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의 악마를 보았다 3

아픈 아이를 키우며 마주한 나의 바닥, 그 적나라한 이야기

by 그리움

#1. 분노의 바닥┃나는 엄마가 맞나? 아이가 너무 밉다┃


※ 다소 폭력적이고 생경하며 적나라한 표현들과 부정적인 감정의 폭발물과 같은 글이 있을 수 있으니 심신이 약하신 분들은 읽지 말아 주시길 당부드립니다.


아이의 건강 상태 자체에 대한 걱정은 차치하고 그 아픔을 위해 해야 하는 모든 일이 나에게는 ‘짐’으로 느껴졌다.


아무 힘도 없는 아이 한 명이 자기 힘으로 무엇인가를 해내기까지의 모든 과정- 아이를 먹이고, 기저귀를 갈고, 놀아주고, 재우고, 놀아주는-은 오롯이 양육자의 몫이다. 주로 엄마가 그 역할을 많이 한다. 일반적으로 큰 병 없이 커가는 아이 한 명을 돌보는 것도 엄청난 에너지와 정성을 쏟아야 하는데 여러 가지 아픔을 지고 있는 아이 한 명을 돌보는 것은 정말이지 ‘다른 세계’의 일이었다. 나와 신랑은 ‘다른 세계’라 표현했는데 정말이지 우리가 경험하기 전까지는 전혀 몰랐던 일들이었다. 알고 싶지 않았지만 알아야 했고 이제는 무조건 해야 하는 일들. 아픔의 정도도 다르고 우리 보다 더 많은 일을 감당하고 해내야 하는 엄마 아빠들이 많이 있어 감히 우리의 일은 많다고도 할 수 없는, 그래서 감히 불평할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에 온 것 같았다.


정말 어렵게 어렵게(퇴원도 여러 번 취소되었었다) 퇴원을 하게 되어 드디어 아이를 안고 집에 오는 그날부터 우리는 멘붕에 빠졌다. 혀 고정술을 하여 입으로 먹기 어려운 우리 아이는 콧줄을 달고 나왔다. 코부터 위까지 이어진 그 줄에 분유를 넣어 먹여야 하는데, 그것을 위해서도 병원에서 한 주간 교육을 받고 실습을 받았다. 주사기를 연결하고, 전 후로 주사기로 물을 조금씩 넣어 잘 연결되었는지 확인하고, 주사기와 콧줄을 통해 분유를 흘려보내야 하는데, 우리 아이가 먹는 분유는 역류에 도움을 주는 분유여서 끈적끈적한 점도의 분유라 주사기로 내려가지 않는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거짓말하지 않고 2시간을 주사기를 들고 있었나 보다. 이렇게 하루에 6번~8번을 먹여야 하는데, 말이 되지를 않았다. 결국 피딩 기계를 사서 그 기계 작동법을 익혀서 먹이는 수밖에 없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기계에 연결되는 모든 피딩 통, 줄을 씻어야 했고, 소독해야 했다.

KakaoTalk_20240125_153346814.jpg 우리를 살려준 피딩 기계. 익숙해지니 유모차에 타서도 먹고 아기띠에 안아서도 먹고 병원에서도 기계 달고 먹이고 차에서도 먹였다!


먹이기 전 후로 먹여야 할 약도 많았고, 호흡기가 약한 아이라 네뷸라이저도 시간마다 해야 했다. 자지러지는 아이를 붙잡고 네뷸라이저를 하고, 시간 맞춰 약을 먹이고, 콧줄 수유를 하고 트림을 시키고 정리하다 보면 네뷸라이저 할 시간이 되고, 다시 약, 수유.... 하루 종일 먹이기만 하는 기분이었다. 정신이 없었다.


