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를 키우며 마주한 나의 바닥, 그 적나라한 이야기
잘 안 먹어서, 뒤집고 기어 다니고 앉고 일어서는 모든 과정을 만들어 가야 했던 일상의 전쟁을 컨트롤하지 못하는 데서 오는 첫 번째 분노 다음은 바로 나의 열등감의 바닥이었다.
나는 소위 말하는 고학력자다. 어디 내놓아 부끄럽지 않을 이름의 대학을 다녔고, 동 대학원을 나왔다. 동기들은 저마다의 영역에서 이름을 빛내며 일을 하고 있다. 나의 결혼과 출산과 관련하여 내 학벌과 직업적인 포기에 대한 할 이야기는 많지만 어쨌든 아이의 임신, 출산, 양육을 위해 나의 커리어는 잠시 내려놓았었다. 그래서 둘째를 낳고 난 후에는 다시금 내 커리어를 발현시키려는 원대한 포부가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무너졌다. 둘째 아이의 병과 치료, 재활, 양육의 모든 것이 나에게 달려있었다. 그것도 무한정의 시간으로. 전례 없던 신랑의 육아휴직은 6개월 밖에 되지 않았고 이후의 모든 일정은 나 혼자 소화해야 했다. 그 6개월의 시간 동안 콧줄도 떼었고, 서게 되기까지 놀라운 발전이 있어 기계 수유도, 재활이라는 큰 숙제도 덜게 되었지만 그 이후에 걷게 되기까지, 그리고 변함없는 먹이기 전쟁, 말을 하게 되기까지, 그리고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수술들, 검사들, 여전히 많은 병원 외래들, 워낙 약한 아이라 365일 감기와의 싸움, 잦은 입원 등의 일정은 오롯이 내 몫이었다. 그러니 나의 미래에 대한 계획 자체를 포기하고 모든 걸 유예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가 언제 나아질지, 도대체가 좋아지긴 할지, 다른 여느 평범한 아이들처럼 일상을 영위할 수는 있는 건지 보이는 게 없으니 그 막막한 미래는 나에게 낙담, 절망감을 안겨 주었다.
그 낙담과 절망은 아이에 대한 미움으로 또 변했다. ‘날 힘들게 하는 아이’라는 딱지와 더불어 ‘나의 발목을 잡은 아이’ 딱지 하나가 더 붙었다. ‘내 미래를 절망시킨 아이. 내 커리어를 망가뜨린 아이’. 이런 생각이 드니 아이가 더 미워졌다. 잘 먹지도 않고, 걷기 위해, 말 한마디를 배우기 위해 남들보다는 10배 이상의 노력을 해야 하고, 병원은 왜 이렇게 많이 가며, 해야 할 과제들은 아직도 태산이었다. 정해진 기한이라도 있다면 힘들지 않을 텐데 이런 돌봄을 언제까지 해내야 할지 알지를 못하니 막막하기만 하고 그냥 하염없이 힘들기만 했다. 나에게는 그저 버거운 짐일 뿐이었다. 그러니 아이가 미워 보이기만 했다. 예쁜 짓도 하고 나를 웃음 짓게 하고 놀라운 변화를 보여줄 때도 있어 기쁘기도 했지만 내 바닥에 깔린 감정은 대체적으로 미움이었다. 이런 감정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신앙적으로 기도를 해 보기도 하고 심리학적으로 바라보고 마주하고 풀어보기도 하려 했지만 반복적인 일상을 버티는 것만으로도 나는 버거웠다.
비슷한 상황에 처해 있는 사람들과 나누면 조금 풀리기도 하고 ‘그래도 잘하고 있다, 대단하다’는 말을 들으며 나 스스로도 치켜세워 보려 했지만 결국 제자리로 돌아왔다. 내 아이를 이렇게 미워하는 엄마가 있을까 하며 자책하기도 하고 그럴 수 있지 하며 토닥이기도 했지만 어쨌든 내 마음은 시끄럽고 힘들었다. 이 마음과 싸우느라 더 힘들었다.
겉으로는 아닌 척하고, 잘 지내고 잘 견디고 있는 척했고, 실제로도 그렇게 보여 사람들은 정말 잘 지내고 있다고 생각했지만 나 자신은 그렇지 못했다. 그것을 제일 잘 알고 있으니 나는 한없이 바닥으로 꺼지는 기분이었다.
내 나이 또래의 잘 나가는 친구들, 평범하게라도 자신의 일을 하고 있는 주변인들을 보며 작아지는 내 모습은 나의 열등감의 바닥을 보기에 충분했다. '여기에 멈춰 무엇을 하고 있나’, ‘이 생활이 끝은 있을까?’, ‘나는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경력이 이렇게 오래 단절인데 날 써줄 곳이 있을까?’와 같은 생각이 끝없이 꼬리를 물고 늘어지며 불안과 걱정이 엄습할 때면 아이들과 하루 종일 씨름해서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잠이 오지를 않았다. 임신 때도 그렇게 불면증에 힘들었는데, 출산 이후에도 난 여전히 불면증이 지속되었다. 육아를 하다 보면 지쳐서 쓰러져 기절한다는데 기절은커녕 속 시끄러운 온갖 생각에 정신이 없는 내 머리는 잠을 쫓아내기 충분했다. 이런 시간들 속에서도 할 수 있는 일들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며 글을 쓰기도 하고, 뜨개질이나 미싱을 하며 내 아주 작은 시간들을 버텨보기도 하고 팔아서 수익을 남겨 보기도 하고 엄청나게 나름의 노력을 했지만 ‘멈춰져 있다’고 생각되는 날은 답답해서 견디기 힘들었다. ‘이 시간들이 누군가에게는 도움을 줄 수 있을 거야.’, ‘언젠가 이 시간과 경험들이 나의 일에도 좋은 영향을 줄 거야.’라고 다독여 봐도 그려지지 않는 나의 미래는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서 점점 사람들도 만나지 않게 되었다. ‘그냥 아이 키우는 엄마’로 비칠 내 모습이 자신감이 없었다. 전업 주부를 욕하는 것이 아니다. 나도 해보니 집안일과 육아 자체는 그 어떤 일보다 힘들고 고되고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저 나 자신이 그렸던 미래의 모습이 내가 과거에 상상했던 것과 다른 데서 오는 현타감이었다. 내가 20대 때 그렸던 나의 30대는 화려한 커리어 우먼에, 아이도 힘 있게 키우며 워라밸을 실천하는 멋진 여성이었다. 하지만 지금의 내 현실은 그 상상의 1단계도 실현시키지 못하고 있으니 좌절이 되었다. 20대의 나를 알던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지 않은 모습이 되었다.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도 그 무엇보다 귀하고 중요한 일임을 나도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이상과 현실의 괴리에서 오는 마음의 슬픔은 가슴 깊이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게 나는 나 자신의 열등감의 바닥에서 허우적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