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처럼 화장실로 가는 길이었다. 잰걸음으로 좁은 복도를 지나는데 대리가 날 불러세웠다.
“아진 씨, 잠시만. 혹시 어제 일 다 기억나요?”
“네, 대충은……”
“그래요? 그럼 나는 못 들은 걸로 할게요. 그게 서로 마음이 편하겠죠?”
대리는 슬쩍 내 팔뚝을 잡으며 눈을 맞추다 돌아섰다. 분명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눈빛이었는데. 역시 내가 술김에 쓸데없는 말을 한 게 틀림없다.
이제 이후 다가올 상황들은 뻔했다. 어느 영화나 드라마 속 악역들 이름을 대며 불륜 상대의 말로를 떠들거나 한 봉지에 천원이나 할까 싶은 싸구려 사탕을 챙겨주며 더 깊은 이야기를 듣고 싶어 할 거다.
술안주로 제격인 이야기를 들었다며 친구들과 삼삼오오 모여 이러쿵저러쿵 날밤이 새도록 내 귀를 간지럽히겠지. 낙원을 찾아 도망친 건 아니었지만 적어도 지옥을 바란 건 아니었다. 이대로면 이직한 보람이 없었다.
그도 나만큼 힘들까. 궁금했다. 그는 여전히 팀장이었고 가정도 유지했다. 아무 데나 자라난 버섯을 떼어낸 것처럼 나만 똑 떨어져 나왔더니 회사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굴러갔다. 용케 가정에는 걸리지 않은 건지 아니면 아내와 잘 합의한 건지 그의 SNS에도 행복한 일상뿐이었다.
나는 회사를 그만두자마자 온갖 곳에 이력서를 넣어 이곳에 왔다. 면접을 준비하며 바쁘게 살았더니 한동안은 내가 왜 회사를 옮기려고 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았다. 어차피 면접이나 자기소개서에서는 이직하려는 회사만 바라보고 살아온 사람처럼 포장하니까.
그러다 정말 예상하지 못한 순간에, 갑자기, 문득 그가 생각났다. 무언가 오해가 있었던 건 아닌지 한 번은 더 얘기를 해봤어야 하는 게 아닌지 부질없는 고민을 이어갔다. 고민이 오래 이어질수록 내가 참을 수 없이 한심하고 부끄러웠다. 날로 예민해졌다.
오후에는 버틸만했다. 삼삼오오 모여 배달 음식을 골랐고 속이 좋지 않은 대리를 고려해 샌드위치를 시켜 먹었다. 점심 식사 후에는 각자 양치 또는 가글로 입을 개운하게 하고 근처 단골 카페로 갔다. 말수는 줄었지만 평소와 크게 다르진 않았다. 사인용 테이블에 다섯 명이 좁게 둘러앉아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눴다. 전날 본 드라마와 연예인 가십 같은, 별 볼 일 없는 말들뿐이었다.
“아진 씨, 몸 안 좋은 것 같은데 먼저 올라가요.”
테이블 구석을 보며 빨대만 물고 있던 내게 대리가 말했다. 순식간에 조용해진 사람들을 보며 어쩔 수 없이 일어났다. 개중에는 슬쩍 웃는 사람도 있었다. 나는 또 천천히 떨어져 나가고 있었다.
집에 돌아가는 길, 전철 옆자리에서 악취가 났다. 어릴 적 산중 약수터 가는 길에서 맡았던 축사 냄새와 비슷했다. 눈알을 굴리니 주변시에 옆자리 승객이 들어왔다. 남루한 행색의 남자가 고개를 처박고 졸고 있었다. 어쩐 일로 자리가 났다 싶었더니 다들 일부러 비워놓은 게 분명했다.
유독 이 객차에만 사람이 적은 것도 다 냄새나는 남자 때문일 테다. 지친 마음과 몸으로 다시 일어서느냐, 냄새를 꾹 참고 자리를 지키느냐. 고민스러웠다. 일과 내내 고민과 눈치에 파묻혀 있었는데 퇴근길에서까지 고민하고 있자니 옆자리 남자에게 원망이 들었다.
제대로 씻고는 다니는지, 아니 가족이나 제대로 있는 건지. 문득 군대에서 본인 몸을 한 번도 씻어 본 적이 없는 후임을 만나 씻는 법을 가르친 적이 있다던 전 애인의 말이 떠올랐다. 당시에는 웃기려고 과장한 말인 줄 알았는데 그게 영 지어낸 말은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려서부터 배우지 못한 건 커서 익히기 힘들겠지. 옆자리 남자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었다. 그냥 자리를 지키기로 했다. 코는 감각기관 중 가장 예민한 기관이다. 예민한 만큼 빨리 지친다. 금방 둔해질 거고 냄새는 곧 느끼지 못할 것이다.
