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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핼러윈 파티>

9. 기회와 선택 (1)

by 빛과 그림자

"탕. 탕 "

귀를 찌르는 날카로운 총소리가 들렸다. 헤븐 가디언을 한나 아버지 명철이 껴안았다. 총알이 통과한 왼쪽 등과 오른쪽 허리에서 피가 솟구치며 푸른 경호원복이 보랏빛으로 물들었다. 헤븐 가디언의 하얀 사제복에 명철의 피가 붉게 번지며 스며들었다.

재민의 어머니 연화는 돌처럼 굳어서 아들 주민을 멍하게 바라보았다.


'경찰대를 나온 자랑거리였던 큰 아들이 교주님을 쏘았다.'


연화는 정신을 차린 후 아들에 대한 분노로 입을 악다물었다. 턱근육이 경직되면서 머리카락까지 곤두섰다. 주민은 며칠 전부터 연화가 구역장이 된 것을 진심으로 축하해 줬다. 꼭 참여해서 기쁨을 함께 하고 싶다며, 마침 임명장을 받는 날이 휴무일이라고 했다.

최근 지구대로 발령을 받은 주민의 근무패턴은 4일 단위였다. 1일 차에는 오전 7시에 출근해서 오후 7시에 퇴근했다. 2일 차에는 오후 7시에 출근해서 24시간을 꼬박 근무하고, 3일 차 오전 7시에 퇴근했다. 그리고 4일 차가 휴무였는데 소중한 휴무를 연화를 위해 쓰겠다고 자청했다.

연화는 [헤븐 게이트]의 2인자인 실버라이닝에게 큰 아들 주민의 참석이 가능한 지 물었다. [헤븐 게이트]에서는 직급이 올라갈 때마다 조금씩 교리를 알려줬다. 그래서 구역장이 될 때 2인자인 실버라이닝과의 개인 교리 수업이 임명식 후 세 시간 동안 예정되어 있었다. 주민이 참석할 경우에는 허락이 필요했다.

[헤븐 게이트]는 여자 신도들이 70퍼센트를 차지했지만, 상급 지도자로 올라갈수록 여자 신도들의 수는 줄고, 남자 지도자들이 많아졌다. 실버라이닝은 젊은 남자 신도들의 숫자를 늘리고 싶어 했다. 그래서인지 주민의 참석을 반겼다.


[헤븐 게이트]는 개개인의 구원을 강조하는 종교라서 가족 단위의 참여를 권장하지는 않았다. 적어도 필수 사항은 아니었다. 연화는 종교적 열정으로 두 아들이 신앙을 가지기를 원했다. 자주는 아니지만, 남편이 죽은 직후에는 연화는 두 아들을 데리고 게이트 예배에 참여했었다. 연화의 종교 때문에 이혼을 요구하기까지 한 남편이 있을 때는 상상하기 어려운 일이었다.

그런데 주민이 대학을 입학하고 나자 사정이 달라졌다. 주민은 재민이 성년이 되어서 종교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하겠다며 연화를 막아섰다. 연화는 주민의 행동이 불만이었다. 하지만, 한 달에 한 번씩 게이트 예배에 참여하겠다는 주민의 말 때문에 서두르지 않기로 마음먹었었다.


달려온 헤븐 가디언의 경호원들이 주민을 둘러쌌다. 주민은 경호원들에게 권총을 겨누었다. 그러나 누구도 총을 겨누는 주민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주민 뒤에서 접근한 경호원이 민의 목을 겨냥해 날 선 손으로 치자 주민은 두 무릎이 접히며 바닥에 떨어진 후 꼬꾸라졌다. 실버라이닝은 연화를 흘깃 쳐다본 후 경호원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지하 4층 감옥으로”

피를 흘리는 명철을 향해서는 다른 지시를 내렸다.

“수술실로 모셔라.”


명 남짓한 경호원들은 세 팀으로 나뉘어 재빠르게 움직였다. 주민은 감옥으로, 명철은 수술실로 옮겨졌다. 헤븐 가디언은 피 묻은 옷을 갈아입고 안정을 취하러 경호원에 둘러싸여 차로 이동했다. 그 뒤를 실버라이닝이 따랐다. 운전사 겸 경호원인 명철이 다친 상태라 실버라이닝이 직접 운전해야 했다. 근처 헤븐 캐슬에서 헤븐 가디언과 실버라이닝은 같이 살았다. 경호원들 차가 그 뒤를 따랐다.


