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악마를 보았다 8

아픈 아이를 키우며 마주한 나의 바닥, 그 적나라한 이야기

by 그리움

#6. 리액션의 바닥 ┃헛헛한 위로와 같잖은 충고 따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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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상황은 우리 주변의 사람들에게도 평범치 않은 일이었다. 우리와 같은 상황을 겪어본 적이 없거나, 아주 작게나마 비슷한 경험을 짧게 했거나. 우리의 상황을 알지는 못해도 좋은 마음으로 우리를 격려하고 위로하려고 노력한 마음을 알기에 표면적으로는 ‘감사합니다.’하면서 받았지만 속으로는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심지어는 우리끼리 어이없다며 욕하기도 했다(전쟁과도 같은 상황에서 전우애가 싹튼 우리 부부의 죽은 또 이런 곳에서 잘 맞았다).


‘힘내, 기도할게, 많이 힘들지, 하나님이 하실 거야’는 평범하다. 나의 상황을 불쌍히 여긴 분이 자주 메신저로 말씀을 보내주기도 했는데 오히려 깊은 곳에서는 짜증이 일어났다. 이마저도 교만일까 싶지만 다 귀찮을 뿐이었다.


‘누구네 아기는 이랬고, 저랬고, 언제면 좋아지더라, 처음에는 아팠는데 금방 괜찮아지더라’. 그래.. 나에게 희망을 전해주고 싶었겠지. 하지만 그래서 어쩌라는 것이지? 우리 아이는 상황이 전혀 다른데. 알지도 못하고 헛된 희망을 전하고 심지어 강요하는 것도 어이없을 뿐이었다.


‘나도 그랬었는데’. 하는 같잖은 경험담도 다 필요가 없었다. ‘하지만 조금 뒤에 괜찮아졌잖아’ 하면서 뿔난 답을 속으로 내뱉을 뿐이었다.


최고조는 ‘그래도 이만하니 감사해야지’하던 설교였다. ‘하, 정말 나 참....’ 욕이 나올 뻔했다. ‘감사’란 것은 우리 스스로의 마음에서 우러나온 자발적인 고백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누군가에 의해서, 강요하고 강조한다고 될 것이 아닌데 말이다.


이런 모든 것을 겪어보니 지금까지 내가 했던 위로도 얼마나 헛헛한 위로였나 하고 반성했다. 하나도 와닿지 않았겠구나 했다. 상황을 직접 경험해 보지 않으면 절대 모르는 것들이 있다. ‘다른 세계’라 표현한 아픈 아이를 키우는 것도 그렇다. 아이의 병에 따라, 처한 여러 처치와 치료에 따라, 여러 상황에 따라 아픈 아이를 키우는 상황도 100명이면 100명 모두 다를 것이다. 우리도 이전에는 전혀 몰랐으니 말이다. 그냥 생각으로만 ‘힘들겠다.’하지 정말 하루가 얼마나 고되고 어떻게 흘러가는지 감히 상상도 못 했다. 나는 상담을 전공했기 때문에 ‘공감’이란 말도 많이 듣고 심지어 매 상담 시간에 그걸 전달해야 하는 입장인데 내가 한 공감이 내담자에게 얼마나 가 닿았을지 더욱 작아지고 겸손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감히 누군가의 인생 경험 한 자락을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을까?


나에게 마음을 전하려던 사람들도 다들 무슨 말이라도 하고 싶어서, 그래도 힘을 냈으면 해서 부족한 마음을 전달하고 싶어서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희망적이고 좋은 말들을 찾아 이야기했을 것이다. 안다. 알고 있다. 다들 좋은 마음이고 노력한다는 것도 안다. 알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 리액션하려는 마음조차 고갈이었다. 내겐 그럴 기운이 없었다. 그저 내 힘든 것에 빠져서 허우적댈 뿐이었다. ‘당신들이 뭘 알아. 뭘 알고 떠드는지. 하나도 모르면서 그런 이야기를 하지. 그저 조소하며 바라볼 뿐이었다.


그런 바닥일 때 나를 일으켜 줬던 것은 아무 말 없이 무엇인가를 해주고 함께 있어 주던 것이었다. ‘잊지 않을게. 절대 잊지 않고 늘 기억하고 기도할게’라고 해주던 말 한마디, 아무 말 없이 찾아와서 집안일을 도와주고 첫째와 놀아주고 함께 해주던 손길, 그저 말없이 건네던 선물들. 그냥 발 벗고 찾아와서 안아주던 따스한 시간들. 그냥 그런 것들이 나에게는 힘이 되었다. 긴 말이 필요하지 않다. 긴 말은 잔소리만 될 뿐이다. 그저 함께 해주고 ‘내가 너의 옆에 있어’ 하며 진심을 다해 도와주려던 그 마음이 나에게 차곡차곡 쌓여서 다시금 웃게 하고 힘을 내게 했다. 그런 도움들이 다시금 나를 일으켜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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