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실은 내 생일 하루 전날 운명처럼 우리 집으로 왔다. 묵직한 플라스틱 켄넬에 뭇사람들의 걱정과 사랑을 싣고.
한 달간의 숙고 끝에 내린 결정이었다. 열두 살 때 처음으로 들였던 첫 강아지 멍구를 잃은 이후로 반려동물 같은 건 다시는 곁에 두지 않으리라 다짐했었다. 뜻밖의 일로 하여금 뜻하지 않은 일을 하게 된 셈이었다. 슬픔의 경중을 따지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 가 싶지만 슬픔은 더 큰 슬픔으로 덧씌워지는 것임은 분명하다. 집안을 가득 메운 적막이 무서웠다. 아빠의 빈자리는 무소음의 형태로서 들을 수 있는 것이었다. 남겨진 자리에 시선이 머물러 있지 않도록, 들리지 않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없도록 어떤 생명력이 아빠가 떠난 자리에 깃들었으면 싶었다.
몽실은 전라북도 김제시에서 구조되어 해당 시 보호소에 머물던 중 보호기간이 임박하여 안락사 리스트에 오르내리던 유기견이었다. 유기견 구조 단체에 의해 다시금 구조된 몽실은 두 달여 동안 임시보호자 댁에서 따뜻한 집밥과 안락함을 체험한 뒤 우연히 내 눈에 띄어 우리 집으로 오게 되었다. 몽실은 여생을 함께 보낼 가족이 필요했고, 우리는 눈에 보이기도 하고 냄새를 맡을 수도 있으며 만질 수도 있는 말 그대로 살아있는 가족이 필요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필요했기에 만날 수 있었으리라고 믿는다.
몽실을 만나게 된 건 정말 우연한 일이었다. 사실 포인핸드에 올라오는 입양 공고를 때때로 들여다보곤 했지만 공고의 제목 앞머리에 달려 있는 꽃송이를 볼 때면 어김없이 울적해져 그 짓도 그만둔 지 오래였다. 그러다 계정만 만들어 놓고 방치해 두었던 인스타그램이 생각났다. 한때 진지하게 유기견 입양을 고려했던 적이 있었기에 해외 입양을 돕는 몇몇 유기견 구조 단체를 팔로우해 두었기 때문이다. 살고 있는 곳이 주택도 아니거니와 우리는 여전히 월세살이를 하고 있기에 여건에 맞는 인연을 찾기 위해 애썼다. 내가 사는 곳에도 유기견 입양 센터가 있지만 입양 공고 속 친구들은 대부분 핏불 테리어 같은 대형견종이었기 때문에 한국에 있는 유기견 보호소에 눈을 돌려야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유기견 입양에 대한 인식이나 반려견에게 호의적인 문화도 이곳에서 더욱 보편적인 것이기에 더욱이 한국에 있는 유기견을 가족으로 맞고 싶었다. 이왕이면 체구가 너무 작은 친구보다는 조금 몸집이 있었으면 싶었다. 그러다 노르스름한 두 귀가 돋보이는 복슬복슬한 개를 발견한 것이다.
몽실 말고도 마음이 갔던 다른 개의 입양 신청을 했었지만 한 번의 고배를 마시고 나서는 내심 포기하고만 싶었다. 한번 겪어 보았기에 너무나도 잘 아는 슬픔을 감당할 자신도 확신도 없었다. 그러나 나보다도 평생의 단짝을 잃은 엄마가 더욱 간절히 원했기에 어쩔 수 없었다. 나는 임시보호 했던 경험까지 내세워 입양신청서를 빼곡하게 작성했다. 신청서를 제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구조 단체로부터 답변을 받을 수 있었고 내게 추가 질의를 해 왔다. 많이 소심하고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좀 걸릴 수 있으니 충분히 고려해 달라는 부탁과 함께였다. 몽실을 바다 건너 내가 있는 곳까지 보낼 위험을 감수해도 되는지 입양 신청자인 나에 대한 검증을 위한 것일 터였다. 해외 입양은 대면이나 전화를 통한 면접이 어려웠기 때문에 충분히 납득할 수 있었다. 단체에서 보낸 질문들을 훑어보니 파양 가능성을 최대한 배제하려는 노력이 느껴졌다. 그중 기억에 남는 질문은 대부분 어린 강아지를 선호하는데 성견을 입양하고자 결정한 이유가 무엇인지를 묻는 것이었다. 당시 몽실의 추정 나이는 두 살이었는데 앞으로 함께 지내게 될 날을 역산해 보면 나이가 그리 많은 것도 아니었다. 성견인 데다가 몸집이 작지 않은 진도 믹스의 경우 입양처를 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마음이 좋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스물두 개의 추가 질문에 대한 답을 성실히 작성해 보냈고, 한 시간이나 지났을까 마침내 우리 집으로의 입양이 결정되었다는 답변을 받았다. 나는 그저 이것이 맞는 선택이길 간절히 바랄 뿐이었다.
