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짝반짝 빛나게

낙서 드로잉

by 오월아이

사실 좋은 시절에는 예술이란 것이 없어도 그럭저럭 잘 살아가졌다. 문제는 그렇지 못한 시절이 생의 골목길마다 생각보다 꽤 많이, 꽤 자주 등장하더라는 것이다.

예술은 그때마다 반딧불이처럼 내 곁에 날아와서 반짝반짝 빛을 보내 주었다.


무엇보다 나의 책.

어린 시절 밖에 나가 노는 것보다 혼자서 꼼지락 거리며 놀거나 책 보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현실 친구가 그렇게 많지 않았던 것 같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아웃사이더 기질이 조금 있긴 했었네)

물론 학교를 같이 왔다 갔다 하고 쉬는 시간에 공기, 고무줄 하며 노는 친구들 정도는 있었지만 진짜 찐~한 친구는 책 속에 있었다.

프랜시스 버넷 <비밀의 화원>의 메리랑 루시 모드 몽고메리 <빨간 머리 앤>의 앤, 요한나 슈피리 <알프스의 소녀 하이디>의 하이디, 모두 잊을 수 없는 나의 베스트 프렌드들이다.

사춘기에 접어들어서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과 샬럿 브론테의 <제인 에어>에 나오는 러브 스토리에 푹 빠져 미래의 나와 사랑에 빠지게 될 히드클리프 같은 야성의 남자를 상상하며 혼자 설레기도 했다.


안 어울리게 결혼을 하고 더 안 어울리게 아이까지 두 명 낳아 기르며 행복하기도 했지만 힘든 순간도 수도 없이 많았다.

법륜스님의 <스님의 주례사>와 스티븐 비덜프 부부의 <우리는 사랑을 배우기 위해 결혼했다>가 없었다면, 어떻게 수천번을 싸워야 하고 수만 번을 맞춰야 하는 결혼생활을 내가 아직도 유지할 수 있었을까. (하기 싫은 건 도저히 절대로 못함+싫어하는 사람은 물론이고 좋아하는 사람 비위도 잘 못 맞춰줌+나 외의 다른 사람 자체에 관심이 거의 없음)

또 스티븐 비덜프의 <아이에게 행복을 주는 비결>과 법륜스님의 <엄마수업>을 읽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을 어떻게 행복하게 키워야 하는 것일까, 어떤 엄마가 되어야 할까 얼마나 고민했을까.

그냥 온통 ‘나’이기만 했던 내가 엄마로서의 정체성을 담담하게 찾아가기까지 얼마나 헤매었을까.


그리고 나의 그림.

말도 못 하는 아기인 나에게 할머니가 색연필의 12가지 색깔을 가르쳐준 그때부터,

글자도 모르는 3-4살 때 엄마가 벽에 커다랗게 붙여준 전지에 낙서를 하기 시작한 그때부터,

선을 긋고, 색깔을 칠하고, 종이를 오리고, 손을 꼬물대며 놀았고 그렇게 뭘 만들고 그리면서 커왔다.

미술학원에 다니며 여러 가지 표현기법을 배우면서 세상의 모습을 비슷하게 따라 그리는 것이 재미있었고, 대학에 가서는 현대미술이라는 이제껏 몰랐던 또 다른 미술의 세계를 알게 되어서 신기했다.

일러스트레이터로 일하면서는 여러 일러스트레이션을 그려서 그것이 출판이 되어 나오기까지의 과정을 배울 수 있었고 그 결과물을 보며 기뻤다.


지금도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살면서 나도 모르게 슬며시 잊어버리고 희미해진 '진짜 나'를 만나기 위해서 그린다.

내 안의 4살짜리 꼬맹이도 만나고, 40년 뒤의 나와도 연결되기 위해서 그린다.

책과 그림이 있어서 그래도 버틸만했고 앞으로도 그럴 것 같다.

어린 시절부터 늘 내 곁을 지켜준 한결같이 친한 친구였고, 커가면서 내가 세상을 넓고 깊게 볼 수 있게 도와준 현명한 멘토이자 선생님이었다.

내 안에 자꾸 쌓이는 감정 덩어리를 처리하는 문제로 힘들 때는 전담 카운슬러가 되어주기도 했다.


정말 그랬다.

좋은 시절을 더 좋게 보내게 해 주었고,

그렇지 않은 시절도 헤쳐나가게 해 주었다.




원래는 알록달록 컬러풀한 낙서였는데 흑백으로 변신





어떤 때는 컬러보다 흑백이 더 상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원래는 무슨 색이었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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