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악마를 보았다 10

아픈 아이를 키우며 마주한 나의 바닥, 그 적나라한 이야기

by 그리움

#에필로그. 바닥을 치고 올라와야지 ┃그래, 웃으며 돌아볼 날이 오겠지.


다음은 아이가 6개월 정도 되었을 때, 병원에서 퇴원한 지 한 달이 되었을 때, 우리가 고군분투할 때 썼던 일기다.




#. 갑자기 든 생각인데.. 아이가 아픈 건 속상하지만 100일 넘게 병원에서 키워주시고, 보험금으로 넉넉하게 하시고(아이가 아파서 받는 보험금이 무슨 소용이겠냐 마는.. 안 아프고 안 받길 바라지만...) 신랑이 전례 없는 육아 휴직을 받고 함께 있게 하시고, 우리 가족에겐 그래도 나름 함께하는 풍성한 시간이라 감사하다. 물론 엄청 엄청 힘들지만 그냥 이 시간들이 귀하고 좋다. 감사하다. 감사해요, 하나님.


이사야서 43장을 읽는데 우리 아이에게 주시는 말씀 같았다. 우리 아이를 지으신 분도 하나님이시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아이를 고치시고 구원하시고 이 아이를 통해 찬송받으시고 영광 받으실 것이라고 믿는다. 하나님께서 치료하시길 간절히 바란다.


어려운 중에도 하나님을 찬양해야 한다고 했다. 하나님은 찬양받으시기 마땅한 분이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려운 중에서도 하나님을 계속 찬양하고 감사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잘 받아주시길 바란다.




누군가에게 강요받은 ‘감사’가 아니라 진짜 내 안에서 우러나왔던 감사다. 나의 삶은 늘 바닥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이곳에 푸념하느라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가득하여 누군가는 읽다가 마음이 심란해졌을 수도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부정적이고 암담한 날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분명히 그 어두운 중에 소망의 빛이 보이는 날도 있었고, 그저 모든 순간이 기적이고 은혜여서 감사로 넘치는 순간들도 있었다. 슬프고 우울하고 암담하고 좌절되는 바닥에서 허우적대는 나도 있었지만, 다시 일어서고 걷고 뛰고 점프하며 생기발랄하게 순간순간들을 즐기는 나도 있었다. 우리의 시간들을 즐기기 위해 노력했고, 지금 할 수 있는 것들을 찾아 분주히 움직였다.


피딩 기계에 피딩 통에 약에 네뷸라이저, 분유통, 분유포트, 이유식 등 바리바리 짐 가방을 4-5개씩 들고 여행을 가기도 했고 우리가 함께하는 시간들을 사진과 영상으로 수없이 남겼다.

KakaoTalk_20240125_173448111.jpg 여행을 가기 위한 몸부림



나와 신랑이 미움에 가득 차 쳐다보는 둘째를 더 예뻐해 주고 무조건 사랑하고 돌봐주는 첫째가 웃게 해서 다시 회복되는 시간들도 많았고, 마음 깊이 진심으로 우러나와 둘째가 사랑스럽고 예쁘고 감사하게 보이는 날들도 많았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분명 나에게 힘이 되어주고 일으켜 세워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함께 나의 시간들을 견뎌주는 가족들도 있었고 내 미래를 나보다 더 기대하는 사람들도 계속 있다.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아이가 36개월이 막 지났는데, 이제는 입으로 먹고, 걸을 수 있으며, 뛸 수도 있다. 정확한 발음은 아니지만 또래보다 말을 더 많이 하고 잘한다(단어의 사용이 많고 유창하다는 것이다). 여전히 언어치료 이야기도 나오고, 남아 있는 수술도 있으며, 피에르 로빈 구조상 콧물을 1년 중 360일 이상 달고 살며 중이염도 숱하게 오고 폐렴도 급격히 심각하게 와서 1년에 몇 번이고 입원해서 그럴 때마다 또 좌절되고 낙담되고 죽고 싶은 마음이 들 정도로, ‘이렇게 살아 뭐 하나, 그만하고 싶다’ 생각도 숱하게 들 때도 있지만 또 감사하게 되고 웃게 되는 날이 또 오기도 한다.


누군가에게는 더 바랄 게 없는 기적일 수 있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평범해 보이겠지만 우린 그 하루하루의 고난과 역경을 알고 있어서, 그저 모든 시간이 전쟁이었고 그래서 기적이었어서, 그저 감사로 마무리를 하려고 한다.


아직도 나에게는 남은 과제들이 많고 내 개인적인 미래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지나온 시간들 속에서 웃었던 날들을 경험했기 때문에 조금은 덜 걱정하고 조금은 더 기대가 된다. 사실 우리네 삶은 어떻게 흘러가고 펼쳐질지 그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에 그저 오늘 하루를 잘 견디고 버티는 데 충실하려고 한다. 그저 주어진 순간을 감사히 하려 한다. 항상 불행하기만 하진 않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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