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계절 May 09. 2024

푸르시오 절망의 절망편 : 오버핏 레글런 니트

마냥 웃긴 뜨개일지

실 파먹기가 끝나간다. 장을 보지 않고 냉장고에 있는 재료를 소진하는 냉장고 파먹기처럼 새로운 실을 사지 않고 있는 실을 모두 쓰겠다는 다짐을 담아 실 파먹기를 진행했다. 옷이며 소품이며 가리지 않고 뜨다가, 에어울을 마지막으로 파먹으려 했다. 급하게 먹으면 체한다고, 에어울 파먹다 체한 얘기를 하려 한다.      


태초에 중고거래로 업어왔던 에어울 라이트그레이 색상이 있었다. 이 에어울은 여러 옷을 만들었으니 에어울이 곧 창조주……는 아니고 그냥 짐승 용량의 실이었다. 카라 스웨터케이블 조끼를 뜨고도 긴소매 스웨터 하나 정도는 거뜬하게 풀오버 가능할 것만 같은 양이 남았다. 콘사인데다가 우리 집엔 저울도 없어서 정확한 양을 알 수는 없었지만 만으로 3년이 넘은 뜨개 바이브가 있지 않은가. 난 나의 감을 믿고 바늘을 집었다. -그러지 말아야 했다-     


남김없이 몽땅 뜨고 싶었던 만큼 남성 사이즈의 스웨터를 뜨기로 했다. 아빠를 위한 스웨터. 많은 이들에게 선물하는 동안 정작 아빠에게는 한 번도 무언가 만들어준 적이 없었다. 이유는 몇 가지 있었다.     

 

우선 어중간한 실력으로 볼품없는 옷을 선물하기 싫었다. 아무리 간단한 도안과 쉬운 기법이라도 숙련자와 초보자의 완성도는 크게 차이 난다. 아빠에게 줄 건데 대충 만들어 줄 수는 없는 법. 실력을 쌓아 질 좋은 옷을 선물하자, 고 다짐한 게 지금까지 미뤄진 셈이다.      


잔소리도 걱정이었다. 자녀가 큰 마음 먹고 선물했을 때 부모님의 공통 잔소리 삼대장이 있다. 1. 이런 건 얼마나 하냐. 2. 돈 벌어서 이런 데다 쓰냐. 3. 다음부터는 이런 거 안 줘도 된다. 이걸 뜨개에 대입하면 이렇게 된다. 1. 이런 건 실 값이 얼마나 드냐. 2. 돈 벌어서 실만 사냐. 3. 다음부터는 힘들게 뜨지 말고 그냥 사서 줘라.      


저런 소리 듣고도 부처처럼 웃을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발박수를 치겠다. 짝짝짝짝. 아쉽게도 난 성정이 선하지 못해 저런 말을 들으면 부아가 치미는 사람이다. 친구가 말하기를, 나는 객관적 사고를 감정적으로 하는 사람이랬다. 어떤 상황이나 인물을 객관적 시선으로 해석할 수 있지만 그 해석을 감정적으로 대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나듯, 아빠 심은 데 내가 났다. 아니, 아빠는 나보다 더하다. 나보다 훨씬 주관적이고 감정적이라 가끔은 왜 저러나 싶을 때도 많다. 예전에는 이해가 안 가면 부딪치고 싸웠는데 요즘은 포기하고 적당한 무시로 가족의 평화를 도모한다. 불필요한 말은 흘려듣고 괜찮은 말만 골라 들으며 맞장구치는 게 집안 분위기에 훨씬 도움 된다는 걸 알았다.      


마지막으로 아빠에게만 선물하기엔 새엄마가 걸렸다. 아빠와 함께 산 지도 5년이 넘어가는 새엄마에게 전혀 불편한 감정은 없다. 애초에 나는 따로 살기 때문에 자주 마주할 일도 없고, 명절이나 기념일에만 보는 터라 아주 우호적 관계다. 그런데 혹시나 아빠에게만 정성스러운 –무려 손뜨개 스웨터- 선물을 보낸다면 새엄마가 소외감을 느낄까 걱정됐다. 좋은 취지의 선물이 의도와 다르게 해석되는 것만큼은 참을 수 없다.      


이런저런 이유로 미뤄온 아빠의 스웨터. 새엄마는 나중에 다시 챙겨드리기로 하고, 어디 가서 밉보일 만한 실력도 아니겠다, 더는 늦출 수 없다. 아무리 그래도 부모님을 ‘소중한 사람’ 대열에서 뺄 수는 없지.     


50대 중반 남성의 표본 같은 아빠는 무난한 옷을 많이 입는다. 청바지에 면티가 기본 착장인데, 특별한 날에만 정장을 챙겨입는다. 겨울에는 여기에 피부 같은 남색 패딩을 껴입으면 된다. 화려한 패턴을 넣어봤자 좋아하지 않을 테니 나도 가장 무난한 레글런 스웨터를 뜨기로 했다. 배색도 무늬도 없는 기본 스웨터. 호불호 없는 필승 스웨터. (라고 말하지만 그냥 빨리 뜨고 싶었다.)     


