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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residio Library Jun 09. 2023

샌프란시스코 주민입니다

모두가 자신이 좋아하는 동네를 맘껏 사랑할 수 있도록.

'샌프란시스코'를 들으면 어떤 것이 떠오르는가?


붉게 빛나는 다리, 언덕을 오르내리는 케이블 카, 맛있게 먹었던 길라델리의 아이스크림?


최근에는 아쉽게도 안 좋은 것만을 부각해서 샌프란시스코를 때리는 글을 많이 본다. 이유는 많다. 높은 물가, 집값, 노숙자문제.. 이 도시를 사랑하는 나로서는, 이 상황이 안타깝다. 그래서 이야기하고 싶은 내가 샌프란시스코를 사랑하는 이유.


1. 언제나 봄, 언제나 가을.

 

한국에 살 때 말버릇 처럼 달고 살던 것.

아 일년 내내 봄(가을)이였으면 좋겠다

   이 곳이 바로 그렇다. 아래 그래프를 보자.

출처 National Centers for Environmental Information

실제로 샌프란시스코의 제일 추운 12월 평균온도는 8도/14도, 제일 더운 9월은 14도/23도로 한국의 봄 가을 날씨와 다를 것이 없다. 가끔 히트 웨이브가 와서 아주 덥더라도 30도 중반 정도이고, 대부분 일주일 정도로 짧게 있다가 지나간다. 추워도 영하로는 떨어지지 않는다. 항상 미국 전역이 불타고 있다고 난리를 칠 때도, 온도 지도를 보면 샌프란시스코 근방만 제 온도를 유지하고 있다.


기후가 이렇게 마일드한 것은 그냥 내가 좋은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고 생활양식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여름 겨울 옷을 매번 정리해서 넣었다 뺐다 할 필요 없이 옷장을 그대로 두어도 된다. 집을 구할때나 구매할 때, 겨울 철 결로/동파나 보온, 여름철 습기로 인한 곰팡이 등을 신경쓰지 않는다. (여기는 여름이 건기이고 겨울이 우기이지만 어쨌든) 아이들은 여름에 땀띠로 허덕이지 않고, 겨울에 내복+생활복+얇은겉옷+패딩+목도리모자장갑으로 동동동 싸매지 않아도 된다. 난방비/에어컨비용 걱정이 적다. 우리집은 일년 내내 전기세가 30-60불 정도다. 집을 보러 다닐 때 냉방은 없는 지 물었더니 부동산 직원이 (?_?) 하는 표정으로 "창문을 열면되죠" 해서 “Ahh, silly me” 했었다.


혹시 눈오는 겨울이 그리우면, 겨울에 3-4시간 거리의 타호나 요세미티로 운전해 가면 된다. 눈이 펑펑 와서 쌓이고, 스키장도 있고, 호수도 있다. 더운 여름 날씨가 그리우면, 남/동/북 아무 방향으로나 30분-한시간 만 운전해 가면 된다. 알록달록한 단풍이 그리우면 11월 초 쯤 1시간 30분 거리인 나파로 가면 된다.

가을의 나파밸리. 알록달록 단풍이 아름답다.


코로나가 창궐할 때 사람들이 물가가 싼 곳으로 많이 이사를 가면서, 우리도 한 번 이사 가 볼까 하고 미국 내 여기저기를 따져보았다. 아, 이 날씨를 포기할 자신이 없어서 그만두었다.



2. 필요한 건 다 있다

만약 내가 처음에 전형적인 미국의 교외 집에 살았더라면, 나는 그냥 프로그램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미국의 보통 가정집에서 부터 가장 가까운 마트의 평균 거리는 2.14miles (USDA, 2015)로, 약 3.44km. 땅이 넓은 이 나라에서 그냥 장을 보려고 해도 평균적으로 사람들은 차를 타고 3.5킬로미터를 운전해서 가야 한다는 말이다. 그 주의 성향이나 인구에 따라 한국음식이나 물품은 커녕 아시안 마트도 겨우 찾을 수 있는 곳이 많다.

샌프란시스코에는 온갖 나라의 음식이나 물품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 한국, 일본, 중국, 남미, 동남아, 아프리카, 중동, 프랑스, 이탈리아, 북유럽 각국의 음식을 다 맛볼 수 있다. 우리 집은 걸어서 10분 거리에 마트가 3개, 카페가 5개, 베이커리가 3개, 음식점과 가게가 수도 없이 많다. 살기 편리하다.


음식점이나 가게 뿐만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는 공립 초등학교가 추첨제이고, 사립을 보내고 싶다면 따로 지원하면 된다. 주변에 이름만 들으면 아는 유명한 대학교들(UC 버클리, 스탠포드, UC샌프란시스코 메디컬스쿨), 저렴하지만 가성비 좋은 주립대학교들 (SF state, San Jose State, Sonoma State), 한국인에겐 유명하지 않지만 좋은 사립대, 퀄러티 좋은 CC(커뮤니티 컬리지) 등등 상황에 맞게 선택지가 많다. 샌프란시스코 거주자라면 City College에서 필요한 수업을 무료로 수강할 수도 있다.


주변에 해변, 산, 트래킹코스, 공원이 많아 산책하거나 주말에 훌쩍 간편히 떠나기도 좋다.


