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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보는 일.

by 단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문에 손가락이 끼였어. 손님들 앞이라 소리도 크게 못 내고 웃으면서 그 자리를 나왔어. 이따가 보니까 손톱과 살 사이에서 피가 나는 거야. 그제서야 손가락이 얼얼하니 아파오는 거 있지? 어찌나 아프던지 눈물이 찔끔 나올 것 같았어. 나는 피가 고인 손가락을 부여잡고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다가 그냥 너에게 카톡을 보냈어. 피가 나는 손가락을 찍어서 보내고는, 너무 아프다고 정말 눈물 날 것 같다고, 어떡하냐고 막 어리광을 부렸어. 카톡을 본 너는 놀래서는 바로 전화가 왔지. 손님들 앞에서는 그렇게 씩씩하게 말하던 나였는데 네 목소리를 듣자마자 눈물이 핑하고 나왔어. 나는 그저 아프다고만 하고 있고, 너는 인터넷에 막 찾아보고. 사실 네가 말해준 정보들이 큰 도움이 되지는 않았어. 그런데 너랑 전화를 끊고 나니까 신기하게도 조금 덜 아픈 것 같은 거야. 너의 걱정 어린 목소리와 조금은 화난 듯한 목소리가 계속 머릿속을 맴돌았어. 손이 아파올 때면 그 목소리를 계속 떠올렸어. 그러면 나의 아픔에 어느 정도 타당성이 부여됐거든. 나보다 더 나를 걱정해 주는 너의 그 마음이 느껴지는 것 같았거든.


있지, 나보다 더 사랑하는 게 있을 수 있을까. 너는 어떻게 생각해? 나는 아무리 생각해도 나를 사랑하기 위해 너를 사랑하는 것 같거든. 너를 향한 내 사랑은 결국 그 끝에는 나에 대한 사랑인 것 같거든. 우리는 분명 서로를 사랑하는데, 그 사랑이 온전히 너를 향한 사랑인지 아니면 나를 사랑하는 방식 중 하나인 건지 잘 모르겠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사랑하기에는 나 자신을 너무 잘 알기에 서로의 눈을 빌려 나를 보고자 하는 게 아닐까. 내 눈에는 너의 단점, 약점들이 그저 귀여운 구석으로 보이는 것처럼 나의 단점과 미운 부분들이 너에게는 그렇게 크게 다가오지 않잖아. 나는 너를 통해 비로소 나를 조금 더 사랑하게 되는 거야.

큰사람, 아주아주 큰사람이 그러더라고. 나는 너를 사랑하고, 너는 나를 사랑하면서 나를 사랑하는 너를 바라보고, 너를 사랑하는 내 모습을 네가 봐주면 그게 사랑 아닐까. 보는 것. 봐주는 것. 어쩌면 사랑은 그저 오래 지켜보고 있는 것일지도 몰라. 사랑은 주고받는 것보다는 그냥 보는 거야. 나는 너를 보고 너는 나를 보는 거야. 주는 것과 받는 것은 반드시 무게가 생기잖아. 누가 더 많이 주고 누가 더 많이 받았는지 잴 수밖에 없잖아. 하지만 보는 것에는 무게가 없지. 나의 생각, 방식을 내려놓고 그저 너를 보기만 할 때 나는 너의 사랑을 제일 많이 느낄 수 있는 것 같아.


너는 길을 걸을 때 무거운 내 짐을 다 들어주고, 밥 먹다가 숟가락이 떨어지면 나보다 빨리 일어나 새 숟가락을 가져다줘. 그리고 축구하러 가기 전, 영화를 보러 가기 전에 사랑한다고 카톡을 남겨 놔. 틈만 나면 나에게 전화를 걸고 너의 하루 일상을 하나도 빼놓지 않고 나에게 말해주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나눴는지. 너의 것을 나에게 주는 일에 하나도 아끼지 않아. 내가 너를 바라보고 있을 때 느낀 사랑들이야. 어떤 대상을 똑바로 향하여 보는 걸 '바라본다'라고 한대. 너를 똑바로 서서 바라볼 때 느낄 수 있는 사랑이 이렇게나 많은데. 나는 왜 자꾸만 삐딱해지는 건지 모르겠어.


그냥 네가 많이 보고 싶어. 너를 바라보면서 영원에 대해서 생각하고 싶어. 이제는 너를 사랑하는 건지 나를 사랑하는 건지 모르겠는 이 사랑을 너와 하고 싶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나를 사랑하는 일이 되고, 나를 사랑하는 일이 너를 사랑하는 일이 되었으면 좋겠어. 그렇게 너를 사랑했다가 나를 사랑했다가를 반복하고 싶어.

나는 언제까지나, 오래오래, 변함없이 같은 유치하고 뻔한 말들이 참 좋아. 그 유치함 속에 담겨있는 간절함이 있잖아. 뻔한 말이지만 지켜지기에는 힘든 말이잖아. 언제까지나 서로의 곁에서, 오래오래 서로를 안고, 변함없이 바라보자. 이 말을 들은 너는 아마 싱긋 웃으며 아니? 내 사랑은 점점 커질 거야! 내 사랑은 변하는 사랑이야~라고 말하겠지? 오래오래 너의 그 장난을 보고 싶어. 너와 가장 가까운 곳에서 네가 웃을 때 생기는 주름과 민망할 때 나오는 손짓과 울 것 같을 때 눈을 위로 치켜뜨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을게. 내 시선의 끝에는 항상 네가 있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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