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에서도 말했지만 내 주변의 친구들은 다 건강하게 출산을 했고, 아이를 잘 키우고 있었다. 나도 첫째를 키워봤지만 그냥 아이를 키우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정신이 없고 힘들다. 할 일도 많고 정신도 없고 몸과 마음이 지치기도 해서 없던 우울증도 생긴다. 하지만 나의 상황은 그것조차도 부러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처음에 축하는 전했지만 그 이후에는 점점 연락도 만남도 시들어 갔다. 코로나 19라는 상황이 임신과 출산, NICU에 있는 아기에게는 최악의 상황을 선사했지만, 관계를 끊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핑계였다. 어차피 ‘만남’ 자체가 꺼려지는 사회적인 상황이 있었기에 합법적으로 사람들과 만남을 피할 수 있었다. 누군가와 만나서 내 상황을 전하는 것도 쉽지가 않았고 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들에게는 하나의 가십 거리이지만 난 현재 진형형인 전투 상황이었고, 일반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병명과 치료 과정, 수술 이야기가 난무했기 때문에 일일이 설명하기도 힘들었다. 또한 아이 이야기를 했을 때 결국 안 좋아지는 분위기, 어찌 전하지 못하는 위로, 나의 무덤덤함에 당황하는 사람들, 서로 도움 안 되는 말만 주고받게 될 게 뻔했기 때문에 더 만남을 피하기도 했다.
제일 큰 관계의 단절은 시댁이었다. 시댁과의 관계는 원래도 엄청 좋은 편은 아니었지만 표면적으로는 잘 이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둘째 아이가 집으로 돌아와 정신없이 고군분투하는 여유 없던 우리 부부에게 시댁의 공감력 떨어지는 말들은 차단하고 싶은 자극일 뿐이었다. 임신 중독증 증세가 심해지고 아이가 심장에 무리가 생기는 응급 상황에서 33주 만에 출산을 할 수밖에 없었던 상황임을 충분히 설명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왜 애를 일찍 낳았는지, 태아가 엄마 배 속에 10달간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설명하는 시부모님의 말은 나를 어이없게 만들었다. 교통사고 난 사람에게 와서 교통사고 나지 않는 것이 얼마나 큰 복인지 이야기하는 느낌이랄까? 애가 아픈 걸 내 탓으로 돌리는 뉘앙스에서 나도 신랑도 말 그대로 빡이 쳤는데, 심지어 친정 부모님 앞에서도 그런 말을 하여 우리 부부의 여유 없던 마음은 극에 달했다. 악의적인 의도가 아님을 이해하려 해도 잘 풀리지가 않았다. 뭐 그런 상황에 더욱 불을 지피듯이 여러 상황들이 겹쳐서 폭발하여 일방적으로 관계를 끊어 버렸다.
그냥 우리에게는 여유가 너무 없었다. 이미 우리의 상황들은 우리의 에너지를 다른 곳에 쏟을 수 없기에 충분했고, 전투 상황 속에서 우리의 신경은 날이 서 있었다. 누군가의 작은 한 마디가 우리를 크게 아프게 했고, 그에 대해서 우리가 할 수 있었던 건 그냥 조용히 단절하는 것뿐이었다.
그 당시의 우리는 그랬다. 점차 우리의 에너지도 조금씩 회복되면서 다시금 회복된 관계도 많지만 그때는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