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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Sep 22. 2023

엄마의 4차원 유전자

남들은 모르는 엄마의 세계

봄비는 초록색이야. 

사월의 비를 맞은 나무들이 자꾸자꾸 초록색으로 바뀌는 걸 보면.

가을비는 붉은색이지.

가을 나무들이 울긋불긋한 옷으로 갈아입는 걸 보면.


누군가 이 글을 읽는다면 이런 생각을 할 것이다.

'그럴둣한 시군!'


만약에 엄마가 '봄비는 초록색이고, 가을비는 붉은색이야.'라고 한다면,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겠지?

'치매가 틀림없군!'

그러면 나는 이렇게 말해줘야겠다.

"우리 엄마는 당신들이 모르는 정신세계의 소유자예요."라고.


“언니, 나는 서른 살 되는 해에 죽을 거야.”

“야, 말 같지 않은 소리 하지도 마!”

“아니야, 내가 아무리 고상하게 살아도 서른 살 넘어가면 분명히 나도 과장님이나 부장님처럼 꼰대노릇 할 텐데  나는 그렇게 살기 싫어.”

“내가 항상 느끼는 건데 너는 어째 정신 연령이 나이를 못 따라가니? 4차원이 따로 없다.”

스무 살 갓 넘어 들어간 회사에서 알게 된 선배 언니와 저녁을 먹으며 주고받은 말이다.


 ‘4차원’이란 소리가  그 당시에 나를 발끈하게 했지만 살아보니 4차원이란, 오묘한 나의 정신세계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시인하는 말 같아서 그리 나쁘지 않다.

 사람들은 가끔 이런 말을 한다. 

“단순하게 생각하지 말고, 입체적으로, 관점을 바꿔서, 고차원적으로. 생각하라”라고 하면서,

4차원이면 꽤 고차원인데, 또 4차원적인 생각은 ‘개가 풀 뜯어먹는 소리’라고 하니 참! 이상하다.     


 고등학교 다닐 때, 버스가 다리 아래로 떨어져 여러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큰 사고가 있었다.

 그날 아침 나는 꼼지락거리다 엄마에게 야단맞고 집을 나섰다, 학교에 가면 밀린 수업료 독촉을 받아야 할 걱정으로 학교 가는 게 싫어서 핑곗거리를 찾다 야단을 맞았지만 엄마에겐 말할 수 없는 일이었다. 엄마라고 별 수 있나? 없는 돈이 하루 밤 사이에 생길 리도 없는데.

 터덜터덜 걷다 보니 눈앞에서 버스를 놓쳤다. ‘에라 모르겠다.’하는 마음으로 다음 버스를 탔다. 버스 안에서도 ‘어떻게 하면 학교에 안 갈 수 있을까?’하는 생각으로 머릿속이 복잡했다. 기어이 ‘차 사고라고 났으면...’하는 마음까지 들었다.


 얼마쯤 가다 달리던 버스가 멈추고, 기사님이 뛰어 내려가고 차창 밖을 보던 사람들이 저마다 한 마디씩 했다.

“아이고, 저걸 어째.. 쯧쯧” 

“세상에나...!”

후다닥 밖으로 나가는 학생들을 따라 엉겁결에 나도 내렸다.

 학교 가는 도중에 15~20미터 정도 길이의 다리를 건너야 하는데, 그 다리 아래로 버스가 떨어져 반쯤 물에 잠겨 있었다. 가방에서 빠져나온 책들이 물 위에 떠 있고,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학생들, 둥둥 떠다니는 남학생 모자 등등. 참혹한 광경이었다.

그 버스를 놓치면 지각이기 때문에 죽기 살기로 올라탄 학생들이 많아서 사망자와 부상자는 대부분 학생이었다.


 바로 내가 눈앞에서 놓친 버스라는 사실에 머리카락이 따끔거리며 곤두서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조금 전까지 ‘차 사고’를 바라던 나였지만 막상 사고 현장을 보니 무서운 마음뿐이었다. 

 버스에서 내린 사람들이 움직일 수 있는 부상자나 물가로 떠밀려 온 책가방과 소지품들을 건져 올렸다. 경찰차가 오고 구급차가 오면서 우리는 구조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다른 버스를 타고 그 자리를 벗어났다.     


 학교 안은 온통 난리가 났다. 사고 소식을 들은 부모들이 자신의 아이가 무사한지 확인하러 학교에 오는 바람에 오전 수업은 맥이 자주 끊겼다.

