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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편. 나도 언젠가 누군가의 '벤'이 될 수 있을까

영화'인턴'에서 찾은 조용하지만 버티고 살아남을 희망

by 진우연LAB

앤 해서웨이 주연의 <인턴>은 가장 좋아하는 영화다.


특히 로버트 드 니로가 시니어인턴으로 연기한 '벤'.

말수 적고, 가식 없는 멋진 미소, 스타트업 회사에서

매일 정장을 입고 , 조용하지만 단단해 보이는 사람


주인공을 구원한 건 노련한 경험이나 반전이 아니라

그저 늘 같은 시간에 출근하고,

상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필요할 때 딱 한 마디 해주는 ‘그 사람’이었다.


그렇게 나이 들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앤’ 같은 상사면 더할 나위 없겠다는 상상도 덧붙여서.


말하지 않아도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사람.

힘든 누군가에게 ‘괜찮다’며 공기처럼 곁에 있는 사람.


‘이 나이’ 면 그만큼은 못돼도 과정에 있을 줄 알았다.

아직 벤의 나이만큼은 아니긴 해도,

그때 상상했던 ‘이 나이’가 되었건만

여전히 단단한 척, 무심한 척, 친절한 척.

오늘도 아닌 ‘척’하며 애쓰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누군가를 위로하고 지탱해 주기엔 지금의 나는

홀로 숨쉬기도 벅차다.'


회사는 꽤 오랫동안 힘들어 왔고,

예상은 항상 안 좋은 쪽으로 나아간다.


내 하루는 드라마가 아니다.

이젠 액션과 스릴러 장르가 돼버린 지 오래다.


매일 밤 잠들기가 힘들어 출근시간은 항상 다르고,

상대의 말을 다 듣기도 전에 내 할 말을 고민하고,

딱 필요한 한 마디보다 머릿속 단어들을 쏟아낸다.


순간에 집중하지 못하는 마음은 늘 아우성이다.

회사에선 집걱정. 집에선 회사걱정.


'난 나이 들수록 덜 단단해지고 있군. 누군가와 달리'


그때 불현듯 떠오른 그 영화의 기억.

그래서 스스로 다시 물어본다.


'언젠가는 누군가의 벤이 될 수 있을까.'


어느 날 누군가가 내 조용하고 차분한 뒷모습을 보고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해 줄까.


오늘에 맞는 옷을 고르는 정성을 보태고,

항상 같은 시간에 출근을 하고,


원두가 갈리고 커피가 추출되는 동안을 기다리고,

책상을 정리하고, 오늘 해내야 할 일을 직접 적는다.


여유를 갖고 듣고, 생각을 정리하고, 신중하게 답한다.

심지어는, 그런 차분함에 빠져있는 나의 표정까지

의식적으로 연출해 본다.


말은 좀 많아도 진심으로,

멋질 정도는 아니지만 자주 웃고,

슈트는 아니어도 구김 없이 단정하게.


일정한 규칙을 최대한 성실히 해나가고,

지금 내 자리에서 조용히 무너지지 않고 살아남는 것.


"그게 지금의 나에게 필요한 첫 번째 연기다."


언젠가, 정말 언젠가.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면

지금의 이 버팀도 조금은 의미 있었던 게 아닐까.





다음 이야기 :

일터에선 얼추 통해도, 집에서는 항상 NG.

그 불성실한 연기는 항상 잔소리로 돌아온다.


#진우연에세이 #영화 인턴 #중년감성 #버티기 #일상기록 #단단한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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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