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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연한 여행자 Oct 19. 2024

06. 인생사 새옹지마

Blessing in disguise

큰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하자 아이 점심식사가 문제였다. 학교 급식이 없던 시절이라 작은아이 어린이집에 사정해서 급한 대로 점심을 해결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눈칫밥을 먹는 건 아닌지 늘 마음이 쓰였다.

할 수만 있다면 친정 근처로 가서 엄마에게 아이 점심을 부탁하고 싶었다. 아무려면 피붙이가 그래도 낫겠지 싶었다.


그 무렵 남편은 안 하던 짓을 하기 시작했다.

갑자기 백화점에 데려가 비싼 옷을 사주는가 하면 가뭄에 콩 나듯 하던 외식도 자주 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물었다.

"당신은 1억이 생기면 뭐 할 거야?"

"뭐 하긴? 당연히 집부터 사야지. 싱겁게 뭘 그런 걸 물어?"

IMF로 인해 집값이 폭락했던 때였다.


그런데 싱거운 농담이 현실이 되었다.

어느 날 남편은 주식으로 돈을 벌었다며 친정 근처에 집을 사자고 했다. 갑자기 치솟은 대출 이자를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급매물을 쏟아내고 있던 때였다. 서울로 출퇴근하려면 한 시간 반이란 시간이 걸렸지만 아이 밥이 더 급했다. 이것저것 따질 것도 없이 급매물로 나온 33평 아파트를 계약했다. 아파트를 계약한 후에도 남편은 가전제품이며 가구를 바꾸라며 다시 몇천만 원을 줬다. 이상하긴 했지만 더 이상 캐묻지 않았다. 묻는다고 말해줄 사람도 아닐뿐더러 알고 싶지도 않았다.



생애 처음으로 내 집 마련을 했지만 웬일인지 기쁘지 않았다.

이사를 앞두고 꾼 꿈도 뒤숭숭하니 찝찝했다.

아이를 낳은 후 나는 가끔씩 예지몽 비슷한 걸 꿨다. 특히 이사를 앞두거나 시험의 합격 여부를 기다리거나 집안에 누가 아플 때는 예사롭지 않은 꿈을 꾸었다.


나중에 사주 공부를 하고 보니 유난히 영감이 발달한 사주가 있긴 했다. 사주를 몰라도 남달리 촉이 좋거나 꿈이 잘 맞는다면 팔자에 귀문살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 귀문살이란 말 그대로 귀신이 드나든다는 뜻으로 대개는 흉살 (凶殺)로 본다. 조후가 깨진 팔자가 귀문살이 중첩되고 흉신(凶神)과 얽히게 되면 우울증에 시달리거나 접신이 되는 경우가 있긴 하다. 하지만 대개의 경우는 남들보다 예민하거나 까탈스러운 정도이니 귀문살이 있다고 뜨악해할 필요는 없다.

게다가 귀문살이 재성(財星)과 얽혀 길신(吉神) 작용을 하면 돈 냄새를 귀신같이 맡거나 투자에 귀재가 되기도 한다.


불행히도 내 예감은 빗나가지 않았다.

이사 온 지 채 몇 달이 되기도 전에 우리 부부는 졸지에 둘 다 백수가 됐다.


#  Blessing in disguise


이사를 오고 몇 달 후  2년 동안 다닌 직장을 그만뒀다.

한 시간 반이 넘는 거리를 매일 아침 저녁으로 오가는 일은 생각보다 훨씬 진을 뺐다. 퇴근길에 졸음운전으로 아찔했던 순간도 여러 번이었다. 게다가 큰 아이가 외할머니 집에 가는 걸 아주 싫어했다. 큰 아이는 원래 눈치가 빠른 데다 신경이 예민했다. 피붙이가 돌봐주면 아이가 안정을 찾을 거라 생각한 건 나의 희망 섞인 착각이었다. 아이는 날이 갈수록 더 까탈스럽고 예민해졌다.


실직자들에게 실업급여를 지급하는 반복적인 일도 나를 점점 지치게 했다. 기계적이고 의미 없는 취업상담은 시간 낭비로 느껴졌고 나중에는 민원인이 사람이 아니라 처리해야 할 일거리로 보이기 시작했다.

