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를 키우며 마주한 나의 바닥, 그 적나라한 이야기
끝이 없다. SNS 덕에 타인의 생활이 너무나 여실히 드러나기 때문에 일반적으로도 나와 다른 사람들의 삶을 끊임없이 비교하며 마치 행복을 겨루는 느낌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저 평범한 일상마저 사치로 느껴졌다.
그냥 아무 일 없이 임신하고 출산하는 과정만 봐도 부러웠다. 하필 내가 둘째를 임신하고 출산하게 되면서 내 주변의 많은 친구들이 임신을 했었다. 그중에는 오랜 기간 임신이 안 되어 마음이 피폐해져 가던 친구들도 있어서 그냥 무한대로 축하하는 마음만 가득했던 친구들도 많았다. 그런데 평범치 않은 나의 임신, 출산, 그리고 아이의 오랜 시간의 NICU 생활을 견뎌내며 그냥 평범하게 아이를 낳고 키우는 모든 주변의 상황들이 나에게는 큰 공격 자극이 되었다. 나는 내 아이를 평범하게 안아보지도 못했는데, 건강하게 낳아서 함께 있는 사진만 봐도 마음이 베베 꼬였다. 축하를 전하는 나의 머리는 무한대의 축하를 날렸지만 마음 깊은 곳은 그렇지 못했다. ‘왜 나에게만 이런 일이 생겼는가. 왜 나는 그 평범한 일들을 누리지 못하는가'. 목적 없는 원망과 절망적인 외침이 내 마음에 가득 찼다.
병원을 가면 아픈 아이들이 정말 많다. 우리 아이보다 심한 병도 얼마든지 많다. 지금의 내 아이와 나의 생활 자체가 누군가에게는 또 다른 비교 거리가 될 것이다. 겨우 이 정도로 감사하지 못하고 힘들어하다니 어이가 없다 할 수도 있다. 이만한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르는 사람으로 비칠 수도 있다. 그래서 함부로 밖으로는 원망하고 불평할 수도 없었다. 하지만 병원을 나서고 내 주변을 바라보면 모두 다 행복해 보인다. 모두 다 건강한데 우리 아이만 아픈 것 같다. 내 아이만 발달을 따라가지 못하고 성장하지 못한다. 숨조차 쉬는 것도 어려웠는데 뭔 발달까지... 평범하게 아이를 먹이고 돌보고 놀아주는 그 모든 일상이 이제는 ‘남 이야기’가 되어 버렸다.
그 비교에 빠져 나의 마음은 지옥이 되었다. 점점 관계를 끊고 SNS도 하지 않게 되었고 들어가 보지도 않았다. 누군가의 평범한 사진이 나의 삶을 절망으로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저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고 우리가 누릴 수 있는 것에 초점을 맞추기로 했다. 우리의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 우리라서 할 수 있는 것들을 열심히 해 보려 했다. 그래도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진 것에 감사하고 최대한 우리 나름의 즐거움을 찾아보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비교의 바닥을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