신랑의 회사는 육아 휴직을 내기 어려운 분위기였는데, 전례 없던 육아 휴직까지 받을 정도였으니 우리의 일상은 남들이 봐도 한 명이 도저히 할 수 없는 일의 연속이었다. 먹이는 것만 해도 그런 많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1시간 반이 걸리는 병원 외래가 있는 날에는 새벽같이 나가서 하루에 5~6개가 넘는 과를 돌아다니며 검사와 외래를 다녀야 했다. 그 사이사이에 기계를 연결하여 수유를 해야 했다. 나중에는 피딩 방법에 통달하여 차에서 기계를 매달고 먹이는 여유까지 부렸지만 그렇게 되기까지 수개월 동안 우린 엄청난 시행착오를 거쳐야 했다. 여러 군데에 이상 소견이 있던 아이는 외래만도 수십 개의 과가 잡혀 있었고 최대한 몰아준다 하여도 병원 스케줄 상 어려우면 한 주에도 여러 번, 한 달에도 꽤 많은 시간을 다녀야 했다.


첫째도 돌봐야 했으니 신랑과 나는 함께 힘을 합쳐서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칠 때가 많았다. 나중에는 많이 익어지고 꾀도 생겨서 시간이 많이 줄었지만 해야 할 일이 줄어들지는 않았다. 약의 가지 수가 줄고, 가야 할 외래가 조금씩 줄기까지는 수개월이 지나야 했다.




일반적으로 아이들은 때가 되면 뒤집기를 하고, 배밀이를 하고, 기어 다니다가 걷게 된다. 나는 첫째를 키울 때 이 모든 과정을 거치면서 물론 터미타임(아이를 엎드려 놓아 코어 힘을 기르도록 훈련시키는 것)도 시키고 한 발 한 발 도와주는 수고를 했지만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과정임에는 의심이 없었다. 저마다의 발달 시간에는 차이가 발생하고 늦어질수록 엄마들의 마음은 애가 타고 실제로 발달이 늦어져 장애를 발견하기도 하지만 보통은 모든 과정을 ‘자연스럽게’ 여길 것이다.


하지만 둘째의 경우는 이 모든 과정이 ‘과제’였다. 이미 남들이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있는 5개월 동안 NICU에서 각종 수술과 검사, 치료를 받으며 누워있었으니 이미 남들과 비교했을 때, 늦어도 한참 늦어 있었다. 심정지를 비롯하여 여러 수술을 거치면서 걱정했던 것보다는 다행히 뇌에 이상도 없었고 생각보다 똘똘하게 견뎌주고 있다고 들었지만 발달은 늦을 수 있다는 소견을 받은 터라 마음은 먹고 있었다. 아킬레스건 수술로 깁스까지 하고 돌아온 아기는 감격적인 해후 이후 바로 먹는 것에 온 힘을 쏟았고, 사랑과 관심만 주기에도 턱없이 모자랐다. 그런 아기를 데리고 차후에는 입으로 먹어야 하기 때문에 구강 재활, 뒤늦은 발달을 따라잡기 위한 운동 재활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얄궂은 코로나 19와 오랜 병원 생활로 얻은 균 하나가 있어 다른 아기들과 같은 침대를 쓰기 어렵기 때문에 대면 재활은 어려웠다. 다행히 비대면 재활이란 것을 발견했고 좋은 선생님들을 만나 진행할 수 있었다.


하지만 말이 재활이지 아기에게는 엄청난 고통의 시간이었다. 뒤집기 한 번을 하기 위해서 아기는 수천 번 만 번의 터미타임과 마사지를 견뎌야 했고, 구강 마사지도 아이를 자지러지게 했다. 입으로 먹기 위해서, 한 번을 앉기 위해서, 기기 위해서, 걷기 위해서 아기는 엄청난 눈물을 쏟으며 재활을 해야 했다. 그런 아이를 붙잡고 포기하지 않고 하루에도 몇 시간을 함께 움직이고 아이를 다독여야 하는 우리도 있었다. 기적적으로 아이는 이 시간들을 견뎌내어 입으로 먹게 되고, 자신만의 속도로 뒤집고, 배밀이를 하고, 네 발로 가까스로 기어 다니기도 하고, 일어서고, 걷기까지 했다. 기적이라고밖에 표현이 안 되는 모든 과정은 정말이지 쉬운 것이 하나도 없었다. ‘드디어 해냈다!’라고 쓰는 단 한 줄의 표현 속에는 수천, 수만 번의 울고 견뎌낸 시간이 포함되어 있다.

