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인으로 태어난다는 것은

6월 22일

by 너랑

오늘은 어학원을 가지 않기로 했다. 왜냐하면 파리 오페라 발레단에서 본인들의 발레 클래스 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로 했기 때문이었다. 바스티유 극장에서 진행되는 공연이었지만 티켓값은 무료였다. 학원을 빠지는 것은 조금 아쉬웠지만, 그래도 파리 오페라 발레단이 실제로 수업하는 것을 볼 수 있다니, 발레 팬으로서 놓칠 수 없는 기회였다.


사실은 이 공연에 가게 된 것도 우연이었다. 내가 어학원 때문에 한참 열받아하고 있을 때, 친구가 “그냥 공연이나 보러 가”라고 했다. 그래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 예매창을 열었는데 거짓말처럼 그날, 이 공연의 티켓이 열린 것이다. 과연 파리는 병 주고 약 주는 도시다. 시스템으로 열받게 하고, 예술로 화를 풀어준다.


비가 내리는 바스티유 극장 앞에는 사람들이 많이 와있었다. 세계적인 무용수들의 공연을 보는 것도 벅찬데, 하다 못해 수업하는 것까지 볼 수 있는 기회가 생기다니. 또 이렇게 관대하게 무료로 표를 열어주다니. 이 도시에 대한 애정이 커져만 갔다.


전형적인 아시아인 관광객처럼 자꾸 그들의 모습을 카메라로 담고 싶었다. 익숙한 듯 공연을 즐기는 파리 시민들과, 이번 생에 마지막으로 보는 모습일지도 몰라서 모든 모습을 눈에 가득 담고 싶은 나는 절박함에서 차이가 있었을 것 같다. 그들에게는 어쨌든 다음 기회가 있을 테니 말이다.



프랑스에서 태어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예체능을 꿈꾸는 이들에게는 최고의 나라가 아닐까 싶다. 프랑스에서 태어나 발레리나를 꿈꾸는 아이들은 세계 최고의 발레단 중에 하나인 파리 오페라 발레단을 목표로 노력할 것이다. 또 축구 선수를 꿈꾸는 아이들은 음바페를 보면서 파리 생제르망에 들어가고 싶어 할 것이고. 패션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이들은 샤넬, 루이뷔통, 디올 같은 명품 브랜드나 마쥬, 산드로 같은 곳을 목표로 노력하겠지. 제1 세계 국가는 삶의 가능성과 기회가 다른 것 같다. 한국인으로서 파리 오페라 발레단, 파리 생제르망, 샤넬에 들어가는 꿈을 꾼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고, 또 허황되어 보이기까지 하니 말이다.

하지만 거창한 꿈을 가지지 않더라도, 노동환경을 볼 때 프랑스는 좋은 나라다. “프랑스는 태어나기에 최고의 나라야.”라고 프랑스인 친구가 말했다. 그는 실업 중이었는데, 실업 상태를 즐기며 해외를 마음껏 여행하고 다녔다. 노동 시간도 프랑스는 주당 35시간이 최대다. 한국에서는 52시간 근무를 한다고 했더니 경악하던 프랑스인 선생님의 얼굴이 잊히지 않는다. 게다가 프랑스인들은 일년에 한 달씩은 바캉스를 즐긴다는 것은 말하기도 입 아프다.


이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어땠을까. 일 년에 한 번은 다 같이 음악 축제를 즐기고, 주변에는 박물관과 미술관들이 지천에 깔려있고, 무료로 파리 오페라 발레단의 공연을 볼 수 있는 나라. 주당 35시간 근무하고, 퇴근 이후에는 해피 아워로 맥주 가격을 할인해 주는 나라. 나라 자체가 큰 물을 품고 있어, 어린이들이 꿈꿀 수 있는 나라.


비록 시스템은 어지럽고, 바닥에는 개똥이 널려있지만 오늘만큼은 프랑스인들의 나라에 대한 자부심을 이해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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