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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May 29. 2023

신진대사, 분해, 그리고 불

(1) 우리가 음식을 먹어서 에너지를 만드는 신진대사를 화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음식물의 "탄소-수소의 연결 고리를 (산소와 결합시켜) 에너지와, 이산화 탄소, 그리고 물로 분해하는 것"입니다. (2) 미생물이 유기물을 분해하는 것을 화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탄소-수소의 연결 고리를 (산소와 결합시켜) 에너지와, 이산화 탄소, 그리고 물로 분해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3) 숲에서 불이 나는 과정을 화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탄소-수소의 연결 고리를 (산소와 결합시켜) 에너지와, 이산화 탄소, 그리고 물로 분해하는 것"입니다.   


뭔가 이상하시지요? 화학적인 관점에서 본다면 신진대사와, 미생물의 분해, 그리고 불이라는 것이 같은 반응이라는 것이 선뜻 납득하기 힘드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 세 가지 기작은 같은 것입니다. 이 세 과정의 유일한 차이점은 속도입니다. 실제로 동물은 신진대사 과정에서 이 속도를 줄이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합니다. 그만큼 많은 에너지를 낭비하기도 하죠. 사람이 섭취한 음식 중 25%의 에너지만을 사용한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MPG of a Human by Tom Murphy). 아깝게 느껴지시나요? 하지만 목숨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아이를 키워보신 분이라면, 아이가 열이 날 때 40이 마법의 수라는 것을 기억하실 겁니다. 저 같은 경우에도 아이의 열이 40 이하일 때는 타이레놀 정도의 약만 먹이면서 아이가 자연 치유될 때까지 기다리다가 40도가 넘으면 아이의 ‘이마’에 수건을 올려놓거나, 옷을 벗기거나 때로는 욕조의 차가운 물에 담그는 약간 극단적으로 보이는 방법을 사용해서라도 아이의 체온을 낮추었습니다. 이는 사람의 몸을 이루고 있는 단백질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단백질은 졸(sol)에서 겔(gel) 상태로 바뀌는 특성을 가지고 있는데, 이 과정은 가역성 반응이 아니기 때문에 한번 겔 상태로 바뀐 단백질은 졸상태로는 돌아오지 않습니다. 일상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예를 들어 드리면, 단백질로 이루어진 달걀은 액체상태(sol)에 있다가 온도로 가열되면 고채상태로(gel) 변하죠? 그리고 이 고채상태는 온도를 아무리 낮추어도 액체상태로 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변하기 시작하는 온도가 약 40도이죠. 뜨거운 온천이 40도가 넘으니 이런 이유로 온천물에 달걀을 담가 놓으시면 익게 되는 겁니다. 인간의 뇌는 단백질 덩어리이기 때문에 고온은 뇌에 큰  손상을 줄 수 있고, 이렇게 발생된 손상은 비가역적이기 때문에 뇌의 기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큰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신 분들 중 몇 분은, 어쩌면 37-38도 정도의 체온이 너무 무섭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습니다. 위험한 40도에서 겨우 2-3도 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니까요. 하지만 여기에는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습니다. 체온이 너무 낮으면 이러한 신진대사를 활성화시키는데 너무 많은 에너지가 필요하게 되는데, 이미 25%라는 낮은 효율을 가진 인체로서는 이 효율을 너무 낮게 유지시키는 것은 위험이 따르는 것이죠. 음식이라는 것이 원시시대에는 늘 있었던 것이 아니니, 몇십 퍼센센트 이상의 음식을 먹어야 몸의 기능이 유지되는 것은 생존이 달린 일일 수도 있는 것이니까요. 그 결과로 인체는 37도 정도의 체온을 유지하는 것입니다. 또한 평소에도 머리카락이나 땀 등의 기작을 이용해서 뇌를 보호하게 되는 것이고요. 그러니 몸 안에서 불이 나고 있으니, 이 온도를 40도 아래로 낮추고자 이 반응의 속도를 늦추어야 하고, 그리고 생명의 유지를 위해서 반응의 속도는 늦추는데 어쩔 수 없이 매우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입니다. 




