겁쟁이는 오늘도 (2)

단편소설

by 이계절

서울역행 열차는 오늘도 발 디딜 틈이 없다. 고개만 돌리면 옆 사람의 양치 여부 혹은 점심 메뉴 정도는 추측할 수 있었다. 이 많은 사람들이 전부 서울로 몰리면 다른 지역은 텅텅 빌 수도 있겠다. 미감이 좋지 않아 좌석 위 선반을 없앴다는 기관의 결단에 날마다 속으로 욕했다.


기억하기로는 없애지 말자는 청원이, 아니 없앤 선반을 돌려달라는 청원이었나, 어쨌든 선반을 남겨달라는 온라인 서명운동이 일기도 했다. 가볍게 넘긴 서명 링크가 매일 가방에 짓눌리는 어깨로 돌아올 줄은 몰랐다. 나 하나 서명한다고 이미 결정된 사안이 바뀌진 않겠지만.


앞으로 둘러맨 가방에 팔을 올려 휴대전화를 켰다. 소진에게 오늘의 날씨를 전해주고 저장해둔 보고서를 열었다. 이번 분기 상대 회사의 광고유형을 정리한 보고서다. 어려운 건 아니었지만 처음 맡은 일다운 일이었다. 지난 밤 마지막으로 보고서를 확인하던 날 보고 아빠는 또 홀로 벅차올랐다. 이런 일을 맡기기 시작했다는 건 좋은 징조라면서 틀림없이 해내라고 했다. 틀림없이 해내라는 건 어떻게 해내라는 말일까. 고맙다는 시늉으로 어설프게 웃었고 아빠는 물 한 잔을 마시고는 다시 잠자리로 들어갔다.


아빠의 예감이 정 틀린 건 아니었다. 팀장은 까다롭고 피곤한 성격으로 팀원들의 원성을 많이 받았지만 능력은 출중했다. 매년 꼬박꼬박 올라가는 성과에 비례해 승진도 막힌 적이 없었다. 낙하산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지만 작은 회사에서는 원래 사장이 부르는 게 직급이다.


원래 한 층만 쓰던 사무실을 팀장 덕분에 한 층 더 넓혔다는 걸 들어보면 낙하산은 우스갯소리였다. 업계 동향 보고를 사원이 아닌 인턴에게 맡긴 건 내가 처음이었으니 팀원들 사이에서도 말이 돌았다. 이번 계약기간이 끝나면 정말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 같다고.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역에서 내려 가방을 뒤로 다시 둘러맸다. 승강장과 개찰구를 지나는 길에도 여전히 사람은 많지만 열차 내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소진에게 전화해 주말에 놀러 가자고 말했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은 시험이 끝나기만을 기다리던 옛날이 떠올랐다. 놀러 가자는 말도 오랜만이었다.


“어디 나가기 힘든데 그냥 집에서 만나자. 곧 상담 있어서 오래 통화 못해.”


요즘 예약이 많다더니 아침부터 바쁜 듯했다. 메시지로 전부터 눈여겨 본 식당의 블로그 리뷰를 찾아 남겨두었다. 상담이 끝나면 확인할 거고, 소진은 거절하지 않을 거다.


항상 수다스러웠던 소진의 말수가 줄어든 건 반년 정도 됐다. 삼 년 동안 밝고 화창하던 소진은 연말부터 바빠진 사무소 때문에 늘 피곤해했다. 냉랭하고 힘없는 목소리에 권태기인가 싶으면서도 마주 보면 괜찮다고 웃어주기를 반복했다. 소진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했는데 지난 반년은 도무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전과 다르지 않게 행동하는 것뿐이었다. 간혹 참을 수 없이 불안한 날에는 소진과 갔던 여행을 떠올렸다. 널따란 목장에서 구름 같은 흰 원피스를 입고 달리는 소진의 사진을 보면 절로 웃음이 났다. 목덜미가 시원하게 드러난 단발머리가 작은 키와 잘 어울렸고 목걸이와 귀걸이를 제외하고도 열 개나 되는 장신구가 빛을 받아 화려하게 반짝였다. 내가 가진 것 중 가장 자유로운 건 소진이었다.


