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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대만앨리스 Dec 03. 2024

자폐증?

가정폭력의 그림자

1986년 초등학교 1학년의 어느 날


따뜻한 봄날의 아침, 한 줄기 햇살이 초등학교 교실 창문을 통해 들어와 책상 위에 반짝이며 부서졌다. 다른 아이들은 수업도 시작하기 전부터 부산스레 떠들며 놀고 있었지만, 숙혜는 강 건너의 무인도처럼 고립되어 있었다. 그녀의 표정은 아무것도 담고 있지 않았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 멍하니 자리에 앉아 있었다.

아이들이 뛰어다니는 소리, 웃음소리, 종소리가 교실 안을 가득 채웠지만 숙혜는 마치 다른 세상에 있는 것 같았다. 누군가 다가와 말을 걸면 좋겠지만, 동시에 그 일이 너무 두려웠다. 모두가 그녀를 이상한 아이로 생각하는 것 같았고, 그 생각만으로도 가슴속 깊은 곳이 쪼그라드는 느낌이었다.

그녀의 담임 선생님, 임 선생님은 그런 숙혜를 주의 깊게 지켜보고 있었다. 노련한 교육자인 임 선생님은 아이들 속에서만큼은 안전하게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숙혜에게 따스한 관심을 주었다. 쉬는 시간이 끝나갈 무렵, 선생님은 조용히 숙혜의 책상 곁으로 다가와 손을 얹었다.

“숙혜야, 오늘은 어땠어?” 부드러운 목소리가 숙혜의 마음에 잔잔한 파문을 일으켰다.

숙혜는 고개를 숙였다. 그저 '괜찮아요'라는 말조차 쉽지 않았다. 모든 말을 삼키고, 또 삼켰다.

임 선생님은 이윽고 조심스럽게 숙혜의 고모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날 오후, 고모는 손톱을 물어뜯으며 숙혜에게 물었다. “숙혜야, 학교에서 왜 그렇게 말을 하지 않니? 넌 자폐증이라도 걸린 거니?”

숙혜는 순간 머릿속이 하얘졌지만, 슬픔이 가득 찬 그 질문에 처음으로 진실을 이야기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떨리는 목소리로, 그녀는 마침내 자신의 비밀을 하나둘씩 풀어놓았다. 그녀가 울면, 엄마는 더 세게 때렸다고, 그래서 그녀는 울지 않는 법을 배웠다고. 그리고 화장실에 갇혀 지낼 때를 고백했다. 그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혼자 잠자는 것은 익숙했지만, 그 기억을 다시 불러오는 것조차 고문 같았다.

숙혜의 이야기를 들은 고모는 침묵에 빠졌다. 더 이상 어떤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고모는 그제야 깨달았다. 그 작은 아이가 홀로 감당해야 했던 무게는 너무도 컸다. 그날 이후, 고모는 숙혜 곁에 조금 더 가까이 다 가겠다고 마음먹었다. 이제부터 그녀는 혼자가 아님을, 또 다른 가족이 있음을, 조금씩, 아주 조금씩 느끼게 해 주리라 다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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