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신한 사람을 이렇게 가까이서 본 건 처음이었다. 명치 아래서부터 골반까지 둥그렇게 부푼 배와 습관적으로 배를 쓰다듬는 손에서 안정감이 들었다. 크기를 보아 출산이 멀지 않았을 텐데, 쉬지도 않고 회식을 따라오다니. 기름진 연기가 간헐적으로 시야를 흐렸다. 원형 테이블에 둘러앉은 팀원들이 쉴 새 없이 재잘댔고 나는 별 대꾸 없이 바짝 익힌 돼지 막창을 골라 먹기 바빴다.
“아진 씨, 누가 괴롭히는 사람은 없어요? 있으면 이럴 때 말하는 거예요.”
방금까지 팀장과 휴가 날짜를 조정하던 대리가 대뜸 물었다. 한 손은 콜라를 들었고 한 손은 배 위에서 곡선을 따라 편안하게 놓여있다. 나는 입에 있던 막창을 질겅질겅 씹으면서 말없이 웃었다.
“아직 덜 마셔서 말이 잘 안 나오나? 자자, 받아요.”
“근데 이전 직장에서는 왜 그만둔 거예요? 거기가 여기보다 훨씬 좋은 회산데.”
“그것보다 1년은 채우고 나오지. 한 달만 더 다녔으면 퇴직금도 받았을 텐데. 아깝다.”
말릴 틈도 없이 비워놓은 잔이 가득 찼다. 한 방울만 더 따랐어도 흘러넘쳤을 게 분명하다. 내가 애정과 관심을 받을 만한 신입 사원일 리는 없었고, 저들은 아마 나를 인내심과 정신력 약한 요즘 것들쯤으로 여기는 듯했다. 질문과 술을 쏟아내면서 정작 본인은 콜라를 들고는 무작정 건배를 유도하는 대리에게 당해낼 방도가 없었다. 정신을 차리려고 애를 쓰는 순간은 이미 취한 다음이었다.
메슥거리는 가슴과 머리를 부여잡고 눈을 떴을 때 마주한 천장이 낯설지 않아서, 어쩐 일로 그렇게 술을 많이 마셨냐 묻는 어린 목소리가 친숙해서 다행이었다. 동생 방에서 동생 목소리를 들으며 깼다는 사실에 안도하자마자 시간을 확인했다. 7시 20분. 당장 씻으러 뛰어가야 할 시간이다.
언니 때문에 이불에서 술 냄새 나잖아! 늘 그렇듯 동생이 지르는 고함에는 웃음과 투정이 공존했다. 혐오와 질투, 무시 같은 것들은 담기지 않아서 언성이 높을지언정 기분을 상하게 만드는 일은 없었다.
웃기지 않아요? 지들이 뭐라고.
불현듯 웅얼대는 힘없는 목소리가 스쳤다. 기억에 없는 맥빠진 목소리였다. 머릿속에서 앞뒤 맥락을 찾아보려 애쓰는 동안 몸은 기계적으로 출근을 준비했다. 내가 무슨 얘기를 한 거지? 어디까지 말했지? 사무실 책상에 앉기까지 과정도 누가 오려간 듯 기억이 나지 않는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와 같은 술 냄새를 풍기며 이마를 짚은 팀원들이 회의실에 모여있었다. 홀로 멀쩡한 대리만이 사람들에게 숙취해소제를 나눠주었다. 바로 앞 편의점에서 2개를 사면 1개를 더 주는, 가장 저렴한 상품이었다.
생각보다 회의는 평범하게 진행되었다. 술기운에 힘들어하던 모습들은 어디 가고 막상 업무에 돌입하는 속도가 전구에 불빛이 들어오는 것만큼이나 빨랐다. 안건 몇 개를 요약하며 회의를 마무리하던 팀장은 대리의 휴가 소식을 알렸다. 앞으로 장기간 자리를 비우게 될 대리를 위해 다음 주 회식이 있을 거라는 말도 덧붙였다.
아직 천장에 붙은 공기청정기가 공기 중 알코올을 미처 다 정화하기도 전인데 다음 회식 일정이라니. 이견은 없었고 화기애애한 분위기로 주간회의가 끝났다. 지난 회의와 다른 점은 그들의 ‘화기애애’에 나는 없었다는 사실이다. 아침은 먹었냐, 속은 괜찮냐, 어제 잘 들어갔냐는 흔한 안부 인사를 나누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질문을 받지 못했다. 입을 열지 못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머릿속에서 아까 그 대사가 더 크게 떠돌았다.
의자를 정리하고 불을 끄는 동안 회의실에 남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마지막으로 문에 붙은 푯말을 뒤집어 사용 가능함을 나타내고는 뒤를 돌았다. 복도 끝에서 팀원들이 무어라 숙덕대던 중에 날 보고 화장실로 들어가 버린다. 은근한 따돌림이 불쾌하면서도 익숙하다. 아무래도 나는 지난밤 내게 날아온 화살 같은 질문들을 피하지 못하고 모조리 대답해버린 게 틀림없다. 그렇지 않고서야 작년의 그들과 이렇게 똑같을 수가 있나.
내가 왜 좋냐던 물음에 마냥 착해서, 라고 말하던 사람이 있었다. 사랑하냐는 물음에는 종종 웃음만 지었지만 아래로 내리까는 시선과 옴짝거리는 손가락에서 충분한 대답을 받곤 했다. 다른 사람들을 피해 은근히 교환하는 눈빛과 사내 메신저로 주고받는 둘만의 암호 같은 것들로 유치한 행복을 느꼈다.