KakaoTalk_20240125_153957449.jpg 수많은 재활의 시간 중 한 순간. 눈물겨운 인고의 시간들


콧줄을 오래 하고 있으면 입으로 먹는 것이 더뎌지고 심지어 잊을 수 있기 때문에 마음을 굳게 먹고 콧줄을 빼버렸다. 콧줄을 매주 갈아 주는 것도 엄청나게 무섭고 떨리는 일이어서 하기 싫기도 했다(자지러지게 우는 아이 코 속으로 줄을 넣어 위까지 넣는 일은 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이제 정말 전쟁의 시작이었다. 먹이려는 자 vs 먹지 않으려는 자. 콧줄을 달고 있는 아기는 시간이 되면 먹을 것을 넣어 주기 때문에 ‘배고픔’을 모른다. 배고파서 울고, 먹고, 포만감을 느끼고 만족감을 느끼는 이 과정을 7개월(집에 와서도 콧줄을 한참 했으니) 넘게 하지 않았던 아이는 ‘배고픔’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포만감도 모르는 듯했다. 처음에는 입으로 먹는 방법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콧줄과 병행하고 구강 재활을 하며 입의 감각을 살리고 먹는 방법을 알려 주었다. 콧줄을 빼고는 입으로 먹는 것을 보며 모두가 감격했다. 하지만 아이는 도대체 먹을 생각이 없었다. 배고프지 않아 그런가 오랜 시간 굶겨 보기도 했다. 하지만 우는 법이 없다. 아기의 특성상 굶기는 것은 답이 아니기에 시간을 맞춰 먹여야 했는데 먹으려 하지를 않는다. 젖병도 바꿔보고, 젖꼭지도 바꿔 보고, 분유도 맛있다는 것은 하나씩 사서 다 돌려보고, 노래도 불러주고, 장난감도 보여주고 온갖 재롱을 다 부리고, 거울도 보여주고 안아도 보고, 앉혀도 보고, 세워도 보고, 눕혀도 보고, 쉬었다 먹이고, 여러 번 나눠 먹이고... 모든 방법을 동원했지만 도통 먹으려 하지를 않았다. 간신히 10, 20, 처음으로 40, 70ml를 먹은 때는 감격해서 소리를 지를 정도였다. 하지만 그것도 한두 번일 뿐. 한 번에 100ml 넘게 먹어야 하는 발달 단계인데 10 먹고 고개를 돌릴 때는 진짜 화가 날 지경이었다. 분유를 잘 먹지 않으니 맛있는 것이라도 먹여 보자 해서 과일즙도 먹이고 이유식도 빨리 시작하고 밥, 간식도 엄청 빨리 시도했다. 하지만 다 조금씩 밖에 먹지를 못했다.




‘전쟁’. 정말 매일, 매 순간이 전쟁과 같았다. 아이가 워낙 작게 태어났고, 아픈 곳도 많아서 체중이 느는 것이 정말 중요한데, 먹으려 들지를 않으니 성장도 엄청 더뎠다. 만 36개월이 얼마 지나지 않은 지금도 우리 아이는 영유아 검진의 백분위에도 들지 못한다. 여러 과의 의사들 마다 아이의 성장이 더딘 것에 주목하고 있을 정도다. 아기가 자는 시간, 노는 시간, 재활 시간을 빼면 죄다 먹는 시간인데 이 시간이 아이와 전쟁의 시간이 되었다. 매일, 그것도 여러 번 먹여야 하는데 이것을 잘 해내지 못하는 아이에게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다. 진정한 내 바닥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었다.


매일의 전쟁과 아이의 재활, 병원 생활 등으로 나와 신랑의 마음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 지쳐갔다. 우리는 나름 사이도 좋고 각자의 성격도 긍정적이고 많이 밝은 편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많이 시들어간 것 같다. 우리의 상황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함부로 떠들어 대는 이야기, 헛한 위로에 지쳐갔고, 크게 변화되지 않는 매일의 삶과 끝이라곤 있는지 모를 아이의 병세, 그 모든 과정이 우리의 마음을 병들게 했다. 그건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진행되었다.


