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오 년 전 겨울, 한파를 뚫고 은행에 강도가 들었다. 창구가 열 개나 되는 아주 큰 은행이었다. 일렬로 늘어선 창구를 지나 왼쪽 끝은 화장실, 오른쪽 끝은 창고였다. 범인은 화장실을 찾는 척 창고에 숨어있다가 고객이 모두 나갔을 시간에 나와 범행을 시작했다. 은행은 영업시간이 끝났다고 해서 번호표를 뽑은 고객을 내쫓지 않았고 그가 창고에서 나왔을 때는 은행원을 제외하고도 열 명의 고객이 대기 중이었다. 난 그 열 명 중 하나였다.
뉴스에서는 서울 한복판에 무장 강도가 나타났다며 요란스럽게 보도했지만, 사실은 사뭇 달랐다. 강도가 가진 건 물때로 얼룩덜룩한 과도였고, 칼날이 무뎌 위협 삼아 자신의 손목을 그어도 상처가 나지 않았다. 심하게 위축된 몸, 명확하게 요구하지 못하는 목소리, 얼굴에 맞지 않아 헐렁한 마스크 틈으로 보이는 입술의 떨림. 그의 진짜 모습이었다.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하나의 쇼를 보는 것처럼 그를 바라보았다. 뒤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수군대며 그를 동정하기도 했다. 아닌 게 아니라 정확하게 오백팔십만원을 요구하는 그의 귀가 너무나 빨갰다. 사람의 신체가 저렇게 빨갛게 변할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알았다. 강도는 은행에 오래전부터 숨어있었으므로 그 빨강은 한파가 아니라 수치와 당황에서 기인한 빨강이었다.
행원들은 잠시 그를 진정시키려고 했다. 말로 타이르기도 하고 우습게도 대출 상품을 설명하기도 했다. 그러면서 직접 대화를 나누는 행원을 제외하고는 볼일을 보러 다시 움직였다. 연극 무대 같았다. 5분 뒤 도착한 경찰이 아니었다면 은행에서 준비한 이벤트라고 오해하기 충분했다.
사이렌 소리가 들리자마자 은행 내부는 소란스러워졌다. 꼭 오늘 통장 정리를 해야 한다며 마지막 번호표를 뽑았던 할머니는 아이고 어째, 하며 방향 없는 탄식을 내뱉었다. 강도는 울 것 같은 눈으로 은행 안을 한 번 훑더니 다시 창고로 들어갔다. 마치 그곳에만 가면 도망칠 방법이 있는 것처럼.
직원 중 한 명이 손수 문을 열어 경찰을 맞이했다. 멋쩍게 웃으면서 인사도 빼놓지 않았다. 칼을 든 강도가 은행에 쳐들어왔다, 고 전달받은 내용과는 전혀 들어맞지 않는 현장 상황에 경찰은 괜히 주위를 둘러보며 은행에 들어왔다.
“다들 괜찮으세요?”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창고를 가리켰다. 밖에서 대기 중이던 기동대가 우르르 몰려와 창고 앞에서 긴장감을 조성했다. 강도가 홀로 칼을 들이밀었을 때보다 훨씬 무거운 공기가 감돌았다. 경찰은 창고문을 두드리며 범인을 불렀다. 나오세요. 나오십쇼. 대답하세요. 몇 번의 부름에도 답이 없자 동그란 손잡이를 쳐부수고 문을 열었다.
사실 손잡이를 부수는 건 보지 못했다. 소리로 짐작했다. 은행 안에 있던 사람들을 인질이라 부르며 창구 앞에 가지런히 모아놓고 경찰들끼리 안쪽으로 들어갔기 때문에 인질들은 창고 앞 상황이 어떤지 볼 수가 없었다. 그저 말소리와 쿵쿵대는 방망이질 소리로 유추했다. 뎅그르르 쇠 손잡이가 바닥에 떨어지며 문이 열렸을 텐데 소란하던 안쪽이 조용해졌다. 삼삼오오 모여 떠들던 인질들도 함께 소리를 죽였다. 내 뒤에 있던 누군가 속삭이듯 기도했다. 그날은 그렇게 시끄러우면서 조용했다.
인턴에게는 세 가지가 없었다. 기대, 안정, 소속. 6개월짜리 근로계약은 1회에 한정해 연장이 가능하지만 최대 11개월 20일을 넘지 못한다. 일한 지 11개월이 되었을 때, 회사는 한 가지 제안했다. 이번 계약이 끝나면 한 달 정도 쉬었다가 다시 같은 조건으로 계약하는 게 어떻겠냐고.
“우리도 새 인턴을 뽑을 수는 있지만, 이왕이면 했던 사람이 계속하는 게 좋잖아요. 어차피 여기 나가면 바로 들어갈 곳 없는 것 같은데.”