3. 공항 접근성과 한국직항

공항이 가까운 것은 생각보다 중요한 문제다. 미국은 국내선 이용 빈도가 높다. 한국에 있는 가족들을 만나기 위해 언제든지 날아갈 수 있다는 것도 더없이 중요하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주로 이용할 수 있는 공항은 샌프란시스코 공항(20-40분 거리)과 오클랜드 공항(30-50분거리) 두 개나 있고, 둘 다 국내나 해외 항공편이 잘 되어 있어 웬만한 곳은 다 직항으로 갈 수 있다. 여행이 길면 우버를 타고 가도 되고, 짧으면 차를 끌고 가서 세워도 되고. 정 안되면 바트라는 지하철을 타고 갈 수도 있다(오래 걸리고 노숙자가 있을 수 있지만). 지인이 방문할 때도 좋다. 공항에서 몇 시간 거리로 멀면 우버비용/차 렌트비용이 부담스럽고, 데리러 가기도 부담스럽다.



4. 눈총을 받는 일이 없다우

오만 곳에서 온 다양한 사람들이 살다보니, 아시아인이라고 해서 시선을 모으거나 눈총을 받는 일이 없다. 미국에 살면서 다양한 곳을 방문했는데, 종종 특정 인종이나 문화가 강한 곳에서는 영 불편한 경우가 많았다. 어디에서는 내가 동네의 3명중 1명의 아시아인인 경우도 있었고, 아이가 지나가다가 아시아인을 처음 본 듯 뚫어져라 쳐다보는 경우도 있었고, 나한테 조롱하는 듯한 투로 중국말을 하거나(중국사람이 중국말 시키는 것은 제외) 길거리에서 껄떡대는 경우도 있었다. 다 좀 잘 살고 살기 좋은 동네들이었으므로, 거기 계속 살아왔던 사람들에게는, 혹은 비슷한/같은 문화/인종의 사람들에게는 좋은 동네일 것이다. 글쎄, 여타 다른 조건들이 좋더라도 사람들이 나를 특이하게 대한다거나 혹은 특정 방식으로 나를 살도록 강요한다거나 하면 나는 거기서 살고싶지 않다. 샌프란시스코에서 나는 나대로, 다른사람들은 그 사람 방식대로 살고, 서로에게 불편을 주지 않으면 터치하지 않는다.



샌프란시스코의 마일드한 기후가 싫증난다면 살아보고 싶은 곳들은 많다. 뉴욕도, 보스턴도, 시카고도, 샌디에고도, 하와이도 좋고, 벤쿠버, 뉴질랜드, 싱가폴, 혹은 한국으로 다시 가는 것도 좋다. 다 각자의 좋은 점, 멋진 점이 많아 다 경험해보고 싶다. 노숙자는 벤쿠버에도, 파리에도, 서울역에도, 뉴욕에도, 플로리다에도 있었다. 어디라고 마약, 다양성의 부족, 인종차별, 빈부격차와 같은 문제가 아예 존재하지 않는 곳은 없다. 어느 동네나 위험하거나 조심해야 할 곳은 있고, 그런 곳은 잘 알아보고 피해 다니면 된다. 아직까지는 여기가 좋다. 부족한 것도 많지만, 그래도 나는 좋다.


나는 내가 사는 곳을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이 자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는 것도 좋다. 각자 내 주변에 있는 것들을 사랑이 담긴 눈으로 아껴주는 것이 가슴 뛸 만큼 부럽고, 왜인지 모르게 고맙고, 또 설레인다. 세상에 좋은 곳, 좋은 삶은 많고, 다 다른 모양과 색깔을 지니고 있다. 모두가 서로의 삶을 존중해 주었으면 좋겠다.



여기 내가 좋아하는 샌프란시스코 재즈 곡이 있다. 1961년 처음 공연한 Tony Bennett의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이라는 재즈곡. 아주 낭만적인 선율에, 샌프란시스코를 향한 애정이 가득한 가사. 듣고 있자면 차갑지만 부드러운 아침공기를 타고 샌프란시스코의 언덕을 오르내리며 날으는 느낌이 든다.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내 마음을 샌프란시스코에 두고 왔어요)
High on a hill, it calls to me
(높은 언덕, 나를 부르죠)
To be where little cable cars climb halfway to the stars
(작은 케이블카들이 별을 향해 오르는 곳으로)
The morning fog may chill the air, I don't care
(아침 안개가 공기를 싸늘하게 하지만, 나는 상관하지 않아요)
My love waits there in San Francisco
(내 사랑이 샌프란시스코에서 기다려요)
Above the blue and windy sea
(바람부는 푸르른 바다 위로)
When I come home to you, San Francisco
(내가 샌프란시스코, 나의 집, 당신에게로 갈 때)
Your golden sun will shine for me
(당신의 황금빛 해가 나를 위해 빛날 거에요)






나의 샌프란시스코는 내가 좋아하기 때문에 알록달록 아름답다.


당신에게 묻고싶다.


당신은 당신이 사는 곳을 사랑하시나요? 모든 것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 당신이 다정한 눈으로 바라볼 수 있는 곳이 있으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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