그만둘 때가 온 것이다.

처음 출근했을 때 선배 상담원들이 민원인을 대하는 차갑고 기계적 태도에 반감이 들었다.

'조금만 더 친절해도 될 텐데..'

그들은 말했다. 6개월만 지나면 나도 자기들처럼 될 거라고. 그래서 그때 결심했었다. 만약 내가 민원인이 사람이 아니라 일거리로 보이는 날이 오면 이 일을 그만두리라고.


가끔씩 상담 중에 임금체불이나 못 받은 퇴직금에 대해 묻는 민원인이 있었다. 보통은 근로감독과를 안내해 주는 걸로 끝나지만 답답했던 나는 노동법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비록 내 업무는 아니지만 낼름 전화번호만 주고 끝내기가 왠지 그랬다. 궁금하기도 하고 대략이라도 설명해주고 싶은 욕심에 틈틈이 공부를 했다.


그렇게 공부한 얄팍한 지식도 민원인에게 가끔 도움이 됐다.

퇴직금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를 쓰고 2년 넘게 근무하다 해고를 당한 아주머니가 있었다. 자신이 쓴 각서 때문에 퇴직금을 받을 수 없다고 알고 있던 아주머니는 아쉬운 듯 각서를 보여줬다. 노동법상 퇴직금을 받지 않겠다는 각서는 효력이 없다. 결국 아주머니는 나의 몇 마디 조언으로 수백만 원의 퇴직금을 받았다. 연신 고마워하는 아주머니를 보며 내 일처럼 기쁘고 뿌듯했다. 그 후에 노무사 자격증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난 사직서를 냈다.


내가 퇴직한 그날 남편은 새벽 6시가 되어서야 집에 돌아왔다.

나는 한숨도 못 자고 아파트 앞을 서성 거렸다. 그날 아침 느닷없이 금감원 조사를 받을 거라고 했다. 외환 딜러였던 남편이 금감원에서 무슨 조사를 받을까 싶었지만 남편의 긴장이 느껴졌다. 간단할 거라던 조사가 밤새 이루어졌고 나도 왠지 느낌이 싸했다. 사건은 검찰로 넘어갔다.


그 후 외환딜러 팀원 전체가 대기 발령을 받았다.

남편이 다니던 은행뿐만 아니라 다른 은행 외환딜러들도 관행적으로 차명 거래를 했다. 비록 합법은 아니어도 은행에서도 따로 성과급이 없던 터라 알면서도 눈감아주던 관행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금감원에서 대대적으로 단속을 했고 이 사건은 나중에 뉴스와 신문에도 대문짝만 하게 나왔다.


집을 사라고 주었던 돈은 주식 투자로 번 돈이 아니라 선물 거래로 번 돈이었다. 외환딜러는 팀으로 돌아간다. 높은 성과로 팀장의 전폭적인 지지를 받고 있던 남편은 팀장과 더불어 선물 거래를 도맡아 했다. 나머지 팀원들은 돈만 투자하고 직접 거래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대기 발령으로 끝났지만 팀장과 남편은 금감원 조사를 받게 된 것이다.


그제야 이사를 오기 전에 꾼 꿈이 왜 그리 뒤숭숭했는지 알 것 같았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나의 명리 선생님은 팔자를 설명하는데 이만한 명언이 없다고 늘 말씀하셨다. 인간사(人間事)는 길(吉)과 흉(凶)이 새끼줄처럼 꼬여 있으니 일희일비 하지 말라고도 하셨다.

영어에도 blessing in disguise라는 말이 있는 걸 보면 이 명언은 동서양을 구분하지 않는 모양이다.


변호사는 최악의 경우라도 벌금형으로 끝날 거라고 호언장담했다.

어처구니없게도 우린 그 말을 그대로 믿었다. 워낙 실적이 좋았으니 어쩌면 복직도 가능할 거라는 순진하기 짝이 없는 희망도 가졌다.

몇 달 후면 삶을 휩쓸고 갈 쓰나미가 기다리고 있는 줄도 모르고  자격증 준비에 열을 올렸다.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있는 게 더 괴로웠으니 나에겐 썩 괜찮은 피난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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