집 앞 편의점에서 네 캔에 만 이천 원짜리 맥주를 샀다. 몇 년 전에는 만 원이던 게 조금씩 오르더니 만 이천 원이 되었다. 돈을 아끼고 싶지만 도저히 한 캔에 사천오백 원을 주고는 사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항상 네 캔을 만 이천 원 주고 산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안주도 없이 한 캔을 비웠다. 새로운 공법으로 더 깔끔해졌다고 광고하던데, 전과 무엇이 다른지 잘 모르겠다. 그냥 낱개 가격이 이백 원씩 오른 만큼 더 맛있어진 거겠지, 하며 마셨다. 개당 가격이 올랐다고 해도 네 캔에 만 이천 원이라는 건 변함이 없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두 번째 캔을 반 이상 마신 후에야 밥을 챙겼다. 즉석밥 하나를 데워 어제 먹다 남은 치킨을 곁들여 먹었다. 가끔 장은 보지만 음식은 잘 하지 않아 대부분의 재료들은 곰팡이가 나거나 까맣게 썩거나 바짝 말라비틀어지거나 하는 잔혹한 결말을 맺는다. 그래서 집에는 항상 커다란 쓰레기봉투가 필요하다.
쓸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을 골라내지 않고 모두 버리기 좋게, 100리터짜리 봉투에 싸잡아 넣는다. 분리수거도 하지 않는다. 귀찮기도 하지만 나 하나 열심히 나눈다고 세상이 더 아름다워지지 않는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비효율적이고 비생산적인 짓이다.
“언니. 내가 이렇게 버리지 말랬지.”
집안 쓰레기통을 탈탈 털어 봉투에 넣고 있는데 언제 왔는지 동생이 뒤에서 앙칼지게 말했다. 밖에서는 죽이 잘 맞는 자매지만 집에서는 창과 방패가 따로 없다. 나는 괜찮다며 마저 쓰레기를 모으려 했지만 봉투를 빼앗는 동생의 손이 더 빨랐다. 나는 소파에 앉아 동생이 쓰레기봉투를 뒤집어 하나씩 분류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수밖에 없었다. 엄연히 따지자면 동생의 말이 내 말보다 이치에 맞는 말이었으므로 물러섰다. 사서 고생하겠다는데 말릴 것까지야.
찌그러진 맥주캔을 꺼내는 것으로 동생의 분류작업은 끝났다. 나는 수고했다는 빈말과 함께 물을 건넸다. 그러고는 이제야 취기가 오르는지 혼잣말인지 답을 바라는 말인지 모를 말들을 중얼댔다.
“참 세상 사는 게 더럽고 치사하고 힘들다. 너는 아직 학생이라 모르겠지? 이 코딱지만 한 집 월세 내는 것도 너무 많은 걸 참고 살아야 가능한 일이야.”
“언니, 술 끊겠다고 선언한 게 어제 아니었어?”
“좀 마시면 어때. 술이라도 안 마시면 나 답답한 건 어떻게 푸냐.”
“나도 밤 열 시까지 자습하고 온 거야. 나도 힘들다?”
“야야, 아무 생각 없이 공부만 할 때가 제일 좋은 거야. 나가서 돈 벌어봐라. 어디 쉬운 일이 하나라도 있나. 세상 사람들은 다 편견에 가득 차 있고 나는 그 속에서 죽어라 버티는 수밖에 없는 거라고.”
동생은 한숨을 쉬더니 내 등을 탁탁 두드리고는 화장실로 들어갔다. 이내 물소리가 들리는 걸 보니 씻나 보다. 겨우 고등학생이 뭘 알겠는가. 세상살이가 얼마나 각박한지. 내 편이라곤 하나도 없는 곳에서 종일 눈치만 보는 게 얼마나 서러운지. 내일 다시 출근해야 한다. 날 책임질 사람은 나뿐이라는 차갑고 서늘한 사실이 얕은 취기를 모두 날렸다. 발을 바닥에 질질 끌며 침대로 와 누웠다. 슬프지만 자야 했다.
꿈자리가 사나웠다. 마음이 복잡하다는 뜻이다. 오늘은 외근 인원이 많아 사무실이 사뭇 조용한 날이다. 나는 조금 늦게 출근했고 메일함을 확인하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했다. 적당히 오전 시간을 보내면 금세 점심시간이다. 텅 빈 사무실에서 혼자 열심히 일한다고 해도 어차피 사람들은 불륜녀 딱지로만 날 평가한다. 그러니 요령껏 한숨 돌리는 것도 큰 잘못은 아니다.
사무실 앞에 배달 온 아이스 아메리카노와 연어 포케를 들고 자리로 돌아왔다. 참깨소스를 한 바퀴 두르고 젓가락을 막 드는데 전화가 왔다. 대리였다.
“아직 점심 전이죠? 잠시 내려올 수 있어요?”
“아, 지금 막 먹으려던 참이었어요.”
“벌써? 지금 12시 2분인데? 오늘 도시락 싸왔구나.”
점심시간이 오기도 전에 미리 배달 어플로 메뉴를 살피느라 삼십 분을 썼다는 말은 삼켰다.
“그럼 다 먹고 우리 자주 가는 카페로 올래요?”
