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른쪽 눈동자가 주인의 시선을 따라 이리저리 굴러갈 때마다 다리가 잘려나갔는지 몸통만 남은 듯한 투명한 애벌레 한 마리가 이를 따라서 흰자 위를 부드럽게 유영한다.
주인은 흠칫 놀란다.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기 시작한 그날 아침은 철렁인 주인의 가슴처럼 세상의 전기가 나갔다가 돌아왔다.
방금 보인 것이 착각이었는지 확인이 필요했던 주인은 의자에 앉아 차분하게 그러나 신속하게 눈동자를 왼쪽으로 빠르게 굴려본다. 투명한 애벌레는 감정 동요 없이 부드럽게 유영하며 반바퀴를 돌더니 아래로 착지하듯 사라진다.
‘아닐 거야.’
불안한 마음으로 책상 위에 놓인 노트북 덮개를 들어 올린 주인은 부리나케 화면을 켜고 검색 사이트를 열어 눈에 보이는 벌레에 대한 정보를 찾기 시작한다.
‘날파리’, ‘비문증’, ‘녹내장’.
하나씩 그러나 서서히 정보 속을 유영하며, 주인은 그가 가진 증상에서 시작하여 이로 인해 발생 가능한 모든 질환의 끝에 이르기까지 늪으로 빨려 들어간다.
마침내 시력을 모두 잃을 가능성까지 살펴본 주인은 세상을 잃은 듯한 상실감에 넋이 나간 영혼을 간신히 붙잡으며 우울과 절망을 경험한다.
‘그러고 보니 시야도 좁아졌어. 오른쪽 끝이 흐릿해. 더러운 렌즈를 낀 것 마냥 눈앞이 얼룩져 보인단 말이야.’
주인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는 증상에 점차 초조해진다.
식욕은 차츰 사라져 가고 세상을 향한 원망은 점차 쌓여간다. 비싼 의료비에 지레 겁을 먹은 주인은 병원에 가는 것이 두렵다. 애꿎은 노트북 화면만 연일 쳐다보며 찾아가고 싶은 의사 목록만 깐깐하게 추려가는 동안에도 시간은 흐른다는 것에 주인은 정신이 번쩍 든다.
‘더 이상은 안돼. 이러다가 정말로 큰일이 나면…’
비싼 의료비를 마주하게 될지 모를 막연한 부담감보다 시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더 큰 공포를 주인은 이겨낼 용기가 없다.
‘당장 누구라도 봐야겠어. 누구라도 내 눈을 봐줘야 해. 지금 확인하지 않으면 내가 돌아버릴 것 같단 말이지.’
주인은 침착한 척 그러나 벌렁이는 심장은 방치한 채 가장 빠른 시간으로 안과 검진을 예약한다. 병원을 향해 택시를 타고 가는 길은 촌각을 다투는 주인의 마음을 가득 실었다. 그 길 안에서 주인은 의사에게 건넬 증상을 열심히 번역하여 저장 또 저장한다.
마침내 병원에 도착한 주인은 서둘러 접수를 하고 간단한 여러 검사를 거쳐 마침내 의사를 마주한다. 그를 만난 사실만으로 주인은 위로를 얻고 얼마간의 평온을 되찾는다.
의사는 주인의 눈을 살피며 증상의 원인이 될만한 단서를 찾아보려 애쓴다. 그리 힘들이지 않고 능숙하게 살펴본 뒤 소견을 말하는 의사의 노련미에 주인은 신뢰를 느끼며 한층 더 안정을 찾지만, 결과를 들어야 하는 바로 다음의 순간에 다시금 심장은 빠르게 뛸 준비를 마친다.
주인은 의사의 표정을 면밀히 살핀다. 의사는 말한다.
“모두 정상입니다.”
주인은 자신이 느낀 모든 증상에 대한 의사의 소견을 본인의 귀로 듣고 나서야 비로소 진정한 안정을 되찾는다. 온갖 증상을 심각할 정도로 느껴왔던 주인은 초조함을 키워왔던 스스로에 대한 멋쩍음과 우려와 달리 건강하다는 사실로 인한 안도감, 그리고 내면의 평화를 되찾은 기쁨을 감추지 못한 채 그가 느낀 모든 감정을 허탈한 헛웃음으로 내보인다.
“감사합니다.”
실명에 대한 극도의 공포를 경험한 주인은 다시금 자신의 눈이 건강함을 확인하면서 되찾은 심리적 안정을 세상 무엇보다도 귀하게 여긴다. 그러나 감사의 마음도 잠시, 검진을 위해 키웠던 동공에 넣었던 안약 탓에 가까운 곳이 잘 보이지 않아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수납창구로 걸어가던 주인의 가슴에는 새로운 걱정이 스멀스멀 기어오르기 시작한다.
‘이제 병원비가 문제로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