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냥 웃긴 뜨개일지
우리 집엔 셋이 산다. 나, 동생, 할머니. 이래저래 가족에게 받는 스트레스가 하늘을 뚫는 요즘, 내 정수리가 점점 비어 가고 있다. 앞머리와 뒷머리를 가르는 중심이 예전만큼 검지 않다. 내 몇 없는 자랑 중 하나가 미용실에 가기만 하면 추가금을 받는 빽빽한 머리숱이었는데 이제 근래에는 미용실이 제값에 머리 손질을 해준다. 진짜 큰일이다.
탈모에 가장 큰 원인은 아무래도 할머니다. 당뇨에 고혈압, 고지혈증과 골다공증 및 만성 디스크 통증까지 온갖 병은 다 달고 있으면서 식단 조절은 죽어도 하기 싫다는 81살 우리 할머니.
5년 전 급성 당뇨 쇼크로 입원했던 건 기억도 안 나는지 매번 뭘 그렇게 혼자 숨어서 먹다가 걸린다. 제대로 된 밥을 잘 챙겨 먹으면 좀 나을 텐데 한사코 밥은 싫단다. 고기도 싫고 나물도 싫고 밥도 싫고. 그럼 뭐가 좋으냐 하니 과자에 빵을 내놓으라니. 하……. 아니 할머니. 내가 주기 싫어서 안 주는 게 아니잖아. 그런 거 먹으면 할머니가 빨리 죽는다잖아.
내가 암만 화를 내도 당장 입이 궁금한 할머니는 성내기에 바쁘다. 빨리 죽으면 싸울 일도 없고 좋지 않으냐. 내가 먹는 게 아까워서 그렇지? 다 키워놨더니 빵 쪼가리 하나 먹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니? 사는 게 너무 서럽다 서러워. 매일 이런 말을 들으며 당뇨 걸린 노인의 주전부리를 막아야 한다고 생각해 보라. 탈모 정도면 증상이 약한 편일 수도 있다.
꼭 하루에 한 번씩 싸우다 보니 이제 할머니만 보면 예민해진다. 종소리만 들리면 침 흘리는 개처럼 할머니만 보면 신경이 곤두서는 거다. 오늘은 또 어떻게 싸워야 하나, 고민하는 거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할머니도 자기반성의 시간을 가지곤 하는데, 문제는 그 자기반성이 아주 아주 아주 짧고 은근한 협박으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그래, 너도 얼마나 힘들겠니. 나도 참 이러지 말아야 하는데 당뇨가 이렇게 무섭다. 넌 꼭 조심해. 뭘 먹고 있어도 입이 궁금하고 심심하고 아주 미치겠어. 근데 또 내가 살면 얼마나 살겠니. 나중에 나 죽으면 아이고 우리 할머니 먹고 싶은 거 다 먹게 해 줄 걸 하면서 후회하지 말고 그냥 먹게 둬. 그게 너도 마음 편하지.
저렇게 말하는 사람치고 진짜 죽어도 상관없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게다가 할머니는 여주 달인 물이며 퀴노아며 당뇨에 좋다는 건 다 챙겨 먹고 있다. 그러니 난 여전히 몰래 마카롱 훔쳐 먹는 할머니를 감시해야만 하는 경찰 신세다.
그렇다고 무작정 못 먹게 하는 건 아니다. 초절식 다이어트는 폭식을 불러온다는 경험으로 인해 가끔 할머니에게도 특식을 허용한다. 생일에 먹는 케이크나 잔칫집에서 먹는 뷔페 같은 것들. 지난달에도 사촌 언니네 아들 돌잔치에 갔다가 은근슬쩍 과일이며 약밥을 줄기차게 먹는 할머니를 봤지만 크게 제지하지는 않았다. 대신 그 이후 함께 한 시간 동안 산책했다.
날이 좋아 다행이었다. 한 시간쯤 걸어도 무리 없는 날씨였다. 선선한 바람도 불었고 공원에 사람도 많아 활기찼다. 간간이 바람결 따라 흔들리는 내 머리칼을 보던 할머니는 몹시 부럽다며 말했다. 나도 예전에는 머리가 참 검었는데 이제는 너무 늙어버렸어. 아주 거울 보기 싫어 죽겠어. 내가 징그러워. 나도 예전에는 예뻤는데.
