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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Jun 10. 2023

밤 열한 시 사십 분에 마시는 커피

시간을 잊고 사는 엄마

   엄마를 팔기로 작정한 게 언제였는지 정확하게 기억은 안 나지만 울긋불긋 꽃들이 화려하게 얼굴을 치장하고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 5년 전 봄, 아버지 기일부터라고 생각한다.

 그날 엄마는 아버지를 모신 납골 공원 입구에 들어서면서부터 즐비하게 늘어선 꽃송이들에 감탄을 자아내느라 바빴다. “어머나 어쩌면 저렇게 이쁘냐!” “아이고 곱기도 해라!” “여기가 어딘데 이렇게 꽃들이 많으냐?” 


“엄마는 아버지 보러 와서 좋은가 보네” 

가만히 엄마 손을 잡으며 불안한 내 마음을 확인하듯 물었을 때, 

“으응? 어디라고?” 

화들짝 놀라던 엄마를 보면서 가슴속에 바람이 불던 그날, 바로 그날부터 나는 ‘엄마를 팔아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일상이 깨지는 순간, 바로 그 순간이 사건이고 그 사건이 글감이다.” 

예전에 어느 작가에게 들었던 말이 자꾸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그리고 나는 엄마를 보면서 생각했다. 

‘이 사건을 어떻게 글로 쓸까?’

 엄마를 소재로 글을 쓰기 시작했다. 더 정확하게는 엄마의 치매가 나의 글감이다. 하루하루가 사건의 연속이다. 밥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기억하지 못하는 엄마가 “며칠 굶었다.”라고 한다. 그럼 나는 노트북을 펼친다. 누군가 만나자고 해서 종일 신호등 앞에서 ‘기다렸다’는 엄마를 경찰서에서 연락받고 모셔온 날도 눈물이 범벅된 얼굴로 노트북 속으로 엄마를 밀어 넣었다. 밤늦도록 TV 속 사람들이 “집에 안 간다.”라고 푸념을 하는 엄마. 나는 또 노트북을 연다. 엄마의 모든 상황이 고스란히 나의 글 속으로 들어와 노트북 안에 차곡차곡 쌓였다. 


 엄마가 준 DNA로 엄마를 팔려고 마음먹은 날부터 엄마의 치매는 더 이상 내게 가슴 아픈 일이 아니었다. 팔십 평생 자신보다 자식을 위했던 일상의 삶에서 일탈한 엄마의 귀여운 사건의 연속일 뿐이다. 거짓말이라곤 모르고 살던 엄마가 개수대 안에 빈 밥그릇을 넣어두고 ‘종일 굶었다’는 거짓말을 천연덕스럽게 한다. 남의 흉이라면 듣지도 않던 엄마가 넌지시 올케 험담을 한다. ‘나쁜 사람’이 최고로 심한 욕인 줄 알던 엄마가 아라비아 숫자가 섞인 욕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곤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커피 마실래?” 묻는다. 밤 열 한시 사십 분에.


꺼져가는 엄마의 기억, 누군가를 사랑했었는지도 이젠 잊고 사는 엄마, 우리를 사랑했던 기억마저도 잊고, 봄, 여름, 가을, 겨울, 계절 따라 엄마는 내게서 점점 멀어질 테지만, 나는 꾸역꾸역 엄마를 내 글 속으로 끌어들인다.  기억을 차츰 지워가는 엄마를 팔면서.


오늘은 또 엄마가 어떤 글감을 내게 주려나? 기대되는 토요일이다. '종일 굶었다' '커피 한 잔도 안 마셨다'는 뻔한 거짓말을 대여섯 번은 듣겠지? 아니면 또 유명 연예인 중 누군가가 찾아와 늦도록 안 가서 애먹었다고 하소연할 수도....

그렇게 한나절 보내고 초저녁에 잠들었다 깨어난 엄마가 "커피 마실래?" 묻고는 나의 대답은 듣지도 않고 커다란 머그잔에 진하게 타준 커피를 보약인 듯 앞에 놓고  나는 또 한 줄 글을 쓰겠지.

첫 문장을 어떻게 시작할까? 엄마집으로 가는 길에 고민 좀 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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