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아이를 키우며 마주한 나의 바닥, 그 적나라한 이야기
우리 아기는 심장 이곳저곳에 구멍이 있다는 심방중격결손, 심실중격결손 진단을 받았고, 이로 인해 폐로 가는 혈류량이 많아 폐가 계속 젖어 있어 호흡이 불안정하고 자가 호흡이 되지 않아 폐동맥 조임 수술을 받았다. 처음에는 미숙아에게서 흔히 볼 수 있는 심장 구멍이라 닫히는 경우도 있다 해서 그렇게 되길 바랐다. 하지만 점점 구멍이 커지고 호흡이 어렵다 보니 수술 얘기가 나왔다. 몸무게를 좀 더 키워서 심실 구멍을 메꾸길 원했는데, 그런 시간조차도 허락되지 않을 정도로 상태가 안 좋았다. 결국 폐동맥 조임술을 하게 되었다. 폐동맥을 조금 조여주어서 폐로 가는 혈류량을 조금 줄여보는 것이었다. 후에 풀러 주는 수술이 불가피하고 그때 상황을 봐서 구멍을 메꿀지 말지 결정하기로 했다. 둘째의 경우 심장 구멍이 근육 조직에 있어 어려운 상황이라고도 했다.
아이가 태어나고 딱 1개월 1주가 지났고, 고작 2킬로 밖에 안 되었는데 개흉을 하는 큰 수술을 하게 되었다. 새벽 첫 시간에 수술이 시작될 예정이라 떨리는 마음으로 신랑과 일찍 갔는데, 호흡이 불안정해져서 수술이 어려울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컨디션이 다시 돌아와 수술을 하게 되었고 잘 마쳤다. 턱이 작고 기도가 너무 좁은 둘째는 전신마취 하나도 쉽지가 않아 여러 가지의 검사를 거쳐야 했고 수술 당일에도 몇 번을 된다, 안 된다 애를 태우게 했다. 수술 후에 재우면서 회복하는 시간, 금식 후에 수유양을 조금씩 늘려가는 길고 긴 시간을 기다렸다. 하지만 호흡이 드라마틱하게 좋아지지 않았다. 기대 이하의 결과였다.
무엇이 문제인가. CT를 찍기로 했다. 수면제를 투여해야 하는데, 이것으로 호흡 곤란의 상황이 올 수 있다 했다. 결국... 정말 호흡 곤란의 상황이 왔는데, 턱이 작고 기도 윗부분이 협착, 연화(자꾸 달라붙는) 증세가 있어 기도삽관도 쉽지 않았다. 기도 삽관을 10번 하다가 심정지가 왔다. 병원 내에 ‘코드 블루’ 방송이 나오고 의사들이 뛰어 오고... 나는 이상하게 한 번도 울지 않고 그 모습을 모두 지켜보기만 하고 후에 의사에게 설명까지 다 듣고 나왔다. 그러고는 병원 바로 옆 내 사랑하는 모교의 사람 없는 빈 곳에 앉아(학교 다닐 때도 그렇게 울어본 적이 없는데) 신랑과 전화로 상황을 전하고는 대성통곡을 했다. 뇌로 산소가 가지 않은 시간이 총 10분 정도나 된다고 했다. 이후에 뇌파 검사도 하고 MRI도 찍고, 발달이 약간 늦을 수 있다고도 했지만 다행히 큰 이상은 없다고도 했다. 정말 며칠 사이에 천국과 지옥을 몇 번을 오르락내리락했는지...
CT 결과, 기도에는 큰 문제는 없다고 했다. 후두에 연화증이 있긴 하나 크게 문제 되는 상황은 아니라 했다. 그럼 또 무엇이 문제인가? 아이를 가졌을 때 초음파 상에서도 턱이 좀 작다는 이야기가 계속 나왔다. 미숙아로 태어나 모든 것이 작아 처음에는 크게 이상하지 않았는데 점점 자라면서 턱이 보통 아이에 비해 많이 작다고 결론이 났다. 턱뼈가 작고 뒤로 밀려 있어 혀를 누르고 혀가 말려 들어가면서 기도를 눌러 숨을 못 쉬는 것이라 한다. 결국 수술을 하기로 했다. 이번 수술은 혀를 당겨서 아래 입술에 붙여주는 수술이다. 의사들은 숨 쉬는 것이 1번 과제이기 때문에 불가피한 수술이라 하지만 난생처음 듣도 보도 못한 수술 설명에 도대체가 혼란하기만 했다. 혀를 어떻게 붙인다는 건지, 수술을 하면 턱에 단추를 달고 살아야 한다는데 상상도 가지 않았고, 그저 끔찍한 상상만 되었다. 수술도 수술이지만 이후에 해야 할 구강 재활, 침 흘리는 문제, 옹알이부터 말을 하는 것, 삶의 불편감 등 엄마가 해야 할 걱정은 산더미였다. 구강악안면외과 교수와 면담 시 ‘피에르 로빈 시퀀스’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그렇게 얻은 희귀 질환 ‘피에르 로빈'. 그것이 우리 아이에게 붙은 주요 병명이다. 잠 못 이루는 밤 검색하다 나왔던 무서운 병명이 실제로 들리니 무서웠다. 주요 증상을 쉽게 설명하자면, 우리 아이처럼 턱이 작아 혀가 계속 뒤로 말려 기도를 막아 자가 호흡이 어려운 것이 가장 주요한 증상이다. 구개열(입천장이 갈라져있는 상태)이나 다른 여러 증상이 있기도 하지만 우리 아이는 구개열은 없었다. 하지만 언제든 생길 수 있다는 가능성도 들었다. 아이가 성장하여 골격이 커지고 턱도 커지면 혀도 푸르고 정상 호흡을 할 수 있길 바랄 뿐이었다.