‘아이가 먹지 않는 이유가 분명 있겠지, 본인은 얼마나 힘들겠어, 언젠가는 잘 먹는 때가 오겠지, 자신의 속도로 잘 클 거야’...라고 머리로는 생각하고 이해하려 했지만 우리의 시시 때때로 올라오는 감정은 제어가 안 되었다. 잘 먹지 않고 뱉어내거나 고개를 돌리는 아이가 점점 미워졌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아이. 우리를 지치게 하는 아이. 너무나 버거운 아이. 우리의 마음도 몸도 아프게 하는 아이’. 아이를 바라보는 우리의 시각은 점차 어두워져 갔다. 머리로는 ‘사랑해야지, 이해해야지, 불쌍히 여겨야지, 그동안 못해준 만큼 더 잘해줘야지, 더 안아줘야지, 더 견뎌내야지’ 아무리 세뇌를 시켜도 순간적으로 젖병을 거부하는 아이를 보면 화딱지가 났다. '도대체 안 먹고 어쩌려고, 죽으려고? 안 자라려고? 이렇게 쪼그맣게, 아프게 살다 발달도 늦어지려고?'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분노가 솟아올랐다. 아기가 의도하는 것이 아님을 알고 있으면서도 아이가 나를 조롱하고 있는 것인가, 말을 듣지 않고 지멋대로 하는 것인가, 뭐 어쩌자는 것인가 하는 조절되지 않는 감정이 솟구치면서 점차 아이에게 분노를 발산하게 되었다. 먹지 않으려는 아이의 입을 벌리고 분유를 짜 먹이기도 하고 울고불고하는 아이에게 억지로 먹이기도 했다. 너의 생존과 성장을 위해 어쩔 수 없다고 하면서 고문하듯이 먹였다.




끝이 보이지 않는 일상에 지친 밤마다 아이를 데리고 떨어져 볼까, 어디 멀리 버리고 와볼까 하는 상상을 끊임없이 했다. 나는 아이를 때리는 폭력에 대해서는 반대하고, 절대 해서는 안 될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심정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물론 어른의 일방적인 감정의 분풀이로 핑계 댈 수 없는 잘못된 행동이지만 그 감정의 임계치에 도달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 조금 이해가 간다는 것이다. 나 또한 그런 감정과 격분이 밀려드는 적이 많았기 때문이다. 엄청난 검사와 수술을 견디고 온 나의 아기, 호흡조차 어려웠고 먹는 것도 안 되었던 나의 아기, 매일이 기적이고 순간이 기적인 나의 아기였지만 그 아이와 매일, 매 순간을 버텨야 하는 나에게는 그저 모든 것이 숙제이고 짐이었다. 그 모든 어려움을 함께 견디고 버텨야 하는 나는 너무 지쳐서 도망가고 싶었다. 아이에 대한 분노의 감정이 올라오는 것을 바라보고 그래 그럴 수 있지 하고 신랑과 나누기도 하고 달래면서 해소하려고 노력했지만 다시 반복되는 일상의 전쟁에서 정말 고군분투해야 했다.


아이와의 일상을 버티는 것과 내 아이를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나는 엄청나게 노력해야만 했다. 나는 모성애가 저절로 생긴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다. 호르몬 분비, 수유를 하면서 아이와 나누는 정서의 교감을 통해, 그리고 점차 아이와의 관계 맺음을 통하여 모성은 발전해 나가는 영역이지 바로 ‘뿅’하고 생기는 것은 아닌 것 같다. 5개월간의 공백은 아이에게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나에게도 있었나 보다. 갑자기 마주한 아이, 그런데 엄청난 과제 더미와 함께 밀려든 아이는 나에게 버거운 존재로만 느껴졌다. 머리로는 감사와 기쁨이 넘쳐났지만 내가 직접 경험하고 헤쳐 나가야 하는 순간들은 나에게는 커다란 덤불숲을 헤쳐 나가야 하는 정글로 느껴졌다. 그 안에서 나는 아이를 돌봐야 하는 모든 미션과 더불어 아이를 사랑하기 위해 몸부림쳐야 했다. 끊임없이 올라오는 분노를 잠재우기 위해서 난 버텨내야 했다. 진짜로 나의 바닥을 보면서 난 그 바닥에서 견뎌내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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