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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무사랑 Mar 13. 2024

캐나다가 추워요?

알버타주의 겨울

제가 미국에서 맨 처음 살게 된 곳이 위스콘신이었습니다. 그리고 이곳에서 잠 많은 경험을 했습니다. 특히 제가 외국에 나와서 처음으로 살게 된 곳이라 많은 문화적 충격을 받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곳에서 가장 큰 충격을 받았던 것 중 하나는 겨울의 추위였습니다. 이곳에 살면서 아침에 일어나면 먼저 하는 것이 그날의 일기 예보를 확인하는 것이었습니다. 워낙 변화무쌍한 날씨라 일기예보를 보지 않으면 생활이 힘들었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날은 아침에 영하 30도로 하루를 시작해서, 오전에 눈이 오고, 오후에는 날씨가 영상으로 바뀌면서 그 눈이 진눈깨비에서 비로 바뀌다가 저녁에는 개는 날씨였습니다. 그날 하루의 일교차가 40도가 넘어가는 것을 보고 황당한 마음이 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그날 학교에 갈 때, 허탈한 웃음과 함께, 영하 30도에 입을 두꺼운 겨울 잠바와 모자 3개와 함께, 오후에 입을 봄가을 옷, 그리고 우산까지 챙겨갔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영하 40도 이하로 떨어지는 날에는 눈을 감을 때마다 눈썹이 서로 얼어붙는 신기한 경험과, 쉼쉴 때마다 제 폐의 위치를 알게 되는 놀라운 경험을 한 기억도 있습니다. 그리고 그해는 유난히 추운 겨울이어서, 한 달 동안 매일 최저기온이 영하 30도였었습니다. 한달동안 일기예보를 보면서 당일의 최저 기온을 그대로인채 최고기온만 바뀌는 것에 놀랐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또 하나의 문화충격은 이러한 곳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의 온도 감각이었습니다. 영하 5도 정도의 날씨에 봄가을에 입는 얇은 잠바를 입고 다니는 학생들도 많이 있었고, 영상 5도에 수영복만 입고 선텐을 하는 학생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온도 감각의 차이는 살아가는 공간에서도 드러났습니다. 같이 지내던 룸메이트가 미네소타에서 태어나서 자란 친구였는데, 그 친구의 말에 의하면 저희가 사는 곳은 너무 더워서 (?) 힘들다고 하더군요. 실내 온도를 18도에 맞추어 두려는 저와, 14도에 맞추어 두려는 친구의 의지, 그리고 추워서 창문을 닫으려는 저의 노력과 매일매일 방 창문과 방문을 활짝 열어서 환기를 시키는 친구의 노력이 매일 충돌하는 나날이었습니다. 결국 친구의 창문은 열고 방문은 닫는 것으로 합의를 보았습니다.

 

이렇게 미국의 중서부(지도상은 분명히 북동부이지만 미국에서는 중서부라고 부릅니다)에서 학위를 마치고 박사 후 과정을 위해서 미국의 남동부로 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곳은 남부라서 겨울에도 영하로 내려가는 경우가 작고, 눈이 내리더라도 땅에 닿는 즉시 녹아버리는 곳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아이가 유치원을 다니게 되었는데, 저희는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학교에서 '경고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영상 10도 정도의 날씨라 아이에게 가을 잠바를 입혀서 보냈는데, 학교에서는 '추운' 날씨에 아이에게 제대로 옷도 입히지 않고 아이를 학교에 보내는 '아동학대 부모'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중서부에서 지내던 저희에게는 10도는 따뜻하고 온화한 날씨였지만, 이곳의 선생님들에게 추운 날씨로 인식되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해 겨울 저희는 영상 5도의 날씨에 '너무 추워서' 사람들이 얼어 죽는 뉴스를 접하게 됩니다. 당시로서는 상당히 충격적인 뉴스였습니다. 영상의 날씨에 얼어 죽는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고 있었거든요.


하지만 머리를 한번 흔들어 정신을 맑게 하고 생각해 보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모든 생물들은 "순화 (acclimation)"라는 놀라운 과정을 갖고 있습니다. 어떠한 온도에 적응하는 과정을 말하고, 이는 비교적 점진적으로 일어나는 과정입니다. 이러한 순화의 결과로 나무들은 영하 40도 이하의 온도에서도 얼어 죽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추위를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는 것이죠. 하지만 이러한 일반적인 순화의 과정과 역행하는 경우 상해를 입기도 합니다. 그 좋은 예가 늦서리입니다. 이미 순화를 통한 겨울잠에서 깨어난 식물은 추위를 맞을 준비가 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갑자기 찾아온 영하의 날씨를 맞아 얼어 죽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주제와는 조금 동떨어진 이야기지만) 지구 기상 변화는 이렇게 예기치 못한 동해의 빈도를 더 높이고 예측하기를 어렵게 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고, 단순히 '지구 온난화'라는 말처럼 온도를 올리는 것의 문제가 아니라 불규칙성을 높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라고 이전의 글에서 누차 설명을 드린 것입니다.