또한 태아 때부터 오른쪽 발목이 굽어 있다고 했는데 역시나 태어나서도 발목이 접힌 채로 태어나서 깁스를 하며 교정을 하고 있었고, 퇴원 전에는 결국 아킬레스건을 끊어 발목을 펴주는 수술을 해야 했다. 이로 인해 깁스를 몇 개월하고 보조기를 3살까지 착용해야 했다. 더운 여름 땀이 차서 땀띠가 올라오는 아이 발에 양말을 신기고 꿋꿋이 보조기를 채워야 했다.
아이가 인큐베이터에 가만히 누워 있는데도 이유 모를 골절이 손목, 허벅지, 무릎에 있던 흔적이 있어 유전자 검사를 시행했다. 그 결과를 기다리는 기간도 꽤 길었고 마음이 어려웠다. 사실 무슨 결과가 나온 들 우리가 이제 와서 무얼 할 수 있을까 싶어서 하고 싶지도 않았으나 의사들은 명확한 것을 좋아하는 것 같았다. 3개월 뒤에 나온 결과는 희귀성 돌연변이. 전 세계에 6명 정도가 기록되어 있는 유전자 자리에 돌연변이가 발생한 것이란다. 아직 어떠하다는 큰 결과나 기록이 크게 없어서 계속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음낭수종(음낭에 물이 차는 것)이 있었는데 초음파 촬영 중에 탈장까지 발견되었고, 오랜 병원 생활로 혈관 잡기가 쉽지 않아 정맥도관을 삽입하는 수술을 하면서 탈장 수술도 함께 했다.
태어나서 NICU에 5개월 있는 동안의 아이가 겪었던 모든 일을 기술하려면 끝이 없다. 작고 작게 태어난 아이는 계속 새로운 병이 나타났고, 전혀 예상치 못한 일들로 우리를 긴장하게 했다. 신장에, 뇌에 음영이 보인다 했다가 괜찮아진다 했다가, 뭐 어디가 어떻고 저떻고. 전화가 올 때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선고를 받는 기분으로 받았다. 피에르 로빈이 흔한 증상은 아니라서 의사들도 처음에 조금 헤맸다고 생각한다(순전히 개인적인 생각). 호흡이 잡히지 않으니 심장에, 결국엔 혀 고정술까지 여러 모로 애를 먹였다. 접힌 발목과 골절들, 탈장에 오랜 병원 생활로 이런저런 균에 감염이 되기도 했다. 청력 검사, 역류 검사 등 무언가 검사를 하면 또 새로운 무엇인가가 발견되어 무서울 지경이었다. 나중에 퇴원할 때 받은 진단서에는 A4 한 장 가득히 병명이 적혀 있었다. 그렇게 긴 진단서는 처음 봤다.
병원에 5개월이나 있는 아기를 생각하면 마음이 너무 힘들었다. 첫째가 있어 첫째를 돌보느라 산후조리도 오래 못했고, 둘째 생각하며 울기만 하지 않도록 첫째가 날 정신없게 해 주어서 오히려 다행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고 경험하는 것들이 온통 낯선 기계음, 날카롭고 고통스럽게 하는 치료들이니 아이의 정서가 너무나 걱정이 되었다. 상담을 전공했고 상담 관련된 일을 했던 터라 무엇보다 아이의 애착, 정서가 얼마나 중요한지 더 알고 있는데 우리 아이는 어떤 세상을 배워가고 있는가. 참담했다. 처음에는 이 정서에 대한 걱정이 컸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생존 자체가 걱정이 되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그런데 너무 고통스러운 시간들이 길어지면서, 심정지가 오는 그 순간에도 나는 나쁜 생각을 했다. ‘그냥 이렇게 고통스럽게 사느니, 차라리 저렇게 힘들 바에야, 고통 없는 하늘나라가 낫지 않을까.’ 그래서 눈물도 하나 흘리지 않고 심정지 된 아이를 살리는 의료진들을 바라봤나 보다. 이런 생각은 새로운 병명이 들릴 때마다, 퇴원 후에도 끊임없이 아프고 새로운 치료와 수술과 검사, 입원을 반복할 때마다 계속 들었다. 아이뿐만 아니라 그냥 나도 사라지고 싶을 정도로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계속 들었던 것 같다.
병원에서 새로운 병명을 마주하고 앞으로의 일들에 대한 소견을 들을 때마다, 병원에 있는 지금이 오히려 아이에게 좋은 환경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의료진이 항시 대기하고 있는 병원이 오히려 안전해 보였다.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퇴원을 앞두고 심폐소생술 교육과 갖가지 집에서 해야 할 치료, 투약에 대한 교육을 들으면서 퇴원에 대한 기쁨보다는 두려움이 컸던 것 같다. 이와 더불어 앞으로 집에서 내가 아이를 돌보고 재활을 해 나가야 하고 병원 수십 과를 돌아다니며 해야 할 모든 것이 부담스럽고 고통스러운 숙제 거리로 느껴졌다.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하는 것은 결국 ‘나’니까. 결국 모두 짊어져야 할 사람은 ‘나’니까. 끝이 정해지지 않고 보이지도 않는 시간들을 견뎌야 하는 것은 ‘나’니까. 그저 ‘퇴원 = 고통과 숙제의 시작’으로 여겨져서 퇴원이 정말 감사하고 좋았지만 한 편으로는 마냥 기쁘고 행복하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오랜 병원 생활을 한 내 아이를 데려오는 엄마의 마음이 이렇게 여러 갈래라니. 복잡한 나의 심정을 그때는 채 누구에게도 털어놓지도 못했다.
그것이 내가 마주한 첫 번째 바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