혹시 열대우림이 지구의 허파로서 다량의 산소를 발생해서 지구의 생명체들에게 매우 중요한 곳이라는 얘기를 들어보신 적이 있나요? 전 이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고개를 갸우뚱합니다. 아마도 이 이야기는 아마존의 열대우림이 수분도 많고 받는 태양에너지도 높아 광합성을 많이 한다는 사실을 기반으로 이 비유를 쓰는 것 같은데요. 하지만 허파라는 곳이 산소를 호흡하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기관인데 광합성을 통해서 이산화탄소를 고정하고 ‘산소를 배출’하는 설명을 하면서 허파에 비유한 것은 어쩐지 어색한 생각이 듭니다. 하지만 제가 더 이상하게 느끼는 것은 아마존 우림들이 많은 산소를 생산한다고 말하는 신문기사들입니다. 단순히 광합성 양을 계산하면 지상 전체식물의 광합성 중 20% 정도의 광합성이 이곳에서 일어나고  있으니 아마존이 많은 산소를 생산한다는 주장이 일견 맞아 보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마존의 높은 습도와 온도는 ‘분해자’들에게도 좋은 환경을 만들어 주어, 이 생산량만큼의 유기물이 분해가 됩니다 (기억하시죠? 분해는 유기물과 산소를 이용해서, 에너지, 이산화 탄소, 그리고 물을 생산합니다). 그러니 이 열대 우림의 실제 산소의 생산량은 0 근처에 머무르는 것이죠. 저는 이 열대우림을 소비성향의 부자아빠에 비유하곤 합니다. 많은 돈을 벌고 또 계속 그렇게 벌 수 있기 때문에 번 모든 돈을 늘 다 사용해 버리는 것이죠. 


이와는 반대로 저는 냉대림(boreal forest)을 구두쇠 아빠에 비유합니다. 돈을 많이 벌지는 못하지만 그 돈을 차곡차곡 쌓아서 집에는 모아놓은 돈이 많은 아빠입니다. 그러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실재 탄소 축적량에 있어서는 냉대림이 열대 우림보다 더 많은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나무 안에 축적된 양이 작을지라도 그 임상과 토양 속에 많은 탄소가 '저축'되어 있는 것이죠. 그런데 옛말에 과유불급이라고 했듯이 뭐든지 많으면 탈이 나는 법입니다. 잔에 물을 계속 부으면 물이 넘치 듯, 이렇게 계속해서 탄소가 쌓이면 생태계도 탈이 나는 법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온도가 낮은 곳에서는 온도와 습도에 많이 의지하는 분해자들도 많은 양을 분해하기가 어렵습니다 (역주: 그래서 이런 곳에서는 눈 밑에 사는 미생물의 존재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내용은 이전 글 “눈을 이불 삼아..”를 참고해 주세요). 


(Source: https://www.chemistrylearner.com/chemical-reactions/combustion-reaction

신진대사, 분해, 그리고 연소의 과정을 나타내면 이 그림과 같습니다) 


제가 이글의 맨 처음에 했던 말 기억하세요? 대사과정과 분해 그리고 불이 같은 기작이라고 말씀드렸죠? 그렇습니다. 분해라는 자연의 기작으로 탄소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열대우림과는 다르게, 과도하게 쌓인 탄소를 소화(?)할 수 없는 냉대림은 결국은 불이라는 조금은 폭력적 이어 보이는 기작을 이용하게 되는 것입니다. 안전한 수준으로 좀 더 빨리 단시간 내에 내려가게 할 수 있는 ‘치트키’ 같은 것이죠. 그러다 보니 냉대림은 주기적으로 불이 나게 되고, 또 이 불들에 적응한 식물들이 이 숲에서 살아남게 된 것이죠. 한국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헐벗고 굶주린 산에는 불이 살 수 없다가, 이제 녹화가 되고 탄소가 쌓이면서 자연스럽게 불도 돌아온 것입니다. 고려나 조선시대의 기록을 봐도, 산불에 대한 기록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일제 수탈과 6.25 전쟁을 겪고 한국에 100여 년 만에 돌아온 산불을 너무 미워하지는 말아 주세요. 산불은 단지 산불이 할 일을 하고 있는 것이랍니다. 산불이 없던 산에 들어온 숲도, 산불을 경험한 적이 없는 사람들도 산불에 적응할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이 과정을 잘 이해하고, 새로운 평형을 찾는 것을 도와주어야만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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