팀장의 말 중 틀린 말은 하나도 없었다. 이들은 내가 없어도 금방 새 사람을 구할 수 있을 거고 나는 갈 곳이 정해지지 않았다. 다만 감히 인턴이 팀장에게 첨언하자면, 이 회사에서 인턴이라는 직급은 사무보조 아르바이트의 다른 이름이며 직무와 전혀 관련 없는 심부름이 주요 업무이기에 바보가 아니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었고, 이런 곳에서 더 일해봤자 경력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으므로 차라리 백수가 나을 수 있다. 차마 입 밖으로 꺼내진 못했다. 좁디 좁은 마케팅 업계에서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미운털이 박힐 수는 없었다.
팀장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거절한다고 해서 더 나을 것도 없었으니까. 대학에서 배운 마케팅은 실무와 거리가 멀었고 인턴은 그 먼 실무 중에서도 가장 멀리 있는 잡일을 했다. 복사나 팩스는 눈 감고도 할 수 있었고 파일을 시간 순서나 제목 순서로 정리하는 일도 지겨웠다.
회사는 애매한 역세권 빌라의 두 개의 층을 사무실로 썼다. 굳이 인턴을 뽑지 않아도 되는 회사였지만 여성들에게 조금이라도 더 많은 고용기회를 주자는 게 대표의 신념이라고 했다. 그 신념은 노동자 한 명당 11개월 20일만 유효해 보였다. 여성들의 고용시장을 활성화하겠다는 포부와 압도적으로 남성 비율이 높은 정직원 비율을 보면 항상 속이 답답했다.
회사에 다니며 는 건 눈치와 식사 속도뿐이었다. 어차피 계약기간만 끝나면 그만둘 사람이니 비밀을 털어놓기 편할지도 몰랐다. 지겨워도 종이 만지는 일이 나았다. 사람들에게 끌려가 이야기를 듣노라면 꼭 험담이 정직원의 필수요건처럼 느껴졌으니까. 불편했는데 불편하다고 말하지 않았다. 불편하다고 말하는 순간 불편해할 그들의 얼굴을 볼 자신이 없었다.
집에 재계약 소식을 알리자 곧 정규직이 된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2년을 비정규직으로 일하면 그 다음해에는 정규직으로 올라가. 법이 그래. 너도 알잖아. 이런 법이 있고, 얼마나 좋니?”
비정규직과 정규직은 서로 높고 낮은 직위가 아님에도 아빠는 꼭 정규직으로 올라간다고 말했다. 아빠가 일하던 주민센터에는 때마다 사회복무요원이 배치되곤 했는데, 그때도 비슷하게 표현했다. 작년에 정년퇴직하며 직원들이 챙겨준 맞춤 케이크를 보면서도 정정당당히 시험 보고 사회에 헌신하며 살았기에 이런 호사를 누린다고 했다. 그 맞춤 케이크를 주문한 게 사회복무요원이란 걸 알면서도 답례로 준비한 쿠키는 직원들에게만 돌렸다. 인원을 헷갈려 개수를 적게 준비한 게 아니라 쿠키 포장지에 직원 한 명씩 이름을 쓰며 요원의 몫은 없다는 걸 숨기지 않았다.
아빠는 늘 내가 나랏일을 해야 한다고 했지만 공무원에 학을 뗀 건 모두 아빠 때문이었다. 꼬집어 말할만한 큰 사건이 아니라 명명할 수 없는 작은 기분이 모여 공무에서 날 멀리 떨어트렸다. 또래 지방직 공무원 중에 제대로 법학을 전공한 몇 안 되는 사람이라는 것에 아빠는 자부심을 가졌다.
업무와는 관련 없는 법 공부를 계속했고 주말마다 쌓이지도 않은 법전 먼지를 털어냈다. 30년도 지난 법전에는 지금과는 사뭇 다른 법 조항이 줄지었다. 이상하게도 매년 새롭게 개정된 법을 찾아보면서도 아빠의 법은 항상 구식이었다.
아빠는 법보다 무서운 건 사람뿐이고 무서운 사람들이 모여 만든 게 법이라고 했다. 그래서 법을 배워야 한다고 끊임없이 말했다. 내게 사소한 규칙을 걸어놓은 것도 법을 지키며 살라는 아빠의 큰 뜻이었다.
여자는 머리가 길어야 했고 염색은 사람의 기품을 떨어트리는 행위였다. 나이에 맞으면서도 단정하고 무난한 옷을 입고, 적당한 살집을 유지하되 둔해 보이면 안 됐다. 아빠는 하나가 무너지면 열이 망가지는 거라며 모든 게 지켜지길 바랐다. 모든 걸 지켜줄 여자를 찾아 결혼했고 난 엄마와 똑같이 키워졌다.
거울을 볼 때마다 엄마의 예전 사진이 보였다. 그럴 때마다 소진에게 전화해 사랑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