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never gets old
남편이 며칠 전 부터 자꾸 야경을 보러가자고 보챘다. 금문교 보러 가자고. 나는 좀 귀찮았다. 관광객이 많아진 관계로 금문교 뷰 포인트로 가는 길은 몇 년 전 부터 일방통행으로 바뀌었는데, 그 곳으로 진입하는 길은 1차선 짜리 오래된 터널을 지나 구불구불 들어가야했다. 한국이면 저녁에도 나가서 신나게 돌아다니지만 어찌된 일인지 미국에만 오면 저녁 해 먹고나서는 나가기가 싫어지는 이상한 현상.
이 날은 날씨도 맑고, 그래, 못 이기는 척 차에 몸을 실었다. 금방이니까 다녀오지 뭐.
샌프란시스코에 산지 몇 년이 되어 관광객을 피해다니는 것이 일상이다. 사람 많고 차도 막히고 줄도 긴데. 하지만 골든게이트 브릿지는 볼때마다 멋지다. 탁 트여서 눈이 시원해진다. 도시와 바다, 산, 안개 그리고 붉은 다리. 해가 딱 지자마자 도착했다.
날씨가 너무 좋아서 남편이랑 해 질 때 까지 앉아서 다리를 바라보았다. 우리는 금문교를 자주 건너다닌다. 금문교 근처 공원에 하이킹도 다녔었다. 새해 해돋이를 매년 여기서 보(려고하지만 잘 못일어나)고, 청혼도 금문교 배경이었다.
해가 완전히 지고, 안개가 넘어온다. 산에서 아지랑이 피듯 모락모락 올라와 안개가 되기도 한다. 샌프란시스코에 밀려들어오는 안개는 이름도 있다. '칼' 이라고. 얼마나 빠르고 자욱하냐하면, 청량한 뷰의 다리를 보고 기프트샾을 들어갔다가 나오면 거짓말처럼 다리가 사라져있곤 한다.
이 곳은 조류가 굉장히 빠르고 안개가 자주 끼는 곳이라, 금문교를 처음 짓겠다고 했을 때 불가능한 일이라는 반응에 직면했다. 게다가 다리 이전에는 페리를 타고 다녔기 때문에 페리 회사에서 반대했고, 군에서는 군용 배의 운용을 방해할 것을 걱정했다. 결국 샌프란시스코+마린카운티(샌프란시스코 다리건너 북쪽) 시민들과 자동차 관련 산업에서 지지하면서 다리는 당시의 첨단기술을 이용해 지어졌다. 나는 종종 생각한다. 다리 건설을 직접 목격한 그 당시의 사람들은 어떤 기분이었을까. 저게 된다고? 했는데 정말로 눈앞에 나타나 차를 타고 건너는 느낌이란! 남들이 안된다고, 어렵다고 하는 기어코 일을 해내는 사람들은 세상을 바꾼다. 이 다리 덕분에 마린 지역과의 근접성이 높아졌음은 물론이거니와, 80년 넘게 샌프란시스코를 상징하는 랜드마크로 빛나고 있다.
금문교 위의 가로등은 노란색이다. 이 노란색은 붉은 색의 다리와 대비를 이루며 다리를 더욱 아름답게 만든다. 해가 지면서 바다는 더 짙어지고, 도시는 빛이난다. 모두가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시간. 그리고 그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
이쯤 되면 칼바람이 따귀를 사정없이 쳐 정신이 없는게 보통인데, 오늘은 밤바람 마저 따스했다. 운이 좋은 날이다. 옆에는 카메라를 고정해놓고 영상을 찍는 사람, 대학졸업식을 마치고 아직도 들뜬 마음으로 여행중인 가족, 밤마실 나온 부부, 토요일저녁에 신나서 씨끄러운 20대 무리 모두가 다글다글 밤을 즐기고 있었다.
그냥 빨간색 색칠된 다리일 뿐인데. 금문교는 그 이상의 무언가가 있다. 방문자에게는 여행의 설레임을, 이민자에게는 내가 SF에 왔구나 하는 경외감을, 거주자에게는 굵은 안개와 조류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여기에 있어 하는 안도감을.
남편이 나오길 잘했다며 너스레를 떨었다. 나도 기분 좋으라고 맞장구를 쳐줬다. 기분이 좋으니 가는 길에 길라델리에서 아이스크림 먹고 가쟨다. 주말이고 관광객 많을 것 같으니 그냥 마트에서 하겐다즈 사 먹는 걸로 합의를 봤다. 멋진 야경에 아이스크림이라니, 완벽한 샌프란시스코의 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