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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지안하다 Jun 23. 2023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볼 뿐이다, 위로하는 마음으로  

오늘 건넬 문장: 『시와 산책, 한정원 (시간의흐름)』

시인이 전하는 또 하나의 위로. 




사랑하는 이를 먼저 떠나보낸 슬픔의 안개가 자욱했던 날들. 서로의 고통이 일일이 다 공유되지 않기에 알 수 없고, 서로가 서로에게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날들이 계속되자 안개는 쉽사리 걷히지 않았다.


공감하는 것을 포기하은둔 생활하기 직전에 만난 신형철 평론가님의 문장.


"인간은 무능해서 완전한 이해가 불가능하고 또 인간은 나약해서 일시적인 공감도 점차 흐릿해진다. 그러니 평생 동안 해야 할 일이 하나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이 문장을 만난 후로 평론가님을 따라 '슬픔에 대공부'하는 사람이 되야겠다 다짐했다. 나는 이해받지 못했지만 나와 같은 아픔을 겪는 누군가가 있다면 나는 이해해 줘야지. 제대로 이해해 줘야지.


의욕 앞섰을까.


2년 뒤, 나와 가까운 친구가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다.

그때 나는 따뜻한 말로 친구의 슬픔을 다독이고 싶었고, 다 이해한다고 말하고 싶었다. 그동안 슬픔에 대해 공부했고, 나와 같은 슬픔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만큼 내가 잘 안다고 오만했으니까.


편지상실을 겪었을 때 내가 들었던 노래, 영화, 책을 적어서 친구에게 전해줬고, 그 당시 나를 위로해 준 책을 선물해 줬다. 이렇게 하면  나아진다는 훈수도 뒀던 것 같다. 그리고 속으로는 이런 친구 없다며 스스로를 멋진 사람이라고 자화자찬했던 것 같다.


그 '멋짐'은 '부끄러움'으로 바뀌었다. 한정원 시인님의 '시와 산책'의 한 구절을 읽고 나서.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고통 위에도 계절이 지나간다. 계절마다 다른 모자를 쓰고 언제나 존재한다. 우리는 어쩌면 바뀌는 모자를 알아채주는 정도의 일만 할 수 있는지도 모른다.
 나는 그녀가 쓴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어느 모자를 쓰든 그녀의 아름다움은 훼손되지 않는다. 시간이 얼마나 더 흐르든 "이제 모자를 좀 벗는 게 어때?"라고 말하지 않기. 그 응시와 침묵이 내 편에서의 유일한 위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시와 산책, 한정원 (시간의흐름)』


사전을 찾아보면

'슬픔'은 정신적 고통이 지속되는 일,  

'위로'는 따뜻한 말이나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어 주거나 슬픔을 달래주는 일이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정신적 고통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따뜻한 말이 주는 위로의 힘만 알았던 것이다. 말로 하는 위로의 한계는 미쳐 보지 못했다.

이 책 덕분에 새로운 위로의 방법을 배웠다. 바로 '행동'으로 슬픔을 달래주는 일.

그저 현재 슬프구나, 아프구나, 괴롭구나 인지하는 일.

다독이는  애쓰지 않 위로가 될 수 있구나,  '''침묵'.



이를 배우고 나니

친구에게 온전한 위로를 해줬다고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같은 상황이어도 사람마다 느끼는 슬픔이란 감정은 다 다른데.  

지금 생각해 보니, 친구에게 편지를 쓸 때 내가 받고 싶었던 위로의 말을 적었던 것 같다. 친구를 생각하기보다 나를 위해 써 내려갔던, 위로를 빙자한 자기 위안.  




내가 아는 슬픔은 '내가 느낀 슬픔'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 한계에서부터 노력해야겠다. 멈추지 않고 슬픔에 대해 공부할 수 있도록.


시인님이 그랬듯이

계절마다 다른 모자를 쓰고 머무는 상실의 고통을, 그렇게 바뀌는 모자를 물끄러미 바라봐야지.

잘 지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원을 보내며.


슬픔을 품은 사람이 쓴 모자를 슬픔을 모르는 사람은 보지 못하더라도,

각각의 계절마다 바뀌는 모자를 알아챌 수 있도록 슬픔이 있는 우리는 서로를 자세히 들여다보자.


그렇게 서로가 서로에게 기댈 곳이 되자고, 무르는 슬픔과 하루하루 살아가는 이들에게 다정한 마음을 담아 위로를 전해 본다.


펭수의 긍정적인 태도를 닮은,

펭수를 좋아하는 친구에게도

그 당시 온전히 전하지 못했던 위로를 이제야 전한다. 이 글에 담긴 나의 진심이 전해지길 바라본다.  


좋아하는 걸 더 좋아하면서 네가 행복하길 바라.

우울한 날엔 조용히 너의 곁에 있어주고, 눈부시게 아름다운 날엔 활짝 웃으며 널 지지할. 그렇게 너의 안부를 물을 때 살포시 위로도 함께 건넬게.


우리가 함께 모자 쓰고 맞을 각각의 계절이 찬란하게 빛나기를 소망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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