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 드로잉
아직도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확실한 답은 잘 모른다.
하지만 ‘내가 지금 어디쯤에 있는지’ 누군가 물어본다면 ‘생의 한가운데’에 있다고 답할 것이다.
물론 언제 삶이 끝날지 아는 것은 아니지만 그냥 그렇게 느껴진다.
지금 내가 태어남과 죽음, 시작과 끝 딱 그 가운데 있구나.
나는 나의 인생을 여행하고 있는 여행자다.
그리고 지금은 이번 여행의 중간쯤에서 가장 설레기도 가장 바쁘고 정신없기도 한 하이라이트 부분을 여행하고 있다.
집 떠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아직 서툴고 낯설지도 않고, 끝나가는 날이 다가오는 것을 아쉬워하며 슬슬 정리하고 마무리를 해야 할 필요도 없는 날들.
그냥 온 마음과 힘을 다해 이곳에 있기만 하면 되는 날들, 지금.
오일 파스텔이 묵직하게 훑고 간 흔적,
잉크 적신 나뭇가지가 재빠르게 몸을 놀리다 간 흔적,
종이랑 가위가 사각사각 만났던 흔적,
흔적들이 남겨지고 서로 만나서 그림이 된다.
오늘 내가 종이 위에서 추었던 춤이다.
그 춤의 흔적이 남아 그림이 된 것이다.
보이지 않는 흔적도 있다.
일어나자 맡았던 내 아이들의 살내음,
오랜만에 동네 언니와 먹은 따끈한 국수 한 그릇,
요즘 동생네 아기 본다고 바쁜 엄마와의 통화,
순간순간 만들어지는 나의 하루의 흔적들.
오늘 내가 보낸 하루는 어떤 흔적들을 남길까.
그 흔적들은 또 어떤 그림이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