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문득 조제 생각이 났어. 조제 알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의 그 조제. 참 이상한 영화야. 처음 봤을 때는 허탈했고, 두 번째 봤을 때는 슬펐고, 세 번째 봤을 때는 그냥 네가 많이 보고 싶었어. 왜 우리 같이 보기도 했잖아. 물론 너는 보다가 중간에 잠들어버렸지만. 조제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꼭 그 사람과 함께 호랑이를 보러 가겠다고 마음먹어. 그래서 자신의 연인인 츠네오와 함께 동물원의 호랑이를 보러 가지. 조제는 호랑이를 무서워하면서도 다가가기를 주저하지 않아. 사랑하는 츠네오의 손을 잡고 움찔거리면서도 끝까지 호랑이를 바라보는 조제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해.
조제는 왜 하필 호랑이가 보고 싶었을까?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랑. 예쁜 바다를 보러 갈 수도 있고, 재밌는 연극을 보러 가도 좋고, 굳이 동물이 보고 싶다면 토끼, 강아지, 판다처럼 귀여운 동물들도 많잖아. 솔직히 연인과 호랑이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호랑이 생각을 하다가 너랑 놀이공원에 간 생각이 났어. 난 겁이 많아서 웬만큼 무서워 보이는 놀이기구는 절대 타지 않아. 그래서 너와 처음 놀이공원을 갔을 때 우리 사진만 잔뜩 찍고 왔잖아. 그 비싼 입장료를 내고, 우리는 비싼 추억들만 잔뜩 쌓고 왔지. 우리의 두 번째 놀이공원은 듬직하고 다정한 너의 형과, 형의 다정을 한 몸에 받고 있는 형의 애인과 같이 갔어. 여자애 둘은 절대 절대 롤러코스터를 타지 않겠다고 우겼고, 너와 너의 형은 한 번만 같이 타자고 계속 우리를 설득했지. 나는 그냥 타는 거 지켜보기만 해도 괜찮은데. 왜 자꾸 같이 타자고 하는 걸까. 긴 줄을 기다리는 내내 나는 숨을 크게 쉬었다가, 발을 동동 굴렀다가, 너를 째려봤다가, 너에게 안겼다가 난리도 아니었어. 너는 그런 내가 웃긴다는 듯 웃기만 했고. 우리의 차례가 다가왔을 때 난 정말 당장이라도 도망치고 싶었어. 왜 탄다고 했을까. 아 왜 그랬을까. 지금이라도 그냥 널 버리고 가버릴까. 하지만 어떻게 그러겠어. 내 손을 꽉 잡고 있는 너를 믿고 그냥 롤러코스터에 몸을 실었어. 그다음은…. 네가 너무 꽉 쥐고 있어서 아팠던 손의 감각밖에 생각나지 않아. 눈을 뜨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지. 나는 그냥 몸을 잔뜩 웅크린 채로 끝나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아.
아마 난 다른 사람이었다면 절대로 롤러코스터를 같이 타지 않았을 거야. 어떤 말로 나를 설득해도 넘어가지 않았을 거야. 너라서 같이 탄 거야. 내가 세상에서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라도 해도, 네가 옆에 있으니 탄 거야. 너랑은 뭐든 같이 하고 싶으니까. 기쁨과 행복뿐만 아니라 슬픔, 아픔, 두려움까지도 같이 느끼고 싶으니까.
조제도 그런 마음 아니었을까.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과, 내가 가장 무서워하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 혼자서는 절대 못할 일을 너의 손을 꽉 잡고 해내고 싶은 마음. 무서움과 두려움은 우리를 가장 애틋하게 만들기도 하니까. 내 옆에 있는 너의 존재를 어떤 순간보다 크게 느껴지게 해 주니까. 아무리 큰 두려움 앞에서도 너의 손을 잡고 있다면, 나는 두려움보다는 너의 손의 온기와 꽉 쥐고 있는 힘을 느끼겠지.
다음에는 우리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공포 영화를 보러 가자. 무섭게 생긴 귀신도 막 튀어나오고, 스산한 음악도 들리는 영화를 보러 가자. 무서운 장면이 나오면 나는 기다렸다는 듯이 네 품에 숨을게. 너는 내 옆에 딱 붙어서 내 온기를 느끼면 돼. 그러고 나면 우리는 그 어떤 두려움도 맞설 수 있을 거야. 세상에 공포영화보다 무서운 일이 우리 앞에 일어나도 우리는 괜찮을 거야. 그때도 우리는 변함없이 서로의 손을 아주 꽉 잡고 있을 테니까. 내가 너보다 더 세게 잡아줄게. 꽉 잡은 손이 아파서 다른 것에는 집중할 수 없도록. 세상이 주는 아픔은 내 손의 힘에 못 이겨 얼른 도망가 버리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