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동장, 실외, 오후
운동장을 바라보며 민준, 현철, 영수가 나란히 벤치에 앉아있다.
현철: 어떠냐? 다들 모교에 오신 소감이?
영수: 운동장만 그대로네. 교실이랑 복도는 많이 바뀐 거 같고.
민준: 난 인정할 수 없다. 이름이 바뀐 거부터 별로야. 내가 알던 그 학교가 아니야.
현철: 그치만 세상 모든 게 다 변하지 않냐? 에브리씽 체인지즈.
영수: 민준이 말대로 학교 이름 바뀐 건 좀 그래.
민준: 거 봐.
현철: 이 사람들이 명칭에나 집착하고, 15년 만에 모교에 모인 삼총사라는 감동적인 테마를 파괴하고 있군. 이렇게 감정이 메말랐으니 다들 솔로가 된 거지.
민준: 너 기어이 도장 찍은 거야?
영수: 무슨 이야기야, 지금?
현철: 세상 모든 게 다 변한다는 걸 나 스스로 입증한 셈이네. 혜정이가 원하는 대로 해줬어. 그게 비록 한때였지만, 그 사람을 좋아했던 나의 마지막 예의야. 잘 가세요, 나랑 사느라 고생했어요. 그게 어른스러운 이별 아니겠냐?
민준: 아, 이 자식이 멋진 척을 한다. 안 어울려. 좀 잘 해보지.
영수: 아이고. 돌싱이 두 명이라니.
현철: 왜 니들이 심란해하냐? 난 괜찮은데.
영수: 하긴 결혼해서 좋은 건 등에 파스 붙일 때 밖에 없긴 하다.
현철: 그건 좀 오버다. 필수가 아니라 선택이다, 진부해도 이 말이 맞아.
민준: 아, 뭐래니? 얘들. 이러면 내 계산이랑 완전 틀어지는데.
현철: 넌 또 뭔데?
민준이 머리를 긁적이더니 ‘에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봉투 두 개를 꺼낸다.
민준: 결혼이란 무엇인가 물어보려 왔더니 이혼을 말하고 있네, 이 사람들이.
영수: 뭐야? 청첩장이야?
현철: 오! 드디어!
현철이 봉투를 빼앗듯이 가져와 얼른 청첩장을 확인한다. 현철이 씩 웃는다.
영수도 민준에게서 청첩장을 받는다.
영수: 축하한다. 진짜.
민준: 고마워.
현철: 아, 근데 나는 좀 곤란한데.
민준: 아무래도 평일이라 좀 그렇지?
현철: 아니 그건 더 좋은데… 주리도 같은 과 후밴데 축의금을 어디로 내야하나?
민준: 야, 이게 어디서 웃기고 있어 진짜?
영수: 보라 후배야?
현철: 빙고! 이 김민준님은 우리 사범대의 자랑이시며 진정한 카사노바시란다.
민준: 야, 죽을래?
민준이 현철에게 헤드락을 건다. 영수가 말린다. 티격태격 세 사람.
운동장엔 세 명의 고등학생이 캐치볼을 하고 있다. 멀리서 보이는 학교의 전경.
현철: (V.O) 지난 번 결혼식에 보라도 거기서 결혼했거든. 거기서 만난 거야!
민준: (V.O) 그 입 다물지 못할까?
영수: (V.O) 전여친 결혼식에서 애인을 만나? 이거 진짜 카사노바네.
민준: (V.O) 야, 너까지 이러기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