오매불망 기다렸던 대망의 날이었다. 우리의 경우 운이 좋게도 이동봉사자를 따로 구하지 않아도 되었다. 이 날 뉴욕으로 오는 다른 친구들이 많았는데 우연찮게 딱 한 자리가 남아 그곳에 몽실의 자리가 배정될 수 있었다. 우연치고는 퍼즐 조각처럼 너무나도 딱 들어맞는 턱에 인연이 아닐 수 없다는 확신에 불을 지필뿐이었다. 자가용은커녕 장롱 면허조차 없는 나는 엄마와 함께 한인택시를 타고 공항으로 나섰다. 삼십 분까지는 별도의 비용 청구 없이 기다려 줄 수 있다는 말에 그렇게 해 달라 부탁한 후 아무런 걱정 없이 공항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나 삼십 분은 고사하고 두 시간이 훌쩍 넘는 시간이 되어서야 우리는 유기견 구조 단체의 관계자와 조우할 수 있었다. 잠시간 기다리면 지체 없이 공항 밖으로 쉽게 데리고 나올 수 있을 거란 내 생각은 처음부터 틀려먹은 것이었다.
실제로 마주한 몽실은 고향 땅을 떠나올 때 모습 그대로였다. 구조 단체에서 실시간 방송을 해 준 덕에 몽실이 공항까지 무사히 도착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임시 보호자의 품을 떠난 몽실의 눈은 금세 팔자를 그렸다. 화질이 뛰어난 영상이 아니었음에도 온몸을 떨고 있다는 것쯤은 알아차릴 수 있었다. 사진으로만 보던 몽실을 직접 마주하고 있자니 설렘보다 걱정부터 앞섰다. 감당도 못할 대책 없는 결정을 한 건 아닌지. 결코 작지만은 않은 이 개 한 마리를 끝까지 책임질 수 있을지.
순심이니 춘심이니 촌스러운 이름을 붙여 주면 장수한다는 속설 때문에 불과 몇 분 후면 ‘몽실’이라는 이름으로 불려지게 될 이 개는 제 이름에 걸맞는 단발머리를 하고 있었다. 귀 쪽 털만 길게 다듬은 것이 꼭 단발머리 소녀처럼 보이게 했다. 분홍색이 배색된 검정 패딩 조끼를 입은 채로 몽실은 시종일관 눈을 시허옇게 뜨고는 분주히 또 조용히 주변을 살폈다. 성긴 초록색 그물망으로 덮인 켄넬 틈새로 까만 코보다 더 큰 두 눈과 팔자로 사정없이 늘어뜨린 미간이 보였다. 잔뜩 짜부라뜨린 자라목과 오들오들 떠는 몸까지. 제가 어쩌다 이 먼 곳까지 오게 된 것인지 영문을 알지 못하는 얼굴이었다. 입양 전에 불렸던 이름으로 여러 번 불러 보았지만 두려움에 몰두해 있는 몽실에겐 들리지 않은 듯했다.
집으로 데려와 살펴본 몽실은 온몸이 흠뻑 젖은 채였다. 별 수 없이 켄넬에서 억지로 끌어내 오줌에 잔뜩 절여진 몸을 씻겨야 했다. 두 달가량을 임시보호자 댁에서 지냈음에도 그동안의 고생스러운 길 위의 삶을 가늠케 하는 야윈 몸을 어루만질 수 있었다. 콧방울보다 더 큰 눈동자는 금방이라도 눈물을 쏟아낼 것처럼 보였다. 왕방울만 한 두 눈엔 공포심만 서려 있었다. 좁은 켄넬 안에서는 더 이상 도망갈 곳이 없는데도 가능한 한 가장 구석진 곳에서 앞발까지 완전히 숨긴 채로 몸을 잔뜩 움츠린 모습은 가련하기만 했다. 문득 내가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가 싶었다. 내가 너에 대해 아는 거라곤 고작 네가 어디서 어떻게 구조되었는지, 중성화 수술과 심장사상충 진단 여부, 몸무게 같은 한 단락이나 될까 싶은 내용이 다인데 순전히 내 의지 때문에 나고 자란 고향 땅을 떠나올 수밖에 없었구나. 너는 어쩌다 내 눈에 띄어서 따뜻한 보일러 바닥을 등질 수밖에 없었니. 너의 어떤 기억들이 너를 이토록 떨게 만드는 걸까. 몽실은 아무런 대답도 없이 나를 곁눈질할 뿐이었다. 슬픔을 이야기할 수조차 없는 이 가련한 짐승의 처지가 애달팠다.
