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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May 25. 2024

결혼식의 멤버 (4)

 04. Woman in Red


 12. 건물 뒤편, 실외, 낮


영수(남, 30대)가 캐주얼 차림으로 재떨이용 쓰레기통 옆에 혼자 쪼그려 앉아있다.

자세히 보면 영수는 담배가 아닌 막대사탕을 물고 있다.

자막 “멤버3. 영수

잠시 뒤, 영수가 민준에게 다가온다.


민준:

사내자식이 막대 사탕은 또 뭐냐? (담배를 꺼낸다)


영수:

(정면을 바라본 채) 담배 좀 끊어보려고.

몸이 예전 같지가 않아.


민준:

(담배맛 떨어져서 담배를 집어놓고)

하긴 우리가 예전같진 않지. 그동안 잘 지냈냐?


영수:

그냥 그렇지 뭐. 근데 몇 명 안 온 거 같더라?.


민준:

다들 사는 게 바쁘니 그렇지 뭐.


영수:

진규형은?


민준:

현철이 말로는 학원이 요즘 시험기간이라 바쁘대.

그 동네가 입시 경쟁으로 유명하잖냐.


영수: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옛날에 사고 친 거 막아준 게 누군데.


민준:

그러게. 암튼 현철이 편으로 축의금은 보내셨대.

경사는 못 가도 나중에 애사는 빠지자 말자고

일장연설을 하셨댄다.


영수:

그 형은 말 참 이상하게 해.


민준:

그 형 특기가 그거니까. 괜히 사고 쳤겠냐?


영수:

(그제야 민준을 바라보며) 까놓고 말해서

우리가 친구 아버지 장례식에 가서

진짜로 슬퍼한 적이 몇 번이나 되냐?

남의 불행이나 확인하고는 그래 나는 아니구나,

다행이다 하는 주제에.


민준:

야, 그건 말이 좀 그렇다.


영수:

좋은 일 있으면 찾아가서 박수 쳐주고

같이 기뻐하는 게  진짜 친구고 선배지.

뭐 그렇게 일이 중요하다고 경사니 애사니

핑계나 대고. 살아있을 때 잘 해야지,

죽어서 질질 짜봤자 다 소용없어.


민준:

야, 역시 우리 박사님 명쾌하시네.


영수:

석사야. 박사 논문 아직 통과 안 됐어.


민준이 피식 웃는다. 둘 사이에 잠시 침묵.

이때 현철이 급히 다가온다.


현철:

야, 야, 야! 대박, 대박!


민준:

뭔데?


현철:

연예인 떴어. 연예인!


민준:

(눈이 번쩍) 오, 누구?


현철:

무슨 주말 예능 프로에 나오는 앤데,

얼굴도 예쁜데 몸매가 아주 그냥, (사이) 끝내줍니다.

와, 연예인은 진짜 뭐가 달라도 다르네!

근데 그 이름이 뭐더라? 키 큰 여잔데…


민준:

혹시 드라마에도 나오고 눈도 좀 크고,

레전드 빨간 원피스?


현철:

맞아! 맞아! (신나서) 신부 친구란다!

만세다, 만세! (춤추듯 몸을 흔든다)


민준:

그래, 이래서 영수 말대로 경사는 꼭 와야 된다니까!


영수:

하여간 누가 수컷 아니랄까봐, 밝히기는.


순간 화면이 3분할. 민준, 현철, 영수의 얼굴.

넥타이를 매만지는 민준, 춤추는 현철,

막대 사탕을 입에 문 영수의 못마땅한 얼굴.

프리즈 프레임.


민준:

(N) 우리 세 사람은 같은 중·고등학교 동창이다.

나와 현철은 대학까지 같아서 둘 다 사범대를 갔고,

현철은 학교 선생님이 되었다.

하지만 나는 교생실습 후 내 적성이 가르치는 일이 절대 아니란 걸

깨닫고 평범한 직장인이 되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영수는 우리 셋 중에서, 아니 전교생을 통틀어

공부를 제일 잘 해서 서울에서 가장 잘 나가는 대학교에 들어갔다.

지금도 녀석은 학교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러니까 우리는 중학교 때부터 같은 반이었고 친구였다.


세 사람의 얼굴 위로 타이틀이 뜬다.

타이틀 “결혼식의 멤버”



13. 화장실, 실내, 낮


축가 공연을 하는지 노래 소리가 흘러나오는 가운데,

화장실 소변기 앞에서 나란히 각자 볼일을 보는 세 사람.

민준, 현철, 영수 순이다.


현철:

근데 우리 부조 합쳐서 같이 할 거냐?

따로 신랑 주는 게 낫겠지?


영수:

어? 아까 맡긴 건?


현철:

일단 물어보고 내려고.


