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성 고향에서 공부 좀 한다고 부모님 기분이 좋아졌을 때 5학년 담임선생이 가정방문을 했다.우리 집 소 99 마리 가정환경 조사를 하시고 나서 아드님 공부 대학까지 보낼 거죠? 하는 질문에 아버지, 할아버지가 그렇다고 대답을 하셨다. 소를 다 팔아서라도 장손 공부시킬 거라고 할아버지 말씀에 여기 강림은 중고등학교가 없으니 원주나 횡성으로 전학을 보내라고 하셨다. 할아버지는 어차피 고향을 더나 공부시킬 것이면 서울로 보낸다고 하셨다. 그때 막내 작은 아버지가 군대를 공병대에서 부르도저 운전병으로 전역을 했다. 부르도저는 너무 비싸니 택시를 사달라고 해서 강림에서 산을 하나 팔아 택시를 사주었다. 조카를 서울로 전학을 시키는데, 일가친척 하나 없는 곳보다는 작은 아버지 옆이 좋다고 대방2동으로 방을 얻고 대방초등학교로 전학을 했다. 6학년 올라간 3월 4일 서울 D초등학교로 전학을 왔다.
강림은 1학년부터 6학년까지 1반이고 58명이었는데 서울은 6학년이 15반까지 있었다. 8반 78번이 되었다. 9반부터 15반까지는 여자반이었다. 점심시간에 운동장에서 남자반 번호순으로 한 줄로 서고 여자반도 한 줄로 서서 같은 번호가 포크댄스 파트너였다. 전학을 와서 78번인데 여자반 9반 부터 15반까지 78번은 마주 서면 내 얼굴이 그녀 젖가슴이 묻혔다. 기분이 묘했다. 그녀 가슴에서 엄마 냄새가 났다. 그 시절은 매월 시험을 보고 성적표를 보내주고 부모님 도장을 받던 시절인데, 횡성서 1등 재수 없으면 2등을 하다가 전학을 오니 78명 중 40 등이었다. 성적표를 받고 화장실에서 울고 세수를 하고 교실로 들어왔다.
지금은 공군사관학교가 청주로 이전했는데 6학년 어느날 보라매 공원이 된 공군사관학교로 송충이 잡으러 갔다. 오전 수업만 하고 그산에서 선생님이 나누어준 종이봉투에 송충이 10마리를 담아 제출하고 집으로 가는 것이었다.남학생은 금방 제출하는데 9반부터 15반 여자들 중에 많은 여학생들은 남학생에게 부탁을 해서 제출했다. 버려진 라면 봉지에 송충이를 가득 잡아서 9반부터 15반까지 78번만 오라고 했다. 그녀들은 환호성을 질렀다. 송충이를 더 잡아 78번 아닌 여학생들에게도 나누어주었다. 송충이 잡아준 것으로 학교생활에 자신감을 얻었다.
그해 대방초등학교에 수영장을 개장했다. 요즘은 수영을 가르치는 장소가 많지만 그 시절은 동대문 수영장이 유일한 서울의 수영 강습장소였고 당연히 수영할 줄 아는 사람 손들어하니 78 명 중에 7 명이었다. 횡성 촌에서 누가 자유형, 배영, 접영을 가르친 것도 아니고 동네 형들 따라 잠수형, 개헤엄, 자유형 닥치는 대로 연습한 실력으로 수영장 이족에서 저쪽을 왕복을 했다. 순식간에 소문이 났다. 아버지가 해군 대령인 그녀가 여자반 14반 아니면 15반 끝 교실인데 쪽지가 왔다. <너 수영 잘하는 거 소문으로 들었다. 우리 아빠가 해군 대령이라 해군본부 수영장을 이용할 수 있으니 너 데려가려고 하니 토요일에 수업 마치고 교실 입구 이순신 장군 동상 옆에서 만나자. 상신>
황당했지만 수영 잘한다는 소문으로 만나자는데 거부할 이유도 없고 해서 남았다. 해군본부 수영장은 수심 80cm부터 2.5m까지 북에서 남으로 갈수록 깊었다. 그녀 아버지에게 인사를 했다. 수영장에서 어차피 알몸으로 수영복만 입은 상태서 인사를 하니 대령 계급장을 본 것도 아니고 우리 아버지나 할아버지보다 인물 좋은 것도 아니라서 긴장도 없었다. 군용 연습용 보트에 그녀와 나를 태우고 2.5m 구간으로 가더니 보트를 뒤집었다. 어차피 수심 상관없이 동서는 세로고 남북이 가로라서 짧은 동으로 잠수 상태로 갔다. 살짝 눈을 내망오 보니 그녀는 수영을 해서 아빠 있는 곳으로 가서 아빠와 물속에서 대화를 하고 내가 어디쯤에서 나오나를 살피는 눈치였다. 잠수로 한 2~3분은 횡성서 누가 오래 참나 시합을 한 경험으로 3분 잠수 잠시 올라와 숨 쉬고 다시 잠수를 10번 정도 하니 난리가 났다. 비상 사이렌이 울리고 대방초등학교 6학년 함ㅇ ㅇ어린이는 구조본부로 오기 바랍니다라고 방송이 나오고 수영장 안 모든 사람은 수영장 밖으로 나왔다. 실실 걸어서 구조본부로 갔다. 그녀는 눈물이 글썽해서 야~ 함ㅇ ㅇ 난 너 물속에서 못 나온 줄 알았다! 하면서 내 등짝을 힘껏 팼다.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악의 없음을 알기에. 더 잘 사귈 수도 있었는데 그녀 아버지가 전라도 출신이라고 장군이 못되어 대령으로 은퇴해서 이민을 갔다.
중학생이 되었다. 생물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했다. 성물선생님이 각 분단별로 개구리 2마리씩 반장 보고 나누어주라고 했는데 반장이 비위가 약해 개구리를 만지지 못했다.
생물 선생님은 촌에서 개구리 잡아본 사람 손들라고 했다. 손을 들었더니 함문평이 나누어 주라고 했다. 촌놈이 서울에 가서 잘한 것은 송충이 잡는 것과 수영한 것과 개구리 분단별로 나누어 준 것이다.
세월이 흘러 초등학교 졸업 50주년 동창회에 갔더니 여학생이 나를 보고 송충이! 했다. 그러고 보니 포크댄스 파트너 얼굴이 희미하게 연상이 되었다. 그때 내 얼굴이 그녀 가슴이었는데 지금은 그녀 머리가 내 턱에 나란했다. 78번 여학생들은 세월이 40년이 흘렀어도 송충이를 기억하고 고마웠었다고 말했다.
중학생이 되었다. 과학 생물 시간에 개구리 해부를 했다. 반장에게 각 분단에 개구리를 두 마리씩 분배하라고 했는데 반장이 개구리를 만지지 못했다. 선생님은 시골에서 개구리 좀 잡아본 촌놈 손들어봐 하셨다. 손을 번쩍 들었더니 함문평 나와서 개구리 분배하라고 하셨다. 나는 개구리 열 마리를 다섯 분단에 나누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