어쨌든, 이곳에서 저희 가족은 추위를 못 느끼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대신 다른 사람에 비해서 더위는 더 잘 느끼는 가족이었죠. 하지만 놀라운 순화의 결과로 몇 년 후에는 영상 5도에도 겨울 패딩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로 바뀌었습니다.




서론이 좀 길었네요. 죄송합니다.


본론으로 돌아와서, 캐나다로 이사를 오고 나서 많은 분들이 걱정을 해 주셨습니다. 너무 춥지 않겠냐고, 그렇게 추운 곳에서 어떻게 사냐고 말이죠. 실제로 여기가 북위 53.5도이니 참 위도가 높은 도시인 것은 맞습니다 (참고로 추운 곳으로 알려진 하얼빈의 위도가 겨우 45.7도밖에 안됩니다). 제가 알기로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도시 중, 제가 살고 있는 곳의 위도가 가장 높은 것으로 알고 있으니, 다른 분들의 걱정은 일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우습게도 저에게는 이곳의 겨울이 한국 서울의 겨울보다 더 따뜻하게 느껴집니다. 일이 있어서 한국에 겨울에 방문할 때마다 추워서 발을 동동 굴렀던 생각이 납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이 드시죠? 그 이유를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한국에서 사회나 지리시간에 '높새바람'에 대해서 한 번쯤은 다들 들어 보셨을 것입니다. 잘 알고 계신 대로 푄 현상에 의해서 한국에서 늦봄부터 초여름까지 동해안에서 태백산맥을 넘어서 서쪽 사면으로 부는 바람을 말하는 것이죠. 이러한 바람은 건조하고 따뜻합니다. 제가 사는 곳은 이 바람을 시눅(Chinook)이라고 부르는데 이는 이곳의 원주민 말로 눈을 먹는 (snow eater)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말 그대로 이 바람이 부는 동안은 따뜻하고 건조해서 눈이 녹아버립니다. 구름 한 점 없는 파아란 하늘을 만끽할 수 있죠. 아마도 시눅이 구름들을 밀어내서 하늘에 구름과 파아란 하늘이 명확한 경계선을 이루는 그림이나 사진을 여러 번 보셨을 것이라고 믿습니다. 이러한 푄 현상은 산이 100m 높을 때마다 공기의 온도를 약 0.5도씩 높이는데, 브리티시 콜럼비아주와 앨버타주의 경계를 가르는 로키산맥이 보통 3,000-4,000m 정도이니 로키는 넘어오는 바람은 원래보다 15-20도 정도 온도가 높아지게 됩니다. 원래 난류의 영향으로 위도에 비해서 따뜻한 바람인데 이러한 바람이 더 따뜻해지다 보니 앨버타가 위도에 비해서 따뜻한 온도를 갖게 되고 또 그에 따라서 많은 농작물이 생산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일본의 삿포로 맥주를 만드는 보리는 전량 앨버타에서 생산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이렇게 따뜻하고 건조한 바람이 불기 때문에 브리티시 콜럼비아주에서는 남부 프랑스에서나 자랄 것 같은 포도가 잘 자라고 그에 따라서 많은 포도주 양조장들이 존재합니다.


겨울 동안 앨버타에 부는 바람의 약 70% 정도는 이 시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각보다 비교적 따뜻한 날들이 많이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나머지 30% 정도의 날에는 바람이 북쪽에서 붑니다. 차갑고 습한 북풍이 부는 날은 이곳에 사는 사람들이 높은 위도에 놓여있는 도시에서 사는 맛을 단단히 보는 날들이 됩니다. 다행히도 실제로 영하 30도 이하로 내려가는 날은 일 년에 약 1주일 정도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추운 날은 벽난로를 피우고 집에서 나가지 않는 것이 상책이죠.


그리고 이곳의 날씨가 춥게 느껴지지 않는 것에는 몇 가지 이유가 더 있습니다. 우선 비교적 추운 지방이다 보니 거의 모든 것이 실내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전철에서 내려서 지하도나 지상의 보행로 (pedway)를 통해서 움직이기 때문에 추위를 느낄 일이 별로 없습니다. 또한 많은 경우 자가용을 타고 움직이기 때문에 걷는 거리가 짧습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여기는 건조합니다. 열이 가진 본연의 성질대로, 온도를 빼앗기기 위해서는 접촉이 있어야 하는데 공기 중에 수분이 작기 때문에 쉽게 추워지지 않습니다. 그리고 추워도 한국처럼 (습기 때문에) 뼈를 아리게 하는 그런 추위는 매우 드뭅니다. 그래서 겨울에 오로라가 보이는 이렇게 높은 위도의 도시에 살면서도 한국의 추위를 무서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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