민준:

근데 넌 국어 선생이 무식하게 부조가 뭐냐?

축의금이지. 상갓집도 아닌데.


현철:

어? 그런가? 내가 그렇지 뭐.

(사이) 어떡해? 합쳐, 말아?


민준:

너 알아서 해.


세 사람이 손을 씻으려 줄을 선다.

맨 앞에 민준, 영수, 현철 순서다.

민준이 손을 씻기 시작한다.


영수:

(말할까 말까 망설이다가) 근데, 무식은

민준이 니가 무식이거든.

국어사전 뒤져봐. 부조는 둘 다 쓰는 거야.

뭘 알려면 제대로 알던가.


민준:

(빈정이 상해서 손 씻다 말고) 하여간

아는 척하는 거 하나는 진짜 알아줘야 돼.

여기서 사전을 왜 따져? 상식을 따져야지.

이래서 먹물은 현실을 몰라요.

그렇게 꼭 사람을 가리켜야 속이 풀리냐?


영수:

가르쳐야. 가르켜가 아니고. 가르쳐.


민준:

(속이 부글부글) 알겠습니다, 박사님.

(신경질적으로 물비누를 팍 누른다)


현철:

그럼 민준이랑 나는 봉투 합친다.

(지갑에서 3만원을 꺼내 봉투에 넣는다)


민준:

(거울로 현철의 행동을 보고는)

야, 너는 또 3만원이 뭐냐?


현철:

나 결혼할 때 3만원 했길래.


민준:

(손 씻기를 마친다) 그럼 뭐 이해는 간다.

하여간 저 신랑 놈이 문제네. 속도위반에 짠돌이에.


영수:

(손을 씻기 시작하려다가) 야, 니들 그러는 거 아니다.


민준:

뭘 또?


영수:

(손을 씻으며) 결혼식 끝나고 누가 얼마 냈는지 확인하고

그러는 거 사람이 할 일이 아니야.

그거 친구 이마에 넌 3만 원짜리, 넌 5만원, 10만 원짜리

이렇게 딱지 붙이는 거라고.

사람을 무슨 한우마냥 A+, A++,

그렇게 등급 매기는 거라고 그게.

(일부러 민준 쪽으로 손의 물기를 턴다)


민준:

(영수의 말에 잔뜩 열 받은 얼굴이다)



14. 예식장 앞, 실내, 낮


예식장으로 걸어가는 세 사람. 앞서가는 영수에게 민준이 들으라는 듯이 말한다.


민준:

역시 박사님은 수준 높으시네. 아, 석사님이시지?

그래 석사님은 부조를 얼마나 하셨을라나?

돈 대신 우정의 편지라도 써서 봉투에 담으셨나?

옷은 또 오늘따라 왜 양복도 아니고 캐주얼이실까?

자유로운 영혼은 뭐가 좀 다른가봐.


영수:

(걸음을 멈추고) 아, 이래서 노답인 애들은 뭔 말을 해줘도

알아듣질 못한다니까. 너는 내 말 귓등으로 듣지?

세상 정해진 대로 안 사는 인간들 보면

아주 아니꼽다 이거지?


민준:

(비꼰다) 아, 그렇게 잘 나셔서

이혼을 하시고 결혼식에 오셔?


민준의 커진 목소리에 놀라 주위 사람들이

세 사람 쪽을 쳐다본다.

순간 침묵이 흐른다. 민준과 영수가 서로를 노려본다.

둘 사이에 현철이 끼어든다.


현철: 오늘 좋은 날인데, 진짜 왜 이러냐?


민준과 영수는 당장이라도 싸울 기세다.

현철이 험악한 분위기에 난처한 얼굴이다가

돌연 봉투에서 3만원을 꺼내서 지갑에 도로 집어넣는다.

민준과 영수가 갑작스런 현철의 행동에 의아해한다.


현철:

야야야, 니들 화 풀어.

(지갑에서 5만원 한 장을 꺼내 봉투에 넣으면서)

물가 상승률 고려해서 이 정도 넣으면 됐지? 오케이?

야, 오늘 동창 결혼식이다, 싸우는 날이 아니고.


영수와 민준의 분위기가 수그러든다. 하지만 서로 외면한다.

현철이 민망해서 주위를 살피다가 갑자기 놀란 얼굴이 된다.


현철:

(작은 목소리지만 흥분해서) 야, 떴다!

세 시 방향, 빨간 원피스!


민준과 영수의 시선이 현철이 말한 방향으로 향한다.

세 사람이 바라보는 여자의 동선을 따라

움직이는 세 남자의 시선.

군무처럼 제대로 합이 잘 맞는다.


현철: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는다) 오우야…


넋이 나간 채로 한 곳을 바라보는 세 남자의 얼굴.



(5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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