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정 연휴를 맞아 엄마께서 일본에 오고 싶어 하셨다. 일본에 온 지 9개월이 됐을 때였다. 부모님께서 패키지여행으로 해외여행을 몇 번 다녀온 적은 있으셨지만 엄마 혼자 해외로 오는 비행기를 타는 것은 처음이셨다. 그래서 입국신고서를 작성하는 게 걱정이었다. 엄마의 입국신고서 작성을 위해 작성법을 A4용지에 상세히 써서 우체국 특급등기로 보냈다.
엄마께서 도착하시는 날 간사이공항으로 마중을 갔다. 엄마께서 과연 입국심사대를 잘 빠져나오실지 긴장하며 기다렸는데, 비행기 도착 후 한참 지나서야 문이 열리고 나오셨다. 내가 보내준 입국신고서 작성 방법으로 연습하고 온 데다가 비행기 옆 좌석의 할아버지께서 쓰는 걸 도와주셨다고 한다.
무사히 도착한 엄마와 4박 5일간 간사이 여행을 했다. 엄마의 어린아이 같은 모습을 보았다. 그리고 내가 엄마의 음식 취향 등 엄마에 대해 많이 모르고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또 우리 엄마는 산악회에서 백두대간을 완주하실 정도로 산을 좋아하셔서 산에서는 날아다니시지만, 평지에서는 무릎이 아파 오래 걷기 힘들어하신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일본은 양력설을 쇠기 때문에 연휴 동안 문 닫은 가게들이 많았다. 엄마는 “니 얼굴 보러 온 거다.”라고 하셨지만, 엄마를 더 좋은 가게에 많이 데려가지 못해서, 안내를 잘 못한 것 같아서 죄송했다. 그리고 엄마께서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하셔도 알아서 센스 있게 선물도 챙겨드렸어야 했는데, 그런 센스 있는 딸이 되지 못해서 죄송했다.
엄마와 여행 일정을 마치고 셰어하우스 친구들을 엄마께 소개해 드리고 같이 저녁을 먹기 위해 셰어하우스로 갔다. 가기 전 코리아타운에 잠깐 들러 한국식 떡국용 떡과 김을 사서 갔다. 엄마의 떡국을 친구들에게 끓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셰어하우스에 도착하니 친구들이 이미 일본식 떡국인 오조니(お雑煮)를 먹고 있었다. 엄마께서는 주방에서 떡국을 끓이셨는데, 아무래도 엄마 입장에서는 재료가 부실했다. 떡국 끓이실 때 항상 내게 마트에서 파는 떡은 사지 말라고 하시며 방앗간에서 만든 떡을 사용하시지만, 여긴 일본이기에 어쩔 수 없이 코리아타운의 마트에서 산 떡국을 사용해야 했다. 그리고 육수도 마트에서 사 온 멸치로만 내야 했고, 간장도 일본간장을 써야 했다.
그래도 엄마께서는 뚝딱뚝딱 몇 분 만에 모두가 먹을 양의 떡국을 만들어 내셨다. 비록 고명도 노른자와 흰자를 분류한 계란과 김뿐이었지만 친구들이 고명이 예쁘다고 좋아했다. 정말 엄마 손맛이라는 게 있는 건지 부실한 재료와 일본간장으로 만든 떡국임에도, 신기하게도 ‘엄마 맛’이 났다. 친구들이 엄마와 내게도 오조니를 떠주었다. 오조니와 떡국을 각자 한 그릇씩 떠서 모두가 두 그릇을 먹었다.
엄마께서 일본에 오면서 김치와 고추부각을 싸 오셔서 셰어하우스 친구들과 나눠 먹었다. 그런데 엄마께서 한국으로 가신 후 셰어하우스 파티에서 종종 만나는 미호상이 엄마께서 주신 ‘고추로 만든 그 반찬’이 대체 뭐냐고 맛있다며 레시피를 알려달라고 했다.
미호상은 한국 음식이 좋아서 한국 여행을 자주 다니는 사람이었다. 한국 음식은 맵다는 인식이 많은데, 어느 날 여럿이 모인 파티에서 미호상이 말했었다.
“한국에 매운 음식만 있는 게 아니야.”
“난 한국에 먹으러 가.”
미호상이 고추부각까지 좋아할 줄이야. 어쨌든 미호상의 부탁을 듣고 엄마께 전해 들은 레시피를 알려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