 혹시라도 사고자 중에 자신의 아이가 포함되어 있을까 봐 졸이던 마음으로 교실을 찾은 부모들이 무사한 아이를 끌어안고 반가움과 안도의 눈물을 흘리는 통에 이 교실, 저 교실에서 울음소리가 끊이질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선 사고지역에서 버스로 오는 학생이 공교롭게도 나 혼자뿐이었다.

내가 늦게 교실에 들어서자 사고 소식을 듣고 걱정하던 친구들과 선생님께서 반갑게 맞아 주었다. 선생님과 친구들의 환대에 무섭고 떨리던 마음이 서서히 사그라들었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질 무렵 수업 분위기는 흐지부지 상태가 되었다. 사고당한 학생들 명단이 확인되면서 선생님들이 모두 교무실에 모여 있는 상황이라 자습 시간이 이어지고 있었다.


 학교로 헐레벌떡 왔던 부모들이 모두 돌아가고 이제는 더 이상 학교에 올 사람이 없을 것이라 여기고 있을 때, 우리 반 교실 뒷문이 드르륵 열렸다.

 그때까지도 나는 사고 상황을 바로 눈앞에서 목격한 것처럼 과장해서 친구들에게 이야기하다가 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활짝 열린 뒷문을 붙잡고 서 있는 사람은 엄마였다.!

아침에 나를 야단치던 야무진 얼굴이 아니라, 얼마나 애를 태웠는지 반쪽이 된 엄마 얼굴은 마치 소금에 절여져 쪼그라든 오이지 같았다. 그런 얼굴로 엄마가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나는 친구들에게 사고 소식을 떠벌이면서도 속으론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 살아 있다.’고 엄마에게 알려주고 싶었다. 다른 반 친구들이 엄마를 붙잡고 호들갑 떨고 눈물을 흘릴 때, 나는 부러움의 눈물을 삼키고 있었다.

‘엄마는 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일하러 갔겠네?’하는 생각으로 교실 안에 있으면서도 마음은 벌써 운동장을 지나 교문 앞을 몇 번씩 다녀왔다.


“엄마!” 기다리던 엄마를 보자 참았던 눈물이 쏟아졌지만, 다른 친구들처럼 엄마에게 달려가 안기며 울고불고하는 성격은 못 되는지라 슬그머니 엄마한테 다가갔다.

“나 괜찮은데... 어떻게 왔어?‘

그 말속엔 ’ 뭐 하러 이제 와? 일은 어떻게 하고 왔어?‘라는 원망과 응석이 섞여 있었다.

엄마는 내 손을 붙잡고 몸 여기저기를 어루만지더니,

”이거 갖다 내고 와 “

흰 편지 봉투를 내 손에 건네주며, 겨우 한마디 했다.

”이게 뭔데? “

”수업료“

아, 정말 엄마는 나를 너무 슬프게 만들었다.

”나 죽었으면 어떡할라구 이걸 가져왔어? “

”배운 거는 내야지. 괜찮은 거 봤으니까 엄마는 간다. 그건 니가 갖다 내. “


 사람들의 뒷모습은 왜 그렇게 모두 슬퍼 보이는지, 특히 부모의 뒷모습은 더 그렇다.

눈물 고인 눈에 뿌옇게 들어오는 엄마의 뒷모습을 보면서 나는 그 자리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싶었지만, 나도 돌아서 서무실을 향해 걸었다.     

 엄마는 그 시간에 버스를 탄 내가 정말 죽었다고 생각했단다. 그래서 다른 엄마들이 앞다투어 학교로 들이닥칠 때 엄마는 나의 밀린 수업료를 빌리러 온 동네를 돌아다녔다고 한다.

이승에 빚을 남기고 가면 딸내미 마음이 무거울까 봐.


 다른 사람들은 어쩌다 그 당시 얘기를 하면 이상하다고 한다.

“딸이 죽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수업료 생각을 어떻게 하지?”라며.

 그런데 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생각하지 않는 엄마가 좋다. 남들은 이해할 수 없는 정신세계를 엄마는 가지고 있는 게 틀림없기 때문이다. 지금의 엄마를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런 엄마의 딸이라 나도 4차원인 건 당연하다. 가끔 나에게 '누구요?'라며 의심의 눈초리를 보내는 엄마가 귀엽게 느껴지니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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