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공기는 선선하다. '오늘은 나의 첫 출근 날'
첫 출근날은 설레면서도 어색한 공기를 섞는 그런 것. 어디에 어떻게 서 있어야 할지. 고객님이 들어오면 뭐라고 먼저 말을 건네야 할지. 하나하나가 조심스러 웠다. 매장에 도착해서 유니폼을 입어보고 매장 안을 둘러보았다. "이제 이곳이 내가 일하는 공간이구나."
"어서 오세요, 언더아머입니다."
매장 문이 벌컥 열리고 오늘의 첫 번째 고객님이 찾아왔다. 박스를 핸들카에 가득이고 오신 행낭 기사님이다.
"안녕하세요~ 행낭이요!" 말없이 건네주신 박스는 무거웠다. 박스를 받으며 무심코 튀어나온 말 "겁나 무겁네" 목소리는 살짝 떨렸고, 기사님은 살짝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설레는 인사 한마디, 무게가 있는 박스 10개, 그것이 나의 첫 시작이었다.
기사님이 떠나고, 나는 조심스레 박스를 열었다. 가지런하게 담긴 운동화와 트레이닝복, 액세서리들. 이 박스들이 고객들의 시작점이 되고, 일상에서 운동이 중심으로 바뀌게 되겠지.
오늘 나는 언더아머의 직원이 되었고, 고객님들에게 운동복을 판매하는 사람이 되었다. 첫 출근 날, 박스와 함께 배달된 건 물건이 아니라 책임감이었다. 나는 다시 단단한 목소리로 연습하곤 했다.
처음 유니폼을 입고 매장 바닥에 선 순간에는 뭔가를 '팔아야 한다'는 생각에 긴장을 누추지 않았고, "나에게 말을 걸까 봐" "내가 실수를 할까 봐" 종일 눈치만 봤다.
고객들이 떠난 후, 흐트러진 옷들을 하나씩 다시 개고 정리하는 시간. 그곳엔 대화도 없었다. 하지만 나는 그 고요 속에서 작은 성취감을 느꼈다. 바지 한 장의 허리끈을 반듯이 정리하고, 티셔츠의 옷깃을 정리하다 보면 어느새 마음도 차분해진다.
그렇게 가지런히 정돈된 진열대는 다음 고객님을 맞이할 준비가 된 것이다. '일'이라는 단어가 내 일상에 들어온 건, 언더아머가 처음이었다. 운동 시작을 응원하고, 망설임을 함께 넘기고, 오늘을 정돈하는 일이었다.
나는 조금 더 진심으로 이 말을 꺼냈다. "어서 오세요, 언더아머입니다."
어느 날, 한 손에는 조거 팬츠 두 벌을 들고 사이즈를 고민하던 여자 고객님이 있었다. 나는 자연스럽게 "옷 입어 보실래요? 제가 도와드릴게요."라고 말하고 피팅룸 문을 열어드렸다. 피팅룸 문이 닫히고 안에서 들리는 옷이 부스럭 되는 소리가 들린다.
잠시 후 피팅룸 문이 열리고 조심스럽게 얼굴을 내밀며. "조금 커 보이지 않나요?" 나는 그녀의 체형에 어울릴 만한 사이즈가 작은 제품을 찾아 가져다 드렸다.
그날 그녀는 작은 사이즈의 조거팬츠를 선택했고 계산을 마친 뒤 나에게 "덕분에 잘 골랐어요. 사실 옷 고를 때마다 자신이 없었거든요." 그 말을 듣고, 피팅룸 앞에서 나는 불안함을 덜어준 멋진 어른이 된 것만 같았다.
계산 업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물건을 스캔하고, 가격을 확인하고, 멤버십을 묻는 일의 반복이었다. 하지만 반복되는 일 속에서도 그날의 마지막 계산이 기억에 남았다.
땀을 흘리면서 매장으로 들어온 한 남자 고객님, 기능성 티셔츠를 들고 계산대로 와서 "오늘 처음 운동 시작했어요."라는 말 한마디에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 시작을 언더아머와 함께 하네요."
서로 짧게 인사를 나누고, 이 한 마디에 긴장감이 풀리는 게 보였다. 비록 티셔츠 한 장이었지만 그 안에는 새로운 다짐이 나에게 까지 느껴진다. 나는 티셔츠를 쇼핑백에 담았다. 마치 고객님의 다짐이 구겨지지 않도록.
언더아머 첫 출근날, 나는 처음 보는 행낭 기사님을 반기고 흐트러진 옷들을 정리하고 고객님이 필요한 사이즈의 운동복을 판매하는 방법과 생각보다는 어렵지 않았던 계산 업무까지 배웠다.
의류매장에서 일하는 건 힘들다고는 하지만 힘든 것보다는 많이 피곤한 그런 하루였다.
나는 "고객님들의 첫걸음을 응원하는 사람이자 온라인 공홈에서 느끼지 못하는 오프라인 매장의 CCTV 같다." 간혹 다른 매장에서는 의류 분실물까지 있다고 한다. 진짜 CCTV잖아.
오늘도 언더아머 매장 안에서 고객님들의 새로운 루틴과 도전을, 그리고 변화를 위한, 첫걸음을 위한, 그 수많은 이야기를 응원하며 이 자리를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