엄마는 소진을 나와 가장 친한 친구쯤으로 여겼다. 눈에 띄는 행색에 반기지 않았다가 높은 학점과 졸업과 동시에 법률사무소에 취업했다는 소식을 듣고는 경계를 풀었다. 졸업 후 삼 년 동안 취업 준비만 하던 내게 소진을 본받으라는 말도 했다. 화사하게 입으니 면접에서도 좋은 결과를 받은 거 아니겠냐며 내 옷장을 지적했다. 어디선가 푸른색 옷을 입으면 첫인상이 좋아 보인다는 이야기를 듣고 와서는 짙은 남색 정장을 사오기도 했다. 하필 합격한 면접장에 그 남색 정장을 입은 바람에 엄마는 내 회사 생활에 은근히 간섭했다.


“것 봐라. 내가 시키는 대로 하니까 되잖아.”


엄마는 스물 셋에 아빠와 결혼했다. 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아빠에게 ‘내 계획에는 당신이 필요합니다’라는 말을 듣고 결혼을 받아들였다고 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엄마는 동네 학원 강사로 일하는 것보다 아빠와의 결혼생활이 더 안전하고 즐거울 거라는 직감이 들었다고 했다. 난 그보다 재미없는 프로포즈는 들어본 적이 없고 소진도 동의했다.


사무실 문을 여는데 팀장이 불쑥 튀어나왔다. 성능 좋은 불투명 시트지가 실루엣까지 막아버려 하마터면 팀장과 크게 부딪힐뻔했다. 팀장은 누군가의 손목을 잡아끌며 황급히 계단으로 내려갔다. 손목을 붙잡힌 남자는 내 또래 정도로 보였는데, 어딘가 낯이 익었다. 층계참에 난 창문을 슬쩍 내려다보니 팀장과 남자가 1층 문밖에서 다투고 있었다. 3층과 4층 사이, 더러운 창문으로 둘의 대화가 적나라하게 들렸다.


“이미 재판 다 끝난 걸로 자꾸 왜 찾아오십니까.”

“말 돌리지 마세요.”

“내가 무슨 말을 돌립니까. 내가 안 준다고 했어요? 준다고. 줄 테니까 가세요.”

“지난달에도 준다고 말만 하고 입금이 안 됐는데. 서로 피곤하게 이러지 말고 지금 보내주세요. 아니면 사무실 올라가서 마저 얘기하든지.”

“보세요. 정말 없어서 저번이 마지막 돈이었어요. 이제 없어요. 없다고요!”


팀장은 끝내 언성을 높였다. 처음 보는 모습이었다. 나와 관련 없는 일이지만 뒷내용이 궁금해 멈추지 않고 창문을 기웃대다 남자와 눈이 마주쳤다. 순간 남자의 작은 눈에 꽉 들어찬 눈동자에 내가 비치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한걸음 뒤로 물러나자 그제야 더러워진 블라우스가 눈에 들어왔다. 가슴팍이 온통 검었다. 다급히 손으로 털어봤지만 쉽게 털어지지 않고 오히려 번졌다. 창문틀에서 오랫동안 천천히, 켜켜이, 단단히 쌓인 먼지가 손사래 몇 번에 떨어질 리 만무했다.


“거기서 뭐해요?”


어느새 계단으로 올라오던 팀장이 가슴팍을 쳐대는 날 보고 물었다. 남자는 원하는 걸 받아내 돌아갔을까. 나는 블라우스에 먼지가 묻었는데 잘 지워지지 않는다고 대충 둘러댔다. 거짓말은 아니었다. 몰래 숨어서 둘의 대화를 훔쳐 들었다는 걸 굳이 말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서 들어갑시다.”


앞질러 계단을 오르는 팀장을 뒤따랐다. 자리에 앉아 눈치를 살피니 어제와 다를 게 없는 분위기다. 다른 사람들은 저마다 커피를 타며, 메일을 확인하며, 가벼운 스트레칭을 하며 업무를 시작했다. 아무도 팀장과 남자의 대화를 듣지 못한 건가. 나는 괜히 머리를 한번 매만지고는 화장실로 갔다. 지워지지 않는 가슴팍을 깨끗하게 만들기 위해.


소진이 다니는 법률사무소는 경기도와 서울의 경계에 위치했다. 변두리에 있어야 힘든 사람들이 부담 없이 올 수 있다는 변호사의 이념이 정한 곳이다. 소진은 법원에 서류를 송달하거나 의뢰인들과 일정을 잡고, 변호사가 지시하는 선에서 법적 검토를 도왔다. 전공과 관련한 업무에 야근이나 휴일 근무가 잦아도 소진의 만족도는 높아 보였다.


