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실격 - 다자이 오사무
올해로 중학교 1학년이 된 딸아이가 있다. 사춘기 본능이 태동하는 6학년의 시간이 지나고 이제 본격적인 폭발이 일어나는 사춘기가 시작된 아이라서 급격하게 대화가 줄어들고 뭔가 얘기에 대해서 동의하지 않는 수가 많아지고 자기 방에 들어가서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아이가 새롭게 태어났다. 내 아이가 사춘기에 들어서는 걸 보고 있자니 뭔가 답답하기도 하고 어떤 면에서는 신기하기도 한 이 사안에 대해서 아내와 많은 얘기를 해야 하는 그런 시간이 이제 시작된 모양이다.
자기 방 안으로 바로 직행하여 자기만의 세상으로 들어가는 딸을 보고 있자니 나의 과거 사춘기에 대해서도 어렴풋이 기억이 났다. 사내아이라서 더 말이 없었고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혼자 음악 듣는 거 좋아하고 엄마랑 싸우고 그랬던 시기.. 그걸 보니 아이 셋을 그렇게 남편도 없이 키웠던 엄마는 얼마나 더 새로 태어난 골칫거리들로 힘들어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이렇게 형체 없는 사춘기와 온 가족이 씨름을 하고 있는 와중에 어느 날 딸아이가 불쑥 물어본다.
"아빠, 인간실격 읽어봤어?"
"인간실격? 어... 제목만 들어 본 것 같은데..."
"한번 읽어봐~. 아빠가 데미안과 1984를 읽어봤다면 그것보다 더 우울해서 흥미로운 소설이야..."
요즘 오랜만에 고전 소설을 다시 읽고 있는데 그 다시 읽는 재미를 딸과 얘기한 기억이 났고 딸도 책 읽는 것을 좋아하는 아이라 학교 도서부 서클에서 활동하고 있어서 이 책을 우연찮게 접한 모양이다.
"더 우울해서 흥미로운 소설"
딸이 내게 말한 이 소설에 대한 느낀 점이 우선 와닿는다. 우울해서 흥미로운 소설이라니.. 나는 이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어떻게 우울한지는 읽어봐야 알겠지만 딸이 이 소설이 우울하다는 느낌을 피력한 것을 보니 그 우울함을 진실로 느낀 것이 아니라 딸의 입장에서는 인간으로서 이렇게 우울한 인생이 있을 수도 있구나 하는 느낌을 얘기한 듯하다.
이런 딸의 반응이 왜 나오는지에 대한 궁금으로 책을 읽어봤다. 장편이라기보다는 중편에 속하는 이 소설은 작가가 소설의 주인공을 바라보는 시점에서 그리고 주인공 시점을 오가면서 전개가 되었고 딸에게 작가에 대한 동일한 우울한 인생 스토리를 들은 바 그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거 작가 이야기네?
일본 패망 직후의 젊은 세대들에게 있었을 절망과 우울함 그리고 인간 자체에 대한 비인격적인 인생살이를 그 당시의 시대상을 배제한 채 주인공의 외면과 내면에 그린 우울하고 굴곡진 인생을 덤덤하게 표현하는 것으로 작가 자신의 이야기를 빗대어 얘기하고 또 인간이 어떻게 밑바닥에서 살아남지 않으려고 애쓰며 살아갈 수(?) 있는가의 의지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실격(失格)이라는 것은 자격이나 격식을 없애거나 잃어버리는 것이다. 이 소설에서는 인간에 대한 격식을 잃어버리는 것이 아닌듯하다. 주인공은 스스로 느끼는 인생에 대해서 인간으로서의 살아감을 스스로 없애는 작업을 진행한다. 어렸을 때의 나쁜 생각, 자살 시도, 약물 중독 등 주변 환경에 따라서 희생된 부분이라기보다는 주체적으로 인간에 대한 자격을 없애는 생각과 행동을 통해서 어떻게 보면 인간 자체에 대한 실격보다는 오히려 인간 존재에 대한 연민을 이야기하는 것 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최근에 읽은 데미안이나 1984등에서도 같은 맥락을 읽을 수 있었고 과거 치열했던 전쟁 후의 어떠한 희망도 떠오르게 할 수 없는 시대의 우울함이 반영된 내용을 이 소설에서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었다. 아울러 딸이 얘기한 "더 우울해서 흥미로운 소설"에 대한 딸의 느낌도 어렴풋이 동감할 수 있었다. 아직은 경험하지 못한 어른이라는 존재가 겪고 느꼈을 인간 생활의 우울함이 우울함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정의 새로운 감정을 발견한 느낌으로 다가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다. 딸은 아마도 소설을 통해서 우울한 인생이라는 흥미로움이 있구나 하는 느낌을 가졌었으리라 추측해 본다.
부디 그러한 우울한 인생도 있고 우울보다는 평범하지만 그 속에 행복도 있는 삶이 더 많다는 것을 천천히 알아갔으면 한다.
그리고 사춘기의 폭풍의 눈처럼 고요함 속에서 이런 책 한 권으로 이야기를 나누게 해 줘서 고맙다. 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