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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May 21. 2024

백수의 눈으로 직업을 다시 보다




백수가 되고 처음 걸어본 출근길


백수가 되고 출근시간에 밖에 나간 적이 있었다.

도로엔 출근하는 차들로 분주했고, 비즈니스 캐주얼과 정장 차림의 사람들은 일제히 한 방향을 향했다.

그렇게 건물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사람들을 거스르며 나 혼자 다른 방향으로 걸어갔다.



순간 기분이 이상했다.

처음엔 저 좀비 같은 행렬에 합세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혼자 살아남은 것 같은 안도가 느껴졌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나만 다른 길로 가고 있다는 불안함이 옅게 자리를 잡았다.


남들 일하는 시간에 집에서 혼자 멍하니 보내는 날이 늘어가면서  

돈을 받고 제공할만한 어떤 능력도 내겐 없다는 절망감과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것 같다는 좌절감이 쌓여갔다.

불안과 좌절은 무력감으로 이어졌고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묵직해지며 나를 옥죄었다.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이유


무기력의 원인을 가만히 들여다보았다.


나는 남과는 다른 길을 걷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있었다.

혼자 반대방향을 바라보며 멈춰있는 불확실한 내 현재에 대한 불신이 컸다.


게다가 나는 직업에 귀천이 있다고 생각하며 직업으로 남을 평가하고 있었다.


사람은 내가 생각하는 것처럼 남들도 그럴 거라고 확신한다.

직업으로 남들에게 하찮게 취급받을 까봐 어떤 것도 하지 못하는 마음이 나를 무기력하게 했다.

나는 내 기준에서 귀해지기 위해 좋은 직업이 갖고 싶었고, 그러지 못하는 현실을 마주한 순간 두려움과 함께 엄청난 무력감을 느끼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남에 대한 평가를 내려놓으니 찾아온 편안함


사람이 많지 않은 늦은 저녁에 편의점에 들렀는데 물류상하차를 하시는 분이 분주하게 물건을 나르고 계셨다.

밤까지 일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았다.

상가는 계속 영업을 하고 있었고 배달 오토바이가 바쁘게 다녔다.


그들을 보니 야근하던 직장인 시절이 생각나면서 그 수고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과거의 나와 같은 누군가가 늦게까지 일을 하기에 지금의 내가 늦은 시간에 필요한 물건을 구매할 수 있었다.

내가 힘들어 쉬고 있는 순간에도 열심히 일하는 누군가의 노고 덕분에 불편함 없이 많은 것을 누릴 수 있었다.


내게 전해진 타인의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감사를 넘어 경이로움과 존경심마저 들었다.

이제 더 이상은 직업으로 남을 함부로 평가하지 않았다.

그러자 나를 옥죄던 불신과 무기력이 느슨해지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직업에 대한 생각이 바뀌면서 남에 대한 평가를 내려놓으니 편안해지는 건 바로 나 자신이었다.



오늘도 변함없이 출근하는 누군가가 있어 세상은 잘 돌아가고 있다.

이것은 세상에 일조하는 모든 직업은 소중하기에 내가 어떤 일을 해도 괜찮다는 의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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