꽤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구조 단체 관계자의 말은 사실이었다. 손길을 거부하지는 않았지만 우리를 따르지도 않았다. 인기척이 느껴지기라도 할라치면 켄넬 안으로 들어가 나올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러다 제 시야에 아무도 걸치지 않았을 때에는 그 틈을 놓칠 새라 용변을 보기도 하고 마른 목을 서둘러 축이기도 했다. 그때의 몽실을 두고 우리는 무려 출퇴근하시는 거냐며 마음껏 놀려 먹기도 했다. 몽실은 한 달째 되는 날 저녁부터 슬그머니 다가와 기척을 살피는가 싶더니 그날부로 우리에 대한 호기심을 내비치기 시작했다. 매일매일 약간의 진전을 보였고 우리 집에 온 지 삼 개월째가 되어서야 반갑다 꼬리를 쳐 주고 이름을 부르면 스스로 다가와 주었다.
사실 나는 영문을 알 리 없는 이 순수한 영혼에게 과분한 것을 기대했었다. 우리의 처지를 헤아려 주어 슬픔이 가시처럼 돋칠 때면 곁에 다가와 위로를 해 주고 쉴 틈 없는 기쁨을 선사해 주리라고. 하지만 몽실의 삶 역시 넉넉지 않았다. 언제부터 털이 잔뜩 뭉친 채로 거리를 떠돌아다녔는지도 분명치 않았고 누군가에게 보살핌과 애정을 받았던 적이 있는지도 알 수 없었다. 몽실은 품에 안길 줄 모르고 무릎 위로 올라올 줄도 모른다. 낯선 사람을 보면 꽁지 빠지게 도망가기 바쁘고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때는 제자리에서 그대로 몸을 옹송그리고는 이내 얼어버린다. 몽실의 몸에는 날카로운 모서리에 찍힌 듯한 ‘ㄱ’ 자의 흉터가 있고 손에 들린 것은 무엇이든 두려워한다. 정말 작은 소음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파리 같은 날벌레 소리에도 온몸을 덜덜 떨고는 한다. 이런 개에게 나는 과연 어떤 마음을 가졌던 것인가 싶어 수시로 한없이 미안해진다. 그때 참 미안했었다고 진지한 대화를 시도한다고 한들 이 착한 개는 내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듣지는 못하겠지만.
분명 슬픔을 키우는 일이라는 걸 잘 알지만 나는 이 두툼한 개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몽실은 나를 닮아 누워 있기를 좋아하고 더위를 잘 타는 편이다. 추위도 잘 타는 탓에 옷을 입혀 주려 하면 스스로 팔을 넣을 줄 아는 개다. 손을 달라고 하면 왼손부터 내밀고 ‘앉아’나 ‘엎드려’도 곧잘 한다. 또 ‘주세요’라고 호령하면 냉큼 뒷발로 바닥을 딛고 일어서서는 앞다리로 달라는 시늉을 한다. 물론 몽실이 가장 좋아하는 동결건조 북어 간식이 내 손에 들려 있을 때에만 가능하다. 원체 잘 짖지 않는 터라 가끔씩 제발 한 번만 짖어 달라고 간청하기도 한다. 사료나 시판되는 간식은 시큰둥해하면서도 데친 방울 양배추나 파근파근하게 쪄낸 단호박과 고구마 그리고 감자 같은 구황작물의 진미를 아는 개다. 고기도 다 같은 고기가 아니라는 듯 압력밥솥에 삽십여 분간 푹 고아낸 닭 국물은 흔쾌히 먹지만 행여나 췌장에 무리라도 갈까 정성스레 기름을 걷어낸 소고깃국은 한사코 사양한다. 간이 안 된 삭힌 홍어찜도 먹을 줄 아는 진정한 ‘미식견’이다. 코딱지는 있을까 싶은 작디작은 콧구멍으로 내뿜는 하찮은 콧김도 귀엽고 쭈그려 앉아 오줌 싸는 자세도 귀엽다. 한쪽 뺨에 맞닿은 털과 그 위로 느껴지는 뜨끈한 체온은 그리운 것들을 떠올리게 한다. 열한두 살쯤 함께 살았던 내 친구이자 내 동생이었던 누런 강아지 멍구와. 지근거리에 있기만 해도 살갗으로 열기가 절로 느껴졌었던 인간 난로 아빠를.
나는 나를 닮은 개와 함께 살고 있다. 우리의 만남에도 언젠가 끝이 있을 테지만 몽실의 시간이 조금이나마 더디게 흐르기를 바란다. 더 이상 작은 불안에 떠는 일이 없기를. 아픈 곳 없이 내내 건강하기를. 너의 평안을 간절히 바라는 언니로부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