐? 없는 거냐?"

  "여자가 있어야 결혼하지 저 혼자 어떻게 결혼해요?"

  "야 다른 놈들은 고등학교만 마쳐도 잘 들 결혼하는데 넌 뭐가 부족해 여자 하나 못 들여오냐?"

  "연애하던 여자가 떠나고 아직 연애할 틈이 없어요."

  "다 필요 없다. 내일 날 따라오너라."


다음날 할아버지가 농협에서 돈을 찾거나 입금 때마다 친절하게 해 준 김경희 양을 나의 짝으로 소개팅을 해주었다. 알고 보니 지역 부곡의 김 선생이라고 은퇴한 교장 손녀였다. 그러고 보니 대학 1학년 여름방학

이경우 교수님 특명을 받고  강림노고소의 태종대 탁본을 뜨고 김 교장님의 <중산일기>를  지금처럼 스마트폰이  없어 문구점서 책표지와 서문 맨뒤만 복사해 이 교수님 연구에 참고하게 했는데  참 묘한 인연이었다.


다방에서 우리 할아버지와 그쪽 어른이 자리를 비켜주고 그녀와 나 단둘만 남았다.

아예 할아버지가 손주며느리로 지칭해 그런지 이 여자는 완전 다음 주에도 약혼 날을 잡자고 했다.

난 겁이 났다. 아니 그래도 어는 정도 사귀고 혼담이 오가는 것이지  그녀는 내가 경희, 경화 오빠라는 걸 오래전부터 알았고 장교 중위 일 년만 고생하면 대위되고 대위 봉급이 중위와 비교 안될 만큼 높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여자가 너무 영악한 거 아닌가 생각하고 할아버지에게 거절할 명분 찾으려 그 여자를 자세히 보았다.

그녀의 앞니 하나가 정상 치아 아니고 교묘하게 해 넣은 이라는 것을 발견했다.

 난 그녀의 손을 잡고 횡성 분위기 나는 레스토랑서 식사를 했다. 집에 들어오니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가 나에게 아가씨  맘에 드냐고 물었다. 난 고개를 좌우로 도리도리 했다. 


  "야 서울 가봐야 그런 참한 색시감 없다고 뭐가 문제냐?"라고 아버지 할아버지가 야단치셨다.

  "아니 결혼하면 입맞춤도 할 텐데 아가씨 치아가 본 네가 아니더라고요?"

  "야. 이가 밥 먹여줘? 이를 해 넣었으면 무슨 사정이 있었겠지?"

  "하여튼 전 치아 깨진 여자와는 결혼 안 해요." 하고 서울로 왔다.


아버지가 나중에 휴가 내서 집에 다시 한번 다녀가라 하셨지만 부대서 짬이 없다고  고군반 입교할 때까진 서울을 사수했다. 세월이 지나 내 이빨이 깨지는 일을 당했다. 광주 고군반서 소총을 10분간 휴식 후 다시 군장을 거는 순간 총이 튀어 내 앞니가 부러졌다. 위치도 내가 소개팅서 본 아가씨

해 넣은 위치와 어쩜 그리 똑같은지? ㅠ

독자들이여 절대로 남 외모 흉보지 마시라. 내가 흉보면 언젠가는 나에게 똑같은 일 당한다. 경험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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