이를테면 오늘 구내식당 메뉴를 묻는다면 밖에서 따로 먹자는 의미였고 날씨가 어떻냐는 물음은 퇴근 후 마시는 술 한 잔을 의미했다. 혹시 모를 상황을 대비해 개인 간 대화는 일절 조심하자는 그의 판단으로 우리는 모든 팀원이 공용으로 사용하는 단체 메신저에서만 대화했다.
간혹 다른 사원들이 맥락을 벗어난 말을 지적하노라면 내심 비밀스러운 관계가 들키기를 바라기도 했다. 그에게 스치는 사심 혹은 무시의 손길이 내 눈치를 보기를 원했다. 소망이 망그러진 건 어느 월요일이었다. 나란히 회사 건물로 들어온 그와 나에게 같은 샴푸 냄새가 나던, 행복하고 평범하던 날이었다.
“오늘 너무 춥네요. 다들 주말 잘 보내셨어요?”
“아, 네.”
일렬로 늘어선 사람들이 새빨개진 손을 비비며 엘리베이터만을 기다렸다. 30층짜리 건물에 사람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가늠하지 않고 만든 고작 세 개의 엘리베이터 앞은 놀이기구를 기다리는 줄보다 짧지도 않았다. 줄 끄트머리에 선 팀원을 보고 으레 아침 인사를 건넸는데 평소와 달리 맥 빠진 수긍만 돌아왔다. 법정 근로 시간을 넘겨 수당 없이 야근할 때도 초콜릿 하나만 있으면 웃으며 일하던 사람이 아침 인사에 고작 네, 하고 끝낼 리가 없다.
주말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지 않아도 떠들거나 아니면 적어도 오늘 아침에 어떤 간식거리를 샀는지 자랑해야 하는 사람인데. 어디 아픈 곳이 있냐고 묻자 그녀는 다시 같은 반응을 남기고 엘리베이터를 타버렸다. 경고음은 울리지 않았지만 만원이었다.
나는 찝찝하게 웃으며 먼저 올라가길 권했다. 그녀를 마지막으로 태우고는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고 하자 내 뒤에 있던 그가, 내가 사랑하는 그가 좁은 틈을 비집고 들어갔다. 사람들이 조금씩 뒤로 물러나니 한 사람쯤 들어가는 건 일도 아니었다.
“아진 씨, 이따 봅시다.”
그의 말을 끝으로 문이 닫혔다. 바닥부터 천장까지 대리석으로 시공된 로비가 아까보다 더 추워진 것 같았다. 소매 끝을 꼭 쥐고 자리에 앉자마자 메신저를 열었다. 특별히 이상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찾아본 그의 암호도 없었다. 대신 다른 단체 대화방에서 알림이 끊임없이 울리기 시작했다. 고양이를 키우는 사람들끼리 정보를 공유하고자 만든 친목 대화방이었다.
-그냥 궁금한데 밸러스 게임 한 번 해볼까요?
-재밌겠다 ㅋㅋㅋ
-일은 곧잘 하는데 상사 꾀어내서 몰래 도움받는 사원 VS. 업무 숙지는 느리지만 정직하게 혼자 이겨내는 사원. 둘 중에 누가 나을까요?
-와. 나는 둘 다 싫다. 그래도 굳이 고르자면 후자가 낫지 않나?
-저도 둘 다 별론데…. 굳이 같이 일해야 한다면 저도 정직한 사람 고를래요. 상사한테 업무 넘기면 대가로 뭘 요구받았을지 모르잖아요. 이런 거 저런 거 막 주는 사람이 더 싫을 것 같아요. 히히.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수영 씨 말하는 거 봐. 누가 보면 오해하겠어.
주어는 없고 목적어와 동사만 가득한, 하지만 분명 누군가를 저격하는 말들. 그동안 내가 했던 저격이 사랑을 위했다면 그들은 비난을 위해 저격하는 중임을 숨기지 않았다.
-그럼 하나 더 해볼까요. 회사 직원과 바람난 남자 VS. 유부남한테 접근한 여자. 누가 더 나쁠까요?
그 뒤로 한참이나 잡담용 메신저 방에서는 깔깔대는 각종 웃음 이모지와 무한한 초성의 반복이었다. ㅋ과 ㅎ으로 도배된 메시지를 피해 화장실로 도망쳤다.
유부남이라는 글자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았다. 그럴 리가 없었다. 사내 연애를 숨기는 일이야 공사를 구분하기 위함이었고 그가 혼자 사는 집에 나를 초대하지 않은 건 집이 너무 좁아 오히려 불편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의 모든 행동에는 납득할 만한 이유가 있었다.
변기 뚜껑 위에 앉아 덜덜 떨리는 손으로 그에게 전화했다. 지금 고객이 전화를 받을 수 없어 삐 소리 후 음성메시지로 연결됩니다. 불통이었다. 세 번은 더 안내메시지를 듣고 나서 좁은 화장실 칸이 눈에 들어왔다.
벽에 붙어 있는 작은 라디에이터로는 결코 충분히 따뜻해지지 않는 추운 화장실이다. 일렬로 늘어선 4개의 칸 중 두 번째 칸, 냉기 품은 변기에 앉아 휴대전화를 쥐고 전전긍긍하고 있는 나. 고작 이런 곳에 숨으려고 면접을 보고 야근을 하고 그에게 애틋한 시선을 보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