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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경원 Jun 08. 2023

이게 뭐냐?

그립고, 그리운 시간!

“엄마 이게 뭐야? 이거 어디다 쓰려고 이렇게 모았어?”

냉장고 안에서 차곡차곡 접힌 비닐봉지와 라면 봉투들을 발견하곤 엄마에게 물었다. 엄마는 말없이 비닐봉지 뭉치를 내 손에서 가져가 이번엔 싱크대 서랍 안쪽에 깊숙이 넣고 방으로 들어간다. 엄마를 따라 방으로 들어가 TV 앞에 앉는 엄마 등을 보다가 라면 봉투에 얽힌 추억이 떠올랐다.     


 초등학교 2학년 때 학교에서 채변봉투를 받아 왔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예전엔 봄, 가을이면 학교에서 변 검사를 했다. 그리곤 그 결과에 따라 아이들에게 구충약을 나눠 주었다.


“엄마, 선생님이 여기다 똥 담아 오래.”

집에 오자마자 나는 가방에서 손바닥 반 크기의 비닐봉지를 꺼내 엄마에게 내밀었다.

“아니, 이렇게 작은 봉투에 어떻게 똥을 담아?”

나도 실은 선생님께 봉투를 받으면서 의아했었다.

‘이렇게 작은데 어떻게 담지?’ 그렇지만 엄마는 분명히 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엄마의 난감한 표정을 보니 정말 어려운 일인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첫째여서 엄마도 초보 학부모인 탓에 학교 일을 모르는 것이 많았다. 교실 마룻바닥을 반짝거리게 닦기 위해 청소할 때 쓸 기름을 보내라는 전달 사항을 듣고 없는 살림에 참기름을 한 병 사서 들려 보냈던 적도 있었다.


 다음 날 아침, 방안에 신문지가 활짝 펼쳐졌다. 밤새 고민하던 엄마는 우리가 세든 주인집으로 가서 신문을 얻어와 방안에 넓게 깔고 그 위에 올라가 나에게 볼일을 보라고 했다.

나는 신문지에 볼일을 보고, 그런 나를 동생들이 쪼그려 앉아 지켜 보고, 엄마는 내 볼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내가 일을 다 보고 나자 어려운 숙제를 한 아이에게 칭찬하듯 ‘잘했다.’며 엄마는 내 등을 토닥였다.


 요즘 인기 미국 드라마 CSI에 나오는 수사대처럼 엄마는 신중하게 나의 똥을 나무젓가락으로 모았다. 그리곤 차곡차곡 잘 접어 보관해 두었던 반짝이는 라면 봉투에 담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엄마의 기발함에 놀랐다. ‘아무도 엄마 같은 생각은 못 할 것’이라 감탄했다. 아무리 생각하고 또 생각해 봐도 어쩌면 그렇게 현명할 수가 있는지.

손바닥보다 작은 봉투를 주신 선생님보다 우리 엄마가 열 배는 더 똑똑하단 생각이 들어서 자랑스러웠다.


엄마는 반질반질 윤나는 라면 봉투 두 장을 겹쳐 한 장으로 만들고, 내가 잡기 편하도록 고무줄로 꽁꽁 동여매서 위쪽으로 손잡이까지 만들어주었다. 그리고 또다시 커다란 종이봉투에 담아 내 책가방 안에 넣어 주면서, “선생님께 드릴 때는 종이봉투는 빼고 알맹이만 드려”라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라면 봉투를 생각해 낸 엄마가 너무 신기해서 학교 가는 발걸음이 저절로 빨라졌다.  엄마의 신중함이 담긴 묵직한 봉투를 넣은 가방을 메고 기분이 좋아진 나는 날개 달린 새처럼 빠르게 학교에 갔다.


 기다리던 조회 시간, 선생님이 들어오셔서 “어제 나눠준 채변 봉투 모두 잘 가져왔지요?”하고 물으셨다. “네” 반 아이들이 합창하듯 대답했다. 나도 큰 소리로 대답했다. 선생님께서 커다란 종이봉투를 가리키며, 채변봉투에 이름을 적었는지 확인하고 넣으라고 하셨다. 분명히 엄마가 종이봉투는 빼고 안의 것만 드리라고 했는데, 거기에는 이미 라면 이름과 설명이 빼곡해서 내 이름은 적을 수가 없었다.


 반 아이들을 들러보았다. 그런데 가만히 보니 아이들은 어떻게 알았는지 미리 봉투 겉에 이름을 써왔으며 내가 정말 놀란 건, 아이들은 투명한 봉투 안에 변을 콩알만큼만 담아 온 것이다.

‘아, 저렇게 조금 가져오는 거였구나!’

 한 줄로 서서 아이들은 교탁 위의 종이봉투 안에 변이 담긴 작은 봉투를 넣고 들어가는데, 나는 내 것을 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었다.


선생님이 들어오시기 전까진 엄마가 그렇게 대단하고 자랑스러웠는데, 난감하기 그지없어 가방만 만지작거렸다. 어쩔까 망설이던 나는 가방 안의 종이봉투를 비장한 각오로 꺼내 들었다. 그리고 종이봉투 안에 든 알맹이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엄마가 밤새 고민하고, 아침 내내 공들여 작업한 것을 도로 가져갈 수는 없었다.


 엄마가 고무줄로 꽁꽁 묶어 만들어준 라면 봉투 위쪽 손잡이를 잡고 선생님 앞으로 나가 교탁 위에 척! 내려놓았다. 라면 봉투에 담긴 묵직한 것을 교탁 위에 올려놓자 선생님은 소스라치게 놀라서 뒤로 물러나셨다.

“이... 이게 뭐냐?”

나는 정말 천진난만한 얼굴로 선생님을 올려다보면서 대답했다.

“똥이요.”


다음날부터 한동안 학교에서 나는 ‘라면 봉투’로 불렸다.     

 엄마는 “그때가 좋았다.”며 그 시절을 자주 얘기한다. 철 모르는 어린 자식들을 위해 시간을 아끼려 뛰다시피 걸으며 일 다니던 그때가 그립다는 엄마는 과거의 기억을 한 조각 한 조각씩 잃어간다. 겨우 생각나는 기억도 순서 없이 맞춘 퍼즐 조각처럼 시간의 흐름이 분명하지 않고 서로 엉켜서 같은 얘기도 매번 달라지지만, 내겐 언제나 자랑스러운 엄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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