벽면에 줄 맞춰 가득 찬 책장과 책상 두 개, 손님맞이용 작은 테이블 하나가 들어가면 사무실에 남은 공간은 없었다. 처음 사무실에 갔을 때 소진이 가장 먼저 보여준 건 자신의 자리였다. 작지만 오롯이 소진의 자리라는 게 부러웠다. 월급이나 대우가 어떤지는 묻지 않았다. 잠이 줄어 힘들다면서도 절대 결근을 생각하지 않는 모습과 함께 일하는 변호사에게 존경심이 든다는 말만으로도 알 수 있었다. 소진은 그곳에서 행복했다.


“응, 나 다 왔어. 내려와.”


모처럼 소진의 사무소 앞에 있는 호호 분식에 가기로 했다. 소진이 첫 월급으로 저녁을 샀던 곳이다. 소진이 더 비싸고 맛있는 걸 먹자고 했지만 나는 떡볶이면 충분하다고 소진의 손을 이끌고 갔었다. 한 입 먹고 나서는 맛집을 찾았다며 눈이 동그래졌던 소진과 나. 그 후로 종종 찾았지만 근 일 년 동안은 가지 않았다. 호호 분식에 가려면 반드시 내가 소진의 사무소 앞으로 가야만 했고, 인턴을 시작하며 이곳으로 올 일이 없었다. 올 수 없었냐 하면 그건 아니지만…….


그새 분식집 주요 메뉴들이 500원씩 올랐다. 당면과 치즈 사리를 빼고는 전부 오른 것 같았다. 소진은 항상 앉던 TV 바로 아래에 앉았다. 밥 먹을 때는 상대와 밥에만 집중하는 게 맞다며 어딜 가나 TV 화면이 보이지 않는 자리를 고집했다. 대부분은 바로 아랫자리가 그랬다. 주문한 지 5분이 채 되지 않아 냄비에 떡볶이 재료가 가득 담겨 나왔다.


“맛있겠다. 계란 하나 부쳐올까?”

“아, 오늘 계란이 다 떨어졌어요. 미안해서 어째.”


자리에서 일어나던 내게 주인 아주머니가 말했다. 그러고 보니 택배 상자를 작게 잘라 매직으로 투박하게 ‘셀프’라고 적어놓은 안내판이 없었다. 사장님은 내 앞에 사이다 한 캔을 올려놓으며 점심에 근처 학교 학생들이 우르르 몰려와 인당 세 개씩 부쳐 먹고 갔다고 전했다.


“괜찮아요, 사장님. 잘 마시겠습니다.”


내내 지쳐 보이던 소진이 함박 웃었다. 아주머니는 소진의 둥근 입매를 보고는 맛있게 먹어요, 하고 계산대에 놓은 플라스틱 의자로 돌아갔다. 국물이 점점 진득해지고 당면이 넉넉하게 넣었던 육수를 빨아들여 탱탱해졌다. 불을 줄이고 수저를 들었다.


“오늘 점심은 뭐 먹었어?”

“그냥 김밥. 너는?”

“난 도시락이지. 근처에 김밥집이 있나 보네?”

“내가 전에 말 안 했나? 근처에 변호사님 예전 의뢰인이 김밥집을 하셔서 점심은 거의 고정이야.”

“그랬나. 말했던 것 같기도 하다.”


냄비 바닥에 눌어붙은 당면을 건지고 떡이며 어묵을 모두 먹을 때까지 더는 대화가 없었다. 조용했다. 조금 많이. 소진과 내가 젓가락을 내려놓자 아주머니는 볶음밥을 먹을지 물었다.


“밥 하나만 볶아 주세요.”


아주머니가 주방으로 들어간 걸 확인한 소진이 작게 말했다.


“난 안 먹고 싶은데. 배불러.”

“물어보고 시킬걸 그랬나. 내가 먹을게. 안 먹으면 아쉬울 것 같아.”

“그래 그럼…”


다시 대화가 끊겼다. 주방 안쪽에서 달그락대며 볶음밥 만드는 소리만 들렸다. 소진은 빈 단무지 접시와 떡볶이 양념으로 더러워진 앞접시 위로 눈을 도록도록 굴렸다. 이윽고 고소한 참기름 향을 풍기며 볶음밥이 나왔을 때, 소진은 입을 열었다.


“그만 만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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