점심을 방해해서 미안하다면서도 근처 카페에서 보자고 했다. 연어를 쿡쿡 찌르며 알겠다고 답했다. 맛있게 먹으라는 인사를 끝으로 전화가 끊겼다. 양상추 조금과 연어 한 점, 방울토마토 하나를 먹고 나니 식욕이 떨어졌다. 대리가 나만 따로 부르는 이유가 뭘까. 직원들 사이에서 나에 관한 소문이라도 돌고 있는 걸까.
커피를 이미 손에 쥐고도 카페로 오라는 부름에 굳이 알겠다고 답한 내가 한심했다. 거절도 능력이라는데 나는 이렇게도 우유부단하다. 얼마 먹지 못하고 그릇을 덮었다. 머리가 어지러우니 밥이 들어가질 않는다. 하지만 밥을 먹겠다고 해놓고 몇 분 지나지 않아 눈앞에 나타나면 그건 그것대로 이상하다.
어떻게 하면 내가 아무렇지 않게, 단지 부름에 응답해 카페를 찾은 것처럼 보일지 생각하다 이십 분이 흘렀고 이제는 정말 사무실을 나서야 하는 시간이었다.
대리는 카페 가장 안쪽, 구석진 자리에 앉아 있었다. 커피 두 잔을 앞에 두고 휴대전화로 무언가 찾는 듯했다. 내가 말없이 앞자리에 앉자 왔어요? 라며 웃었다. 나는 괜히 머쓱해져 옷깃을 한 번 털며 말했다.
“벌써 날이 많이 덥네요.”
“그러게요.”
“대리님, 커피 마셔도 괜찮으세요?”
“당연히 괜찮죠.”
어디선가 임신 중기를 지나면 커피를 마셔도 된다는 글을 읽은 것 같은데, 아무래도 그게 진짜인가 보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렇구나, 하고 커피를 마셨다. 샷을 한 개만 넣은 연한 아메리카노다.
“아진 씨.”
“네?”
“요즘 회사가 조금 불편하죠.”
“하하…”
“너무 신경 쓰지 마요. 원래 술자리에서 한 실수는 금방 잊혀요.”
잠자코 대리가 하는 말을 들었다.
“아마 저 휴가 끝나고 올 때에는 아진 씨도 다시 잘 섞여 있을 거예요. 내일부터 휴가라 이 말 해주려고 불렀어요.”
알 수가 없었다. 아무 관심 없는 것 같다가도 일부러 날 북돋아 주겠다며 불러낸 것도, 아무에게도 말한 적 없는 내 커피 취향을 알고 주문한 것도. 출산을 위한 휴가라고는 하지만 아무래도 긴 휴가를 맞이하니 인류를 향한 사랑이 샘솟는 걸지도 몰랐다.
곰곰이 되짚었다. 나에게 했던 대리의 말들. 그건 정말 나를 위한 말들 같았다. 내가 필요 이상으로 과민한가 돌아보니 언뜻 몇몇 장면이 눈앞에 스쳤다. 확실하게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지금 손에 들린 숨죽은 포케가 증거일 수 있겠다.
퇴근길에 걷다 말고 섰다. 모두가 대리에게 휴가 잘 다녀오라며 인사하는 동안 나만 조용히 빠져나온 게 마음에 걸렸다. 다른 이들의 시선이 바늘처럼 꽂히는 감각은 어찌 할 수 없었다. 길가에 우뚝 선 채 대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점심에 해주신 말씀 감사해요. 모쪼록 순산하시고 회복 잘하시길 바랄게요.
작은 하트가 두근두근거리는 이모티콘도 덧붙여 보냈다. 오랜만에 다른 사람에게 호의를 가졌다. 금방 답장이 왔다. 쑥스러운 마음이 들어 조금 망설이다 답장을 확인했다. 나는 그대로 얼어붙을 수밖에 없었다.
-지금 나 놀려요? 뭐 하는 거예요? 못 알아들어서 그러는 거면 다시 말해 줄게요. 나는 결혼도 안 했고 임신도 안 했어요. 회식 자리에서 계속 출산일 물어보는 바람에 분위기 다 망쳐놓고는, 아직도 그러고 있어요? 지금도 술 마셨어요? 내가 어디까지 이해해 줘야 해요?
기억났다. 회식하던 날, 소주와 맥주를 번갈아 마시며 취했고, 같은 말을 반복했다. 무턱대고 남 얘기하는 사람들이 제일 싫다고. 혐오스럽다고. 다 죽었으면 좋겠다고. 언사가 격해지는 날 보고 대리는 술잔을 빼앗았고 나는 대리에게 물었다. 출산일이 언제예요? 아들인가요? 요즘은 딸을 더 선호한다는데.
속수무책으로 선명히 떠올랐다. 절절한 사랑이고 뭐고 이전 직장 얘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았고 나는 십 분에 한 번씩 대리에게 같은 말을 했다. 아들인지, 딸인지, 출산일은 언제인지.
아, 나는 대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