*

연화는 실버라이닝에게 대기령을 받아 성전 교리실에 앉아 있었다. 연화는 이리저리 생각했다. 죽은 남편은 사이비 종교를 믿는 연화와는 살 수 없다며 이혼을 요구했다. 전업 주부였던 연화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다. [헤븐 게이트]의 교리를 더 알아내기 위해서는 더 많은 돈을 헌금해야 했다. 연화는 대기업을 다니는 남편의 수입이 필요했다. 이혼하고 자리를 잡은 뒤 연화가 번 돈으로 교리를 제대로 알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다들 급행열차를 타고 하늘의 상급을 노리는 데 자기만 완행열차를 타고 어디에 도착하겠는가. 절박했던 연화는 남편에게 사이비 종교 따위는 믿지 않겠다며 맹세했다. 남편은 정직하고 똑똑한 사람이었다. 좋은 대학을 나오고 좋은 직장에 취직했고, 집안 좋은 예쁜 아내와 아들 둘을 가진 남부러울 것 없는 사람. 연화의 남편은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 주민은 독립적이어서 괜찮았지만, 다섯 살인 어린 재민을 혼자 돌볼 자신이 없었다. 재민은 유난히 엄마에게 매달리는 아이였다. 연화의 남편은 연화의 맹세를 믿기로 했다. 이제까지 연화가 종교를 버리겠다고 맹세한 적은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연화는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 남편이 제안한 화해의 여행을 떠올렸다. 연화가 6개월 동안 [헤븐 게이트]의 예배에 참석하지 않았다. 그러자, 남편이 여행을 가자고 말했다. 부산 해운대에 가서 동백꽃도 보고 맛있는 갈비도 먹자고 미소를 띠며 연화의 손을 잡았다. 연화는 주말이니, 주민이 재민을 돌보게 하고 둘이서 가자고 말했다.

3월 초순 맑고 화창한 날이었다. 봄을 알리는 산수유가 지천으로 피었었다. 긴 외딴 터널을 지날 때 연화는 남편이 잡은 핸들을 터널벽 쪽으로 힘차게 꺾었다. 속력을 내고 있는 상태에서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운이 나빴다면 운전석 옆 좌석의 연화도 죽었을 것이다. 운전석 쪽에 있던 남편은 터널벽과 심하게 충돌해 파손된 자동차처럼 심한 부상을 입고 즉사했다. 연화도 심하게 다쳤다. 연화는 죽어도 남편과 화해할 수 없었다. 6개월 동안이나 성전에 가지 않아 분노 게이지가 최고로 상승해 있었다.


연화는 주민이 그 여행의 진실을 안다는 것을 깨닫자 온몸이 후회로 아파왔다. 근육이 말리듯 딱딱해지며, 몸이 돌처럼 굳는 것 같았다. 고등학교 3학년 때 주민이 한 번씩 연화의 책상 앞에 앉아 공부하는 것을 너무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아버지가 갑자기 사라져서 허함을 달래려 그러는 줄 알았었다. 생각해 보면, 주민은 무척 독립적이라 어릴 때부터 자기 방에 혼자 있는 것을 좋아했었다. 오히려, 공부할 때 자리 바뀌는 것에 지나치게 예민했었는데... 그 사실을 놓치다니. 남편처럼 똑똑하고 따뜻하고 정직한 아이라고만 생각했었다.


*


민은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을 알았다. 교주를 죽이는 데 성공했어도 지하 감옥에 갇히는 것은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사이비 종교는 항상 상상 이상이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따라간 게이트 예배에서 어머니의 간증이 이상하게 들렸다. 주민은 공부하는 척하며 어머니의 책상에 있는 노트들을 읽었다. 어머니의 노트들을 읽고 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비밀과 어머니의 안도감, 아버지의 사망 보험금이 반은 헌금으로 바쳐졌다는 것도 알았다. 게다가, 부자이지만 증여에 인색했던 할아버지, 할머니는 딸의 불행에 애통해하며 고급 아파트를 어머니의 소유로 해주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이사 온 빌라 길 건너에 있는 넓은 평형의 아파트였다. 어머니는 증여받은 집에서 월세를 받고, 그 돈을 헌금으로 내고 있다는 사실도 주민은 알게 되었다. 돈과 가족, 생명. 사이비 종교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었다.

주민은 자신의 미래도 대략 짐작이 되었다. 감옥에서 살아 나가기 힘들 것이다. 경호원들은 그를 장갑을 끼고 옮겼다. 최대한 상처를 남기지 않게 조심하는 게 느껴졌다. 핸드폰도 빼앗겼다.


'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민은 어둠에 익숙해지며 주변을 돌아보았지만 시간을 가늠할 수 없었다. 어두운 감옥에 불이 들어왔다. 뜬 눈으로 밤을 새우던 민은 눈이 부셔 눈을 감았다 가느다랗게 떴다. 철장 밖에 경호원 한 명과 눈을 안대로 가리고 입에 마우스 피스를 한 어머니가 서 있었다. 두 팔은 뒤로 가 있었다. 수갑이 채워진 것처럼 보였다.

