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드로잉
언젠가 스스로 감정노출증 환자 같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있다.
내 이야기를 기꺼이 들어주는 누군가에게, 그게 누구라도, 한 방울도 보태거나 빼거나 하지 않고 내 속을 완전히 뒤집어서 다 드러내 보이고 싶은 욕망.
환희, 열정, 편안함, 슬픔, 죄책감, 고통, 두려움.. 그 모든 밝음과 어두움에 대해서.
뜨거움과 차가움을 왔다 갔다 하는 감정의 온도에 대해서.
아무리 말해도 말로는 도저히 다 끄집어낼 수 없는 것들 때문에 무엇인가를 끄적이며 만들기 시작했던 것 같다.
이것이 나에게 카타르시스이다.
이것이 바로 나의 오와시스이다.
내가 존경하는 선생님이자 그림책 작가의 강의에서 들었던 말이 생각난다.
자신의 목표는 사람들이 '그림책'이라고 생각하는 어떤 것에서부터 할 수 있는 한 최대한 멀리 바통을 던지는 것이라고.
그래서 그림책이라고 하는 장르의 새로운 가능성에 도달하는 것이라고.
잘 팔리는 그림책은 물론이고, 엄청나게 훌륭한 그림책도 세상에 많지만 아직도 나오지 않은 그 무엇을 찾고 있다는 그의 말은 그림과 그림책에 대한 나의 인식에 큰 변화를 주었다.
그림책을 그냥 단순히 아이들이 보는 예쁜 그림이 그려져 있는 재밌는 이야기책이 아닌,
예술로서의 그림책이 가지는 의미에 대해서 고민해 보게 되었다.
내 손에 들고 있는 바통으로 던질 수 있는 거리는 어디까지일까?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던져야 할까?
이 고민은 나를 끊임없이 질문하게 하고, 도전하게 하고, 생각하게 해 주었다.
나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내게 가능한 것은 무엇이고 불가능한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
이것은 내가 좋은 작가가 되는 쪽으로 이끌어 주기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내가 좋은 사람으로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것이다.
나는 종이 위에서 가능과 불가능을 끝없이 찾아 헤매어야 한다.
그래야지 현실에서 길을 잃지 않고 살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