나름 서프라이즈 선물이다 보니 대놓고 치수를 측정할 수 없어서 내가 입었을 때 오버핏이면 되겠지, 하는 어림짐작으로 시작했다. 목부터 시작해 탑다운 방식으로 쭉 내려와 소매를 분리하고, 몸통과 양팔 모두 원통으로 쭉 떠주면 된다. 남은 실의 정확한 양을 모르고 시작했으니 이제 예견된 첫 번째 절망을 맞이할 차례다.    



자, 당연하게도 실이 모자랐다. 그것도 아주 조금 모자랐다. 딱 한 뼘 뜰 실이 없었다. 몸통도 아니고 소매 한 뼘이면 20g만 있어도 완성할 수 있을 텐데. 그게 없다. 그럼 새 실을 사야 할까? 아니. 이 실은 100g 단위로 판다. 최소단위를 사도 80g이 남는다. 그럼 원래 취지였던 실 파먹기에 어긋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할까? 어쩌긴 뭘 어째. 풀어야지.      


계획은 이랬다. 조금 많이 넉넉하게 떠놓은 몸통의 품을 조금 줄이고 그 실을 소매에 투자하는 거다. 완벽한 계획이지 않은가. 소매 분리하기 전 단계까지 – 사실상 첫 부분 – 모두 풀어야 한다는 것만 빼면 흠잡을 데 없는 계획이다.      


첫 번째 절망이라고 표현했지만 이 정도는 괜찮았다. 처음부터 제대로 계산하지 않은 내 잘못도 있거니와 파란만장 뜨개 라이프에서 한두 번 일어나는 일이 아니니까. 정말 괜찮았다. 다음 절망을 맛보기 전에는 말이다.     


모두 풀고 새 마음으로 폭을 줄여 몸통을 완성했다. 한쪽 팔도 순조롭게 떴고 마지막 팔을 뜨는데…… 왜 또 한 뼘이 모자랄까. 어째서일까. 대체 왜! 거짓말처럼 전과 같은 지점에서 실이 끝나버렸다. 나 몰래 누군가 실을 잘라먹지 않은 이상 이게 말이 되는 일인가. 몸통 폭은 분명하게 줄어들었고 – 자로 재봤다 - 그만큼의 실이 분명하게 늘어났었는데. 귀신이 곡할 노릇이다.      



여기서 내가 할 수 있는 다음 방안은 무엇인가. 또 죄다 풀어낸 다음 다시 떠야 하는 건가. 아무리 새 실이라도 여러 번 뜨고 풀기를 반복하면 실이 헤지고 만다. 먼지도 많이 날리고 보풀이 일어나고 팔도 아프고…… 그냥 새로 샀다. 고작 100g 주문하자고 배송비까지 낼 순 없다는 자기합리화로 다른 실도 함께 주문하면서 말이다.    


긴 여정 끝에 완성한 옷은 다행히 만족스러웠다. 고무단도 짱짱하니 잘 나왔고 안 그래도 고른 코가 세탁 후에는 더 반듯하게 자리 잡았다. 설레는 마음으로 당장 아빠에게 전화해 약속을 잡았고 들뜬 마음으로 입혀봤는데. 그랬는데. 팔이 짧다. 아니, 아빠 팔이 왜 이렇게 길어.     


넉넉한 품과 어깨라인, 목둘레까지 다 괜찮은데 팔이 짧았다. 양쪽 다 최소 10cm는 더 떠야겠다는 아빠의 수선 요청. 그리고 은근히 들려오는 뒷말. “근데, 이런 색으로 조끼를 뜨면 더 예쁘지 않겠어? 난 조끼가 갖고 싶은데.” 아빠 그게 무슨 말이야. 스웨터 떠왔더니 조끼라니.      


레글런 스웨터는 떠놓은 팔을 푼다고 조끼가 되지 않는다. 어깨 밑 팔뚝까지 한 번에 타고 내려오기 때문에 아예 다 풀고 새로 떠야만 조끼로 만들 수 있다. 와중에 나는 고민했다. 소매를 10cm씩 늘려야 하나, 아니면 아빠가 원하는 대로 조끼로 다시 만들어야 하나. 소매만 늘리자니 이미 세탁까지 마친 실과 새 실을 이어 떠야 하는 게 마음에 들지 않았고 조끼로 만들자니 앞이 깜깜하고 막막했다.      


그래서 그냥 내가 입기로 했다.      



아빠 미안. 나중에 아빠가 원하는 예쁜 오픈 조끼 만들어줄게. 내 성에 안 차는 옷을 아빠에게 줄 수는 없었어. 이건 이제 내 옷이야. 

이전 08화 진짜 내 책이 나왔다. 꿈인가? : 북커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