“지금 오전 5시야. 어제 다행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어. 너는 교주님을 털끝 하나 다치게 못 했어. 네 계획은 완전히 실패했어.

일단 네 어머니를 볼모로 너를 풀어 주겠다. 며칠 말미를 줄 테니 네 신변을 정리하고 휴가를 내라. 그동안 네가 또 엉뚱한 짓을 한다면 어머니뿐 아니라 어린 네 동생도 무사하지 않을 거야.”


연화는 주민이 갇힌 감옥으로 경호원에게 떠밀려 들어왔다. 주민은 어머니를 보고 별다른 감정을 느끼지 않았다. 교주를 죽이지 못한 것이 원통했지만, 어머니가 감옥에 갇히는 것은 사필귀정이었다.

감옥에서 풀려나 [헤븐 게이트] 교회에서 울창한 메타세쿼이아 나무들이 가로수처럼 길게 펼쳐진 숲길로 걸어 나오며, 주민은 마음의 갈등을 겪었다.


‘지금이라도 도망가야 한다. 지갑과 핸드폰을 돌려주다니.’


주민은 숲길에서 10분 정도 걸어 큰 도로변으로 나오자 택시를 잡아탔다. 집으로 가는 길에 택시 안에서 주민은 재민을 깨워 도망갈까 생각했다. 어머니는 벌을 받아야 했다. 하지만, 초등학교 6학년인 재민을 학기 도중에 별다른 조치 없이 계속 결석을 시킬 엄두가 나지 않았다. 주민 자신도 경찰로서 무단 결근하는 게 부담스러웠다. 어찌 보면, 경찰서가 가장 안전한 장소였다. 주민은 영원히 볼 수 없을 것 같았던 차창 밖 서울 풍경을 측정할 수 없는 경이감을 가지고 계속 바라보았다.


큰 도로 옆, 빌라로 접어드는 골목 입구 편의점 앞에서 주민은 내렸다. 편의점을 보자 갑자기 배가 고프고 목이 말랐다. 어제 점심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 주민은 편의점에서 삼각김밥 두 개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사서 문 앞에 놓인 간이 식탁 앞에 앉아 먹기 시작했다. 길 건너 어머니 소유의 아파트 단지가 보였다. 다 부질없는 짓이었다. 꿈같은 일이었다. 지금 주민의 입 안에서 맴도는 김치 제육의 맛만이 진짜처럼 느껴졌다. 연이어 먹은 참치마요 김밥이 이렇게 맛있다고 느낀 것도 처음이었다. 주민은 아메리카노를 마시며, 멍한 정신도 깨웠다.

아침을 먹자 민은 출근하기로 결심했다. 앞날을 도저히 가늠할 수 없었지만, 지구가 멸망해도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으로 지구대로 가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

수술실 옆 간이침대에 누워 명철은 의사를 기다렸다. 피를 많이 흘려 자꾸 잠이 왔지만, 명철은 착한 아내와 자신을 쏙 빼닮은 한나만 생각했다. 이렇게 비참하게 죽을 수는 없었다. 교회 지하 단칸방에서 세 가족은 일 년을 버텨왔다.


“옷을 가위로 잘라 벗기고, 알코올로 몸을 닦아요.”


누군가 지시하는 소리가 들렸다. 명철은 의사가 왔다고 생각하며 정신을 잃었다.


*


집에 돌아와 세수를 하고 양치질을 한 후 주민은 옷을 출근복으로 갈아입었다. 민은 집을 나서며 재민의 방을 노크했다. 평소에는 하지 않는 행동이었다.


“재민아, 형 경찰서 다녀올게. 너도 학교 잘 다녀와.”

“응, 형도.”

잠결에 재민이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주민은 전철을 타고 내려서 근무하는 지구대 옆 건널목 앞에 서 있었다. 아침에 사람들이 출근하느라 건널목은 붐볐다. 파란 불이 들어와 주민이 길을 건너던 중 유난히 키가 큰, 긴 머리 여자와 부딪혔다. 뭔가 따끔하게 주민의 배를 찔렀다. 주민은 배를 내려다보며 걸었다. 주사기가 꽂혀 있었다. 건널목을 다 건넜을 때, 모르는 남자가 주민을 안았다. 주민은 뿌리쳤다. 그러자 남자는 사라져 버렸다. 배를 만져보니 주사기가 없어졌다.

주민은 남자를 쫓아가려고 했지만 어지러웠다. 그래서, 비틀거리며 길 옆 지구대로 향했다. 지구대에 도착하자마자 주민은 쓰러졌다. 경찰관들은 쓰러진 주민을 둘러쌌다. 엎어졌던 주민을 제대로 눕혀 살펴봤을 때, 민의 호흡은 멈추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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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