아니다. 그렇게 예쁘진 않았다. 할머니는 40대부터 뽀글거리는 파마머리를 유지해 왔고 그 시절 사진을 본 바로는 지금과 별반 차이 없는 외모였다. 가족이어도 정확한 사실을 인지할 필요는 있는 법이다.
할머니가 말하는 예쁨이 젊음을 뜻하는 거 정도는 나도 알기에 굳이 입 밖으로 저 말들을 꺼내진 않았다. 확실히 사진 속 젊은 할머니는 사자 갈기 같은 머리를 달고 있더라. 동네 미용실에서 했던 머리라는데, 미용사가 꽤 힘들었을 풍성한 머리였다.
지금 할머니는 정수리부터 뒷머리까지 하얗다. 멜라닌 색소만 빠졌으면 좋았을 텐데 그냥 머리카락이 빠져버렸다. 그것도 아주 많이. 듬성듬성 난 머리카락보다 두피가 훨씬 많이 보이는 지경이다. 그걸 가리겠다고 검게 염색했더니 검은 머리카락과 살구색 두피가 대비되는 바람에 더 안쓰러워 보일 뿐이었다. 그런데도 검은 머리카락은 포기 못 하겠는지 꽤 최근까지 염색을 고집했다. 할머니에게는 검은 머리가 젊음과 동의어였다.
갈수록 모근은 줄고 머리카락은 얇아지니 미용실에서도 염색을 거부했다. 그 후로 몇 번 집에서 혼자 염색약을 바르다가 두피에 벌건 딱지가 눌러앉은 뒤로는 할머니도 염색을 포기했다. 대신 모자를 쓰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답답한 걸 싫어해 챙이 넓지 않은 모자를 선호했는데, 마음에 드는 모자가 없는지 멀쩡한 모자를 사다가 오리고 꿰맸다. 아휴. 내가 나서야겠고만.
화사한 걸 좋아하면서 너무 눈에 튀는 건 싫어하는 모순적인 할머니를 위해 데이지 버킷햇을 만들었다. 갈색 실은 램스울, 흰색과 노란색 실은 집에 남아있던 순면사다. 5호 코바늘로 작업했고 데이지 모티브를 먼저 뜬 후 이어 붙이면서 지름이 결정되는 거라 세밀한 사이즈 조절은 불가했다. 한 번에 잘 맞아서 다행이었다.
질리지 말라고 다른 무늬와 색상으로도 모자를 만들어줬는데 이 데이지 버킷햇을 가장 많이 쓰고 다닌다. 할머니들에게 꽃이란 대체 뭘까. 옷이며 가방이며 꽃 없는 곳이 없다. 꼭 빨갛고 노란 색색들이라 반경 100m 밖에서도 할머니를 찾을 수 있을 법하지만 온 동네 할머니들이 같은 취향을 가진 바람에 화려한 꽃무늬가 평범한 보호색이 되어 버린다. (할머니가 쓰고 있는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할머니에겐 카메라 기피증이 있는 관계로 모자만 찍었다.)
어제도 그제도 할머니를 어르고 달래 과자며 사탕을 뺏었다. 또 ‘나 죽으면 너 후회한다’ 따위의 세미 저주가 뒤따랐지만 이제 그 정도는 가볍게 흘려듣는다. 그리고 할머니. 나는 절대 간식 뺏은 거로 후회 안 해. 이렇게 한 덕분에 하루 더 할머니를 볼 수 있는 걸 테니까. 새벽에 갑자기 혈당 쇼크로 응급실 실려가던 할머니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거든. 그러니 난 앞으로도, 할머니가 이승을 떠날 때까지 기필코 식단 조절하게 만들 거야. 다음 생에는 꼭 부잣집에서 맛있는 거 마음껏 먹을 수 있는 사랑둥이 막내딸로 태어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