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TC 1년 차 때 일이다. 선배들이 시간 5분 안에 여자를 한 명 대동하고 무심천 강변 꽃다리 <가덕순대집>으로 집합을 걸었다. 꽃다리에서 지나가는 여자들을 붙들고 사정을 이야기하고 일일 파트너를 부탁했다. 다들 미친놈 하면서 지나가는데 머리카락이 등 허리까지 길게 늘어진 여자가 오늘 딱 한 번입니다. 애프터 신청은 없어요 해서 그런다고 약속했다.
가덕순대에는 이미 동기생 과 선배들이 애인들과 와있고,선배들은 시계를 보면서 나의 도착시간을 체크했다. 그녀와 들어가니 박수를 쳤다. 각자 자기소개를 하고 순대와 막걸리 소주 맥주 취향에 따라 마셨다. 자기소개를 했다. 그녀는 고향이 제주도 애월읍이라고 했다. 웅변이 특기라고 했다.
제주에서 초등학교, 중고등부 웅변으로 상을 탔다고 했다. 곧 6월이 되면 6.25 반공 웅변대회 대학부에 출전하고 싶은데 원고가 문제라고 했다. 선배들이 오늘 파트너로 잘 오신 것입니다. 여기 함 후배가 국어교육과이고 소설을 써서 교내 구룡문학상에 <대홍수>로 당선 상금으로 술도 마셨다고 자랑했다. 그 말에 그녀는 애프터는 없다더니 반공 웅변대회 원고를 써 달라고 했다. 원고를 썼다. 세월이 흘러 가물가물하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었다.
<원고 초안>
6.25가 발발하기 전 전쟁이 나면 평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신의주에서 저녁을 먹겠다고 국방부장관은 호언장담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정작 6.25가 발발하자 방송으로 녹음으로 국민 여러분! 국군이 북한군을 물리치고 북진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방송을 하고 이승만 대통령과 각부 장관 및 국회의원들은 수원 찍고 천안 삼거리 호두과자 간식을 먹고 대전역에서 가락국수를 드셨습니다. 순진하게 방송을 믿었던 서울시민만 한강다리가 폭파되어 끊어진 다리를 건너던 시민은 수장되었고, 다리 폭파된 소문을 듣고 강북에 남은 시민은 공산치하에 김일성 장군 사진과 스탈린 사진을 들고 길거리에 동원되어 환영을 했습니다.
오늘 여기 청중 여러분은 충북 청주분들이라 서울 여의도에서 남으로 내려오는 대방역 지하차도를 구경하신 분도 있고 없는 분도 계시겠지만 그 지하차도 만든 이유가 전쟁이 나면 여의도 국회의원들을 남쪽으로 빨리 피신하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청중 여러분!
이게 말이 됩니까? 왜 전쟁이 나면 고위급이 도망갈 궁리부터 합니까?
북에서 포 한 발만 쏘기만 쏘라 바로 100배의 포탄과 공군 전투기로 김일성 주석궁을 초토화시켜야 한다고 이 연사 강력히 주장하는 바입니다.
(이하생략)
우레 같은 박수를 받았다.
써준 원고로 연습을 하더니 정말 충청북도 자유연맹 주관 웅변대회서 대학일반부 <대상 트로피>와 상금 10만 원을 받아서 가덕순대에 5월에 모였던 인원 그대로 다시 모였다. 그날의 물주가 되었다. 상금은 받은 날 순대와 술값으로 다 나갔지만 그녀는 트로피를 그녀는 소중하게 관리했고 연애도 이어졌다.
가을 낙엽이 떨어질 때 그녀와 헤어졌다.
1년 차 용무제 날이 다가오는데 데리고갈 파트너와 결별을 했다. 헤어질 때 헤어지더라도 이번 축제만 참석해 주고 헤어지자고 애걸해도 안되었다. 비상수단을 동원했다. 작은 여동생은 청주서 같이 지내는 거 동기들이나 선배나 훈육관까지다 알고 있지만 큰 여동생 존재는 아무도 몰랐다.
큰 여동생에게 오빠가 축제 같이 가기로 제주아가씨와 헤어졌으니 대타로 오든지 원주여고 나오고 청주서 대학생활하는 여자 소개하라고 했더니 처음에는 유아교육과 석미경을 소개해 주겠다고 했다. 그녀가 번복하는 바람에 동생이 참석했다.동생은 축제에 입을 옷이 없다고 오빠는 장손이니 할아버지에게 편지 한 통만 쓰면 소를 팔아 돈을 보내줄 것이라고 했다. 할아버지에게 학군단 축제 준비로 돈이 좀 필요합니다.
편지를 보냈더니 대학교 한 학기 등록금이 65만 원 시절에 축제에 쓰라고 50만 원을 우편전신환으로 보내주셨다. 청주우체국에서 현금으로 전환해서 여동생에게 30만 원을 주고 못을 맞추었다. 20만 원은 내가 썼다.
동생은 원주여고서 소문난 응원단장에 바쁜 퀸카였다. 빨강 원피스로 무대를 흔들어 트로피를 받았다.
이 사연은 1990년 1월호 리더스 코리아에 실렸다. 국립중앙도서관 보수 공사 마친 기념으로 방문해서 찾아본 것입니다. 여동생은 나를 범생이라고 불렀고 나는 그녀를 날날이라고 불렀다. 동생은 오빠는 책만 봐서 여자 보는 눈이 없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