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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문

by 송나영 Jan 29. 2025

  오해와 헛소리가 같이 일어났다. 거진 반세기 가까이 벚꽃으로 알고 있었는데 그게 이화문이란다. 여태 나는 얼마나 헛소리를 하고 살았는지 아무 말이나 되는 대로 주워섬기고 살았다.

  오랜만에 친구와 덕수궁 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수묵화 전시회를 보러 갔다. 전날 늦게까지 일하다가 친구에게 받은 카카오톡 문자를 쓱 훑었다. 점심 메뉴를 선정하라고 몇 군데 음식점을 보내줬다. 생선구이. 칼같이 단답을 날리고는 늦은 시간 지친 몸을 끌고 집에 들어와 바로 누웠다. 생선구이집은 경복궁 근처였다. 여기서 어떻게 가야 하는지 대중교통을 대충 찾아보고 눈을 감았다.

  어디야? 경복궁. 다 왔어. 친구도 광화문이라고 거의 다 왔다고 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이상한 걸 못 느꼈다. 생선구이집 앞에서 친구에게 전화를 했다. 어디쯤 오냐고 먼저 들어가겠다고 말하려는 참이었다. 웬일인지 경복궁이라더니, 덕수궁으로 와야지. 친구는 전시 먼저 보고 밥 먹자고 한 거 잊었냐고 했다. 까맣게 잊었다. 한 달 전부터 만나자고 얘기하면서 거의 일 년 만에 보는데 전시회도 함께 보자고 했다. 무슨 전시가 좋을지 내가 찾아보겠다고 먼저 말해놓고는 약속 날이 다가오도록 아무것도 찾지 않았다. 친구가 전시회 두 개를 추천해서 카카오톡 문자로 보내줬다. 둘 다 보고 싶었지만 대중교통으로 가기 쉬운 덕수궁으로 정했다.

  버스로 갈까 전철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지난번에 이층 버스를 처음 타고 오면서 속이 느글거렸던 생각이 나서 답답하지만 전철로 가기로 했다. 교통편을 어떻게 가야 편안할 지에 몰두하다가 그만 전시회를 먼저 보기로 한 건 잊고 전날 얘기한 밥집 근처인 경복궁으로 갔다. 후다닥 덕수궁으로 가겠다고 정부청사 뒤로 빠르게 걸었다. 조선일보를 지나 덕수궁 앞에 오니 노인들이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여럿 서 있었다. 그들의 시위는 추운 날씨 때문인지 점심 때여서였는지 곧 뿔뿔이 흩어졌다.

  친구의 손은 꽁꽁 얼어 있었다. 아침도 안 먹고 한 시간 반을 전철로 온 데다 덕수궁까지 온 힘을 다해 걸어오느라 허기가 졌다. 덕수궁 바로 옆 와플집에서 나는 요기를 하고 친구는 몸을 녹였다. 우리는 덕수궁으로 향했다. 수묵전시는 산수화 일색일 거라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다양했다. 한•중 화가들의 수묵화는 교과서에서 배운 조선시대 수묵화가들뿐 아니라 현대 화가들의 작품도 있었다. 역동적이고 차가운 도시의 모습에 풍자까지 다채롭게 뽐내고 있었다.

  덕수궁은 어려서부터 전시를 보러 많이 온 곳이다. 엄마의 손을 잡고 매년 열리는 국전도 보러 오고 박수근의 전시회도 여기서 보았고 오노레 도미에의 석판화전도 지하에 있던 전시실에서 본 거 같다. 전시회를 보고 나면 엄마의 푸념도 함께 들어야 했다. 석조전이 정면으로 보이는 등나무 그늘은 사십여 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름없이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그 등나무 그늘에 앉아 엄마는 과부도 아닌데 남편도 없이 애들만 데리고 온 걸 무척 탐탁지 않게 여겼다. 엄마의 과부타령을 듣다가 발견한 게 석조전 건물 중앙에 박힌 꽃모양이었다. 저 건물이 1910년에 지어졌다더니 그래서 벚꽃문양을 가운데 새겼다고 엄마한테 말했다. 나는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확신을 했다. 일본은 우리 궁까지 자신들의 상징을 새겼다고 말이다.

  친구와 수묵전시를 다 보고 대한 제국 황실 조명 전시까지 보자고 돈덕전을 찾았다. 고종이 대한제국으로 선포하고 황실의 위상에 맞는 서양식 건물로 지은 곳이 몇 곳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돈덕전이었다. 석조전과 현대미술관 사이에 난 길로 올라가면 돈덕전인데 그저 옆을 스치기만 했지 그 건물이 돈덕전인 줄 처음 알았다. 어설픈 내 얕은 지식을 자랑했다. 석조전의 가운데 꽃이 벚꽃이라고 일본의 상징이라는 말까지 덧붙였다. 친구는 일본 왕실의 상징은 국화라고 했다. 나는 이십 대에 '국화와 칼'이라는 책을 읽었었다. 도대체 나는 무엇을 읽은 거지? 석조전 건물을 우리의 국격을 낮추기 위해 일본에서 지었을 거라고 어려서 단정한 것을 아직도 사실로 여기고 있었다. 석조전은 고종이 지은 서양식 건물 중 하나였고 건물 중앙에 새긴 꽃은 이화문이라고 했다. 황실 조명 전시회를 보러 가서 비로소 이화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이화문 샹들리에를 통해서 내 무지를 바로 잡을 수 있었다. 그동안 얼마나 헛소리를 했을까? 제대로 알아보지도 않고 내 머릿속으로 떠오르는 걸 조합해서 말도 안 되는 말을 얼마나 많이 하고 살았을까?

  책을 읽어도 내 기억은 감정만 기억할 때가 있다. 어느 국문과 교수가 오독은 정상이라지만 이건 오독이 문제가 아니다. 내가 단정 짓고 맞다고 생각한 오류가 더 문제다. 혼자만 그런 생각을 하면 그나마 다행인데 그걸 자랑하고 다니는 뻔뻔한 입이 더 문제다. 잘못 알고 잘못 읽을 때가 많아진다. 본 뜻을 헤아리지도 않고 대충 몇 자 읽고는 그럴 거라 단정 짓는다. 편견과 선입견을 욕하면서 내 안의 모순덩어리에 눈을 감은 거다. 함부로 말하는 게 점점 무서워진다. 내가 아는 게 진짜 아는 것인지 사실을 제대로 알고 말하는 건지 두려워 머뭇거리곤 한다. 나이가 들수록 말이 점점 더 힘이 세진다. 말이 참으로 무거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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