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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놀마드 노을 Jun 04. 2024

나를 살려준 어릴 적 친구, 글쓰기




내 소꿉친구, 글쓰기


어릴 때 처음 그림일기숙제를 받았는데 하루에 7개를 쓰고 혼자 뿌듯해했던 기억이 있다.

엄마가 하루에 한 개만 쓰는 거라고 일러주시는 말씀이 믿기지가 않았다.

하루에 있었던 일이 여러 개인데 어떻게 한 개만 써? 쓸게 너무 많아!라고 대답하며 시무룩해했다.


중학생이 되면서는 한 아이돌가수를 좋아하면서 팬픽이라 불리는 팬소설을 자주 읽었고, 평범한 여학생이 드래곤이 된다는 내용의 판타지소설을 좋아했다.

시골 소녀에게 팬픽과 판타지소설은 달콤한 대리만족이자 환상적인 일탈이었다.


글은 내 마음을 그려내는 가장 친근한 도구였고, 나를 위로해 주는 믿음직한 친구였다.


당시 내 일기를 보신 담임선생님께서 일기는 하루에 한 개만 쓰는 거라고 재차 알려주셨던 기억이 난다ㅎㅎ






어릴 적 애착인형 버리듯 잊어버렸다


그러다가 인문계고등학교 진학에 대한 압박감을 느끼면서 국영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소설 대신 문제집을 넘기는 시간이 늘어갔다.

내가 좋아하던 소설과 글쓰기는 세상 쓸데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혜나 즐거움보다는 줄 세우기에 명확한 기준이 되는 점수와 등수로 나의 가치가 결정됐다. 


직장인이 되고 내가 주로 썼던 글은 사내 보고서와 요청서였다.

글쓰기는 먹고살기 위해 해야 하는 지긋지긋한 일거리에 불과했다.

어릴 때 아끼던 애착인형을 헌 옷수거함에 버렸던 것처럼 나 자신을 위한 글쓰기는 잊은 지 오래였다.

둘도 없이 친하게 지냈지만 어느 순간 멀어지면서 얼굴과 이름도 흐릿한 학교동창 같은 존재가 되어있었다.






나를 살려준 글쓰기


나는 퇴사를 준비하면서 블로그를 시작했고, 나만의 글을 조금씩 쓰게 되었다.

퇴사 이후에는 브런치도 시작했다.


퇴사 후 소속감을 잃고 불안하고 무기력했던 나를 지킬 수 있게 도와준 건 어릴 적 친구, 글쓰기였다.

나의 옛 친구는 여전히 너그럽고 다정했다.

글쓰기는 내가 갖고 있는 나만의 이야기를 펼칠 수 있도록 항상 열려있었다.


생존신고하듯 꾸준히 올린 글 덕분에 내가 살아있음을 느낄 수 있었고, 무언가에 애정과 에너지를 쏟을 수 있다는 사실에 힘이 났다. 



전혀 와본 적 없는 낯선 곳에서 내가 쉴 수 있는 작은 방 한 칸을 얻은 것처럼 든든하고 안도가 됐다.

기쁘고 즐거운 기억을 보관할 수 있는 방법이자, 살면서 마주하는 낯설고 어려운 순간에 나를 잡아줄 동반자인 글쓰기가 있기에 용기가 생긴다. 


나를 살려준 내 오랜 친구가 정말 고맙고, 또 고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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