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악마를 보았다 1

아픈 아이를 키우며 마주한 나의 바닥, 그 적나라한 이야기

by 그리움

#프롤로그 1. 내.아.소┃내 아이를 소개합니다. 나의 바닥을 보게 한 ‘아픈’ 아이를 만나기까지┃


둘째는 모든 것이 쉽지 않았다.


임신이 너무 안 되어 걱정과 고난 속에 보내던 중(첫째 임신과 출산 이야기도 할 말이 많다) 기적같이 찾아주었던 첫째와는 달리, 둘째는 생각보다 너무나 일찍 찾아와 주었고 임신테스트기도 너무나 빠르고 명확하게 자신을 드러내는 아가였는데, 첫째 때와 비교하여 입덧도 심했고, 불면증도 심했다. 등장은 획기적이었는데 과정은 엄청난 고난의 연속이었다.


임신 기간 중 받는 모든 검사를 Non-pass 했다. 처음부터 갑상선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나 출산할 때까지 약을 계속 먹어야 했고, 첫째의 임신 중독 전적이 있어 고혈압을 방지하고자 아스피린도 매일 먹어야 했다. 임신 당뇨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여 매일같이 식사 일지를 쓰면서 혈당 검사를 했는데 좋아지지 않아서 인슐린 주사까지 맞았다(내가 직접 내 다리 곳곳에 주사를 꽂아야 하는 경험은 지금도 소름이 돋는다). 더욱이 태아의 허벅지 길이와 턱의 길이가 평균에 비해 유난히 짧다는 이상 소견이 있어 대학병원 외래를 다녔다. ‘대학병원’으로 옮긴다는 것 자체가 긴장의 사건이었지만 호탕했던 담당 교수님은 괜찮을 거라고 안심시켜 주셨고 크게 걱정하지 않고 몇 주를 보냈다. 우리에게 다가올 미래를 전혀 1도 예상하지 못한 채.


조기진통이 심하여 30주 이전에 벌써부터 병원에 입원을 해야 했고, 그러던 중 결국 걱정했던 임신 중독증(임신성 고혈압과 단백뇨가 주요 증상으로 위험하면 언제 뇌가 터지거나 발작, 경련이 올지 모르는 위험한 증상이며 아직까지 뚜렷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고 오로지 출산만이 답이다) 증상까지 발현하여 대학병원 고위험산모실에 입원을 해야 했다. 병원만 가면 집에 돌아오지를 못하고 입원을 하게 되어서 병원에 가는 것조차 무서웠다. 영문도 모른 채 엄마와 갑작스러운 이별을 겪어야 하는 첫째가 안쓰러워 울면서 보낸 입원 첫날밤을 잊을 수 없다. 코로나 19는 임산부 입원 환자에게는 최악의 상황을 더했다. 면회 금지로 첫째는 엄마와 생이별을 해야 했다. 조기진통으로 열흘, 임신 중독으로 한주를 입원하는 동안 내 곁에는 아무도 없고, 아무도 만나지 못한 채 혼자 보내야 했다. 잠시 퇴원이 허락되어 친정에서 첫째와 감격스러운 재회를 하고 만 이틀도 되지 않아 결국은 혈압이 160을 넘어서 늦은 밤 세브란스 응급실로 달려가야 했다. ‘엄마, 가지 마, 침대에서 쉬어’라고 떼를 쓰던 첫째 생각에 또 눈물로 밤을 보냈다. 결국 단백뇨 수치가 높아져서 응급 수술이 결정되었다. 수술 당일 아침에 초음파를 보는데, 그동안 괜찮았던 아기의 심장에 음영이 보였고, 아기가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임이 명확했기에 수술을 하기로 했다. 수술을 할 때 전신 마취를 하면서 치사율이 높아 중환자실 들어갈 수도 있다는 말까지 듣고 수술을 했다. 임신 33주였고 아기는 고작 1.5Kg였다. 역시나 코로나 19 상황 속에서 음성 결과를 확인하기까지 한나절을 보낸 신랑을 수술 후 저녁이 되어서야 만나볼 수 있었다. 아기는 바로 신생아 중환자실로 들어가서 보지도 못했고, 코로나 19로 면회도 안 되어 퇴원하는 날 15분 겨우 인큐베이터 너머로 볼 수밖에 없었다.


1.5킬로로 태어난 우리 둘째. 많은 고생을 했던 우리 아가. 두 달은 니큐(NICU-신생아집중치료실)에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두 달이 세 달이 되고.. 5개월이 되도록 집에 오지 못했다. 야속한 코로나로 100일에도 잔치는커녕 얼굴도 보지 못한 채 병원에서 보내준 사진과 동영상으로 마음을 달래야 했다. 정말 극심한 코로나 기간의 아기라 우리는 면회도 못했다. 그저 한 주에 두 번 오는 사진으로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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