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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동물원킨트 May 25. 2024

결혼식의 멤버 (3)

03. 정보화 사회의 호구


9. 몽타주, 실내/실외, 오전


  (1) 현철의 빌라 계단, 실내, 오전

  정장차림을 한 현철이 계단을 내려가며 누군가와 통화중이다.

  자막 “두 시간 전”


현철:

학원이 안 쉬어도 그렇지,

적어도 형은 이 결혼식에는 꼭 오셔야죠.

아니 뭐 형 요즘 바쁘신 건 알겠는데…

(사이) 네, 그럼 얼마 대신 내면 되요?

형, 근데 지난번에도 이러시고 저한테 입금 안 하셨는데.

그럼 제가 계좌 찍어서 보낼 테니까,

합쳐서 20만원 보내주세요.

이번에도 꿀꺽하시면 저 앞으로 형님 얼굴 안 봅니다.


 전화를 끊더니 현철이 찌푸린 얼굴로

꾹꾹 계좌번호를 전송한다.



  (2) 거리, 실외, 오전 

 현철이 건물을 빠져나와 터덜터덜 거리를 걸어간다.


현철:

(혼잣말) 하여간 이 형은 꼭 결혼식 아침마다 이런다니까.

사람이 안 변해, 진짜.

떼어먹은 술값에 축의금만 합쳐도

내가 이런 날 지하철 대신 차를 끌고 갔을 건데.

뭐하는 짓이냐 진짜.


  딩동. 스마트 폰 알림. 현철이 스마트 폰을 확인한다.

  ‘입금 99,500원’ 찍혀있다.


현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아, 이 형 또 이런다.

이체 수수료는 왜 빼고 보내는 거야?

아예 지난번은 입 닦으시겠다?

아, 하여간 지 맘대로야. 에휴.

이렇게 살지는 말아야지, 진짜.

… 참 좋아하는 선배였는데. 어쩌다 이렇게 됐냐.

(폰을 바지 주머니에 집어넣고 너털너털 걸어간다)


  현철의 애처로운 뒷모습. 걸음을 멈춘다.


현철:

(N) 호구로 산다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해 내 손해를 따지지 않는 것,

그게 내가 진심으로 사람을 대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다만, 왜 나만 그래야해?

이 물음이 계속 쌓이면 결국 진심도 무너져 내린다.



10. 지하철, 실내, 오전


지하철이 한강을 지나간다.

따스한 햇살 아래 졸고 있는 현철의 고개가 뒤로 젖혀질 듯 말듯하다.

결국 고개가 뒤로 확 젖혀지면서 현철이 잠에서 깬다.

현철이 민망한 얼굴로 주위를 살펴보는데 사람들은 죄다 스마트 폰을 보는 중이다.

트위터, 인스타그램, 페이스북, 메신저, 게임, 동영상 등등 스마트 폰을 보는 다양한 모습.

모두들 핸드폰에 빠져있다.

현철이 살짝 입을 벌리곤 현실을 깨닫는다.


현철:

(N) 아. 4차 산업 정보화 사회로군.


현철도 자신의 핸드폰을 꺼내려는데

바지 주머니 깊숙이 있어서 꺼내지질 않는다.

체념한 얼굴로 현철은 맞은편을 멍하니 바라본다.

맞은편에는 젊은 두 남녀가 폰을 쳐다보며

메신저를 하며 웃는다.

 

열차가 정차하자 안경 쓴 남자가 들어오고

두 남녀가 손을 들어 그를 맞이하고 셋이 나란히 앉는다.

안경남도 자리에 앉자마자 스마트 폰을 꺼내든다.

씁쓸한 표정으로 맞은편을 바라보는 현철.


현철:

(N) 이젠 만남도 우정도 죄다 디지털 시대.

현실에서 만나서도 폰을 꺼내보는 사람들.

저 사람들은 실제로 지금 누구랑 이어져있는 걸까?


메신저 자판 위에서 맞은편 세 사람의

손가락이 쉴 새 없이 움직인다.

여자가 메신저를 확인하더니 미간을 찌푸린다.

여자가 갑자기 핸드폰을 내려놓고

갑자기 손을 들어 움직인다.


역동적인 여자의 하얀 손.

여자가 수화로 의사전달을 한다.

옆에 남자들도 수화로 대화를 시작한다.


이 상황에 조금 당황하는 표정의 현철.

안경남이 수화를 하다말고 메신저에 뭔가를 입력한다.

두 남녀가 메신저를 확인하고는 웃는다.

현철도 그들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다.


현철:

(N) 난 매번 틀리는구나. 내가 그렇지 뭐.

이어져있네, 저 사람들. 나쁘지 않네, 스마트 폰도.


순간 현철의 폰에 진동이 울리고,

현철이 가까스로 폰을 꺼내 메시지를 확인한다.

입금 100,500원” 현철이 피식 웃는다.



 11. 결혼식장 로비, 실내, 낮


현철과 민준이 승강기를 기다리고 있다. 막히는지 좀처럼 내려오질 않는다.


현철:

근데 영수는 왜 안 오냐?

우리가 그래도 명문 고등학교 삼총사인데.


민준:

뭔 달타냥 같은 소릴 하고 있냐? 문학 선생 아니랄까봐.

(안주머니에서 봉투 꺼내며) 영수 데려 올 테니까,

일단 봉투만 먼저 내줘. (출입구로 걸어간다)


현철:

야, 영수가 어딨는데?


민준:

(돌아보며) 그 골초가 갈 데가 뻔하지 않냐?



(4편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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