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년 차 남편의 언젠가는 슬기로울 사랑의 궤변
“양말 좀 바로 벗어 둬.”
“물컵은 쓰고 제자리에 갖다 놓고. 쫌..”
“왜 또 전원 안 끄고 나왔어.”
말투와 톤은 바뀌지만 매일 비슷한 레퍼토리다.
나도 같은 대답을 약간씩 변주만 한다.
“알았어~”, “깜박했네.”, “아임쏘리~”
아내의 잔소리는 늘 짧고 빠르다.
그 말투엔 바쁨도 있고, 피곤함도 있다.
그리고, 애정도 있다.
처음엔 그걸 몰랐다.
잔소리는 단순한 불편의 표현이라고 생각했다.
시간이 만들어준 부수물이자
오래된 부부가 체험하는 진실의 방이랄까.
하지만 좀 더 깊게 해석하면 아내의 잔소리는 전부
‘당신이 내 영역에 여전히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정리하라는 말은
당신이 여기에 계속 있어도 좋다는 허락이고,
제발 좀 챙기라는 말은
그래도 여전히 당신을 챙기고 있다는 말이다.
잔소리는 애정의 음역대다.
낮고, 굵고, 종종 튄다.
그래서 귀에 걸리고, 그래서 오래 남는다.
하루 종일 잔소리가 없던 어느 주말.
나는 좀 이상했다. 불안했다.
'혹시 무슨 일 있나?' '몸이 안 좋은가?'
‘내가 뭔가 더 큰 잘못을 했나?'
‘최소한 난 기념일을 잊는 고전적 실수는 하지 않는다’
다시 물컵을 제자리에 놓고,
아이 양말까지 정리했다. 불도 잘 끄고 다녔다.
알고 보니 그냥 그런 날이었을 뿐이었지만,
나는 유난히 더 눈치를 봤다.
사랑은 잔소리 뒤에 숨어 있다.
그걸 모를 땐 괜히 예민하다고 느꼈고,
이젠 그게 ‘우리 대화’의 문고리라는 걸 안다.
사랑한다고 말하는 대신
“밥 좀 천천히 먹어. 나도 급해지잖아”라고 말한다.
아내의 말은 팩트 위에
‘당신이 내 삶에 아직도 중요하다'는 뜻도 얹혀 있다.
아직 나에게도 영향력이 있다고 해석해도 무방하다.
그 문고리를 잡고 우리는 새로운 대화로 들어간다.
여기서부터가 우리 부부의 진짜 영역이다.
솔직한 두려움은 말이 줄고 잔소리가 주는 데 있다.
차라리 귀찮은 게 낫다.
애정은 불편함을 감수하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
일부러 양말을 어지럽게 벗어둘 셈이다.
그녀가 날 여전히 귀찮아해 줘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며.
다음 이야기 :
아내와의 대화도 어렵지만, 세상과의 대화는 그 이상.
나는 여전히 로그인 중이다.
검색창 대신 프롬프트 